요구르트 인질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

아이들 사이 갈등이 생겼을 때 객관적으로 내 아이의 문제를 바라봐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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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yumi05)등록 2022.11.07 09:59

하원 후 늘 출근하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낙원이다. ⓒ 이유미


놀이터는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그 세상에선 아이들의 화음같은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동시에 삐걱대는 마찰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 첫째아이와 한때 놀이터 단짝이었으나, 지금은 사이가 틀어진 7살 아이 할머니로 부터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00이랑 울 손주가 잘 안노네, 00이가 계속 형이라 안하고 얘한테 깐족대고, 너희 할머니 뚱뚱하다고 했대"
00이는 우리 첫째를 얘기하는 것이다.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사이가 나빠진 이유를 첫째 아이 탓으로만돌리는 할머니의 말에  일차로 기분이 상했고, 특히 마지막말이 내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었다. 
 나도 두아이가 노는 것을 늘 지켜봐왔던터라,형이라고 하지 않아 그 아이가 속상한 것을 알았다.  형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6살 첫째에게, "형이라고 꼭 얘기해"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 뒷말은 조금 의아했다. 평소 누군가에 대해"뚱뚱하다" 라고 하는 아이 모습을 본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무수한 경험으로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그사이 유치원 하원 버스가 도착했다. 차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리는 아이에게 인사대신 "너 진짜 할머니 뚱뚱하다는 말했어?" 라며 다그쳤다.
 갑작스런 엄마의 추궁에 어안이벙벙한 첫째는 고개를 저으며 "안그랬어"라고 대답했다. 옆에 선 7살아이에게도 물었다. "8월쯤 그런말을 한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확실하냐는 물음에 그 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반듯이 쳐다보며 맞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첫째의 "아니야,그런말 안했어"라는 외로운 외침이 허공에 퍼졌고, 결국 눈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할머니는 옆에서 "진짜 그말 한거 맞아,손주가 그랬어. 우리 손주는 거짓말안해" 라며 계속해서 훈수를 두었다.  울먹이는 첫째에게 "괜찮아,솔직히 말해줘" 라고 다독이는 사이 할머니와 그아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찝찝한 마음을 안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몇번이고 채근했으나 첫째는 아니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이쯤되니 차라리 아이가 한말이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훈육을 통해 고쳐나가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재차 물어도 아니라고 하니 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탁하고 걸린 것같았다. 
 그래도 아이가 잘못한 것은 일러주어야 하기에 속상한 마음은 잠시 눌러두었다. 우선 형이라고 안 한건 잘못했으니 앞으로  부를때 형이라는 호칭을 꼭 붙이라고 하고,엄마는 너를 믿지만 절대 그런 식의 나쁜 말은 하지말라 당부했다. 첫째는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와 대화를 마치고 속상한 마음에 동네언니에게 전화걸어 사정을 얘기했다.
"그말은 할머니 손주가 평소에 하던 말이잖아, 나한테도 뚱뚱한 아줌마라고 하고, 기분나빴는데 할머니가 우리 애들 요구르트 사준거 생각나서 속으로 할말을 몇번이나 삼켰나 몰라. 일단 그문제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사실 나도 여태껏 그 아이가 잘못한 것들 일러주지 못하고 속으로만 웅얼댄 것이 그 요구르트 때문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하원하는 아이들에게 늘 요구르트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곤 했다. 할머니의 요구르트는 첫째아이에겐 그 더운여름을 쉬이 나게 해줄 정도로 고마운 존재였다. 그렇게 첫째가 갈증을 달랜 요구르트는 족히 서른개가 넘었다. 이제와서 그 요구르트가 인질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하원버스에서 내리면 늘 신나게 놀이터로 뛰어가던 두아이였다. 어느날인가부터 둘 사이에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하원하는 서진이의 등뒤로 "너 싫어, 없어져버려 " 이런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 말은 아이뿐 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날카로운 화살로 내리 꽂혔다. 언제는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르는 서진이를 밀기까지 한 후 ,안밀었다 거짓말까지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께 조심스레 말하면 늘 "우리 손주는 안그래, 00이가 잘못 본 걸거야" 혹은 "00이가 잘못해서 그런거 아니야?" 라는 대답만 쳇바퀴처럼 돌아 내게 왔다. 그렇게 단단한 방패막에 약한 창은 힘없이 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뚱뚱한 할머니 사건"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았다. 첫째 아이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서도 사실확인과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그리고 둘 사이 어떤 문제가 있었건 7살 그아이가 첫째에게 나쁜 말과 행동을 지속적으로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었다.그리고 두 아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선 귀찮더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을 위해 요구르트 인질에서 벗어나야 했다. 손주의 친구들까지 요구르트를 사주시던 할머니는 따뜻한 분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손주의 잘못마저 감싸게 되면 문제가 된다.
 터널안에서는 터널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깜깜한 터널 안에서 감싸려고만 하지말고,그것을 환한 밖으로 꺼내어 객관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그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아플 손주라도 말이다.
 모든 부모는 사랑하는 아이의 말을 믿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내 아이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참 어렵다. 과연 우리는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이의 마음 속을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무리 부모라도 그 복잡한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절대 그렇지 않아"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학교 현장에서 나는 그런 사례를 무수히 겪었다. 아이들사이에 문제가 생겨 전화를 하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네? 저희아이가요? 그럴리 없는데" 라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집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나 또래들끼리 있을 때의 대화나 행동은 어른들의 예상을 초월할만큼 충격적인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아이의 잘못을 쉬이 인정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을 믿기에... 하지만 부모들이 이렇게 제 아이의 잘못을 감싸기만 하는 행위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터널 속 어둠에 가두기만 할뿐...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땐, 어른들은 훌륭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우선 아이들의 입장에서 각자 느낀 감정을 털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무엇때문에 속상한지 이야기 해줄래?"질문을 하며 대화를 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다음으론 서로를 속상하게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사과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쁜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훈육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갈등을 해결했음에 뿌듯해하고,잘 받아들이고 관계를 쉽게 회복한다. 또한 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훗날 다른 갈등상황을 마주했을 때 대처할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오늘 할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대화를 해보려 한다. 할머니의 방패막을 부드럽게 열어야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글쓰기는 자신있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순발력있게 응수하는 대화는 어렵다. 그 상대가 나보다 한 참 어른일 경우엔 아랫사람이 응당해야하는 "예의"의 문제가 있기에 더..
 대화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 진 알 수 없지만,이 말 한마디는 꼭 전해야 겠다.
"할머니가 손주를 믿는 만큼, 저도 첫째아이를 믿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서, 두 아이가 다정히 손 맞잡고 예전처럼 신나게 놀이터로 달려가면 좋겠어요"
 부디 대화가 물흐르듯 흘러가, 두 아이에게 놀이터가 다시 평화로운 곳이 되길 소망한다. 그곳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하기에....
덧붙이는 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이들간의 문제에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 부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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