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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효한 노무현 대통령의 14년 전 '이 질문'

여성가족부 폐지에 "귀한 업무 서자 취급 받을 것"... 시민사회단체, 국회에 입장 촉구

등록 2022.11.11 13:36수정 2022.11.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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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년 12월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가 강하게 밀어붙인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 당선자는 '실용'을 내세우며 정부조직을 개편해 부처 간 중복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그 중 하나가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였다. 노 대통령은 이 당선자에게 물었다.

"여성부가 왜 생겼고, 그것이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까?"

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보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 가족의 가치를 살려보자고 여성부의 업무로 해 놓은 것입니다. 여성부에서는 귀한 자식 대접 받던 업무가 복지부로 가면 여러 자식 중의 하나, 심하면 서자 취급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중략) 이처럼 큰 일이 정말 토론이 필요 없는 일입니까? 이 정도는 우리 국민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문제라서 토론이 필요 없는 것입니까? 국민들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중략) 바쁠수록 둘러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분한 토론을 거치고 문제가 있는 것은 고치고 다듬어서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또 실수를 줄이는 길입니다." (노무현재단이 지난 10월 14일에 올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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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1월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종호

 
이 당선인은 '실수'를 줄이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여가부 폐지에서는 한 발 물러섰지만 '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옮기고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축소했다.

역사는 반복되어, 14년 후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더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성가족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말해 온 윤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이것이 '공약'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나섰다. 여성가족부 업무를 둘로 나누는 게 골자다. 가족·청소년·양성평등·폭력 피해자 지원 등의 업무는 보건복지부장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맡고, 여성고용 지원업무는 고용노동부로 이관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0월 6일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내놨다. 정부·여당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11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성평등 민주주의 퇴행시킨 국회의원 명단에 의원님의 이름이 없길 바랍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대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단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참여연대·민주노총·한국노총·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사회는 '여가부 폐지'를 막겠다며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8일 '여가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아래 전국행동)을 발족하며 활동을 공식화했다. 전국행동에는 693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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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반면 법안 통과 반대를 내세우는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다소 미지근한 상태다. 지난  10월 11일 김성환 정책위의장이 "여가부 폐지에 대해 대선 때부터 일관되게 반대해왔다"고 밝히긴 했으나 '당론 채택'의 과정을 거치진 않은 상태다. 

이에 전국행동은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국회 촉구 캠페인에 돌입하며 국회를 향해 '입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10월 25일 시작된 이 캠페인에 11일 오전 10시 현재 1266명이 동참했다. 캠페인에 참여할 시 299명의 의원들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촉구하는 이메일이 자동으로 발송된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이 문제가 쟁점화가 안 되고 있다"라며 "민주당은 '이대남' 눈치를 보고 있으니 각각의 의원별로 입장을 내놔라, 답을 받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그 무거운 책임을 거대 양당에 묻고 있는 것"이라며 "개개인, 특히 다양한 젠더 관점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확인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169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의 '찬성'표가 있어야만 한다.  

아래는 의원들에게 발송되는 촉구 내용이다.

"의원님들께 촉구합니다.

2022년 10월 6일 정부가 발표한 여성가족부 폐지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국회에서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됩니다. 기후위기, 양극화, 고물가로 인한 민생 파탄, 구조적 성차별, 국제안보 위기 등 중요한 국정 현안들에 대응하면서 돌봄 사회로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실질적 강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국회가 해야할 일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어떻게 강화할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결코 여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삼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성평등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께서 반드시 '여성가족부 폐지' 개편안을 막아주실 것을 요청드리며, 성평등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국회의원 명단에 의원님들의 이름이 없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여성,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회 촉구 2주가 흐른 11일, 이 요구에 응답한 의원은 0명이다. 현 시점에서 "여성부가 왜 생겼고, 그것이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까?"라는 이 근본적 질문이 비단 정부여당에게만 유효한 것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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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가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국회 촉구를 진행하는 가운데, 이 같은 요구에 응답한 의원은 11일 현재 0명인 상태다. ⓒ 이주연

 
#여성가족부 #여가부 폐지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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