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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원인이 축농증? 동생이 30년째 군과 싸운 이유

1992년 제22보병사단 고 안경환 일병과 동생 안보환씨 이야기

등록 2022.11.11 11:25수정 2022.11.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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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 91-OOOOOOOO. 고 안경환 일병은 1991년 12월 3일 입대했지만, 다음해 7월 1일 GOP 근무에 투입되었다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헌병대(현 군사경찰)는 경계근무를 서다가 K-2 소총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스스로 쐈다고 사망 경위를 발표했다.

1992년 헌병대 중요사건 보고는 안 일병의 사망 원인을 "'결손가정', '축농증' 등의 이유로 때문에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라고 명시했다. "예정되어 있던 휴가가 두 차례 연기되어 신변을 비관했다"라고 유족에게 망인의 사망 배경을 전달했다. 2004년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조사결과 보고서도 안 일병이 "동생들 생계유지 부담감" 등 가정사를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을 알렸다.

이러한 군의 발표는 고 안경환 일병이 군 의무복무 도중에 사망했지만, 그 주된 이유가 '개인 신상' 때문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는 징집된 군인의 죽음과 관련, 군과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걸 설명한다. 하지만 유족은 헌병대와 국방부의 조사 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약 30년째 국가와 싸우고 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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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경환 일병의 동생 안보환 씨는 형의 죽음과 관련, 30년째 진실을 좇고 있다 ⓒ 정현환

 
동생이 30년째 문제제기 하는 이유 

고 안경환 일병의 유족이 30년째 국방부와 군, 보훈처와 싸우는 내용은 이렇다. 유족은 1992년 헌병대 조사와 2004년 국방부 조사 내용이 그 어떠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군과 국방부가 망인의 사망 원인을 두고 발표한 내용이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며 오늘도 국가와 다투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고 안경환 일병이 근무했던 제22사단 헌병대 조사결과 보고서다. 군은 1992년 1월 고인이 자대 배치를 받고, 중대장 면담 5회, 소초장 면담 17회를 한 횟수를 제시하며, 이 과정에서 망인의 부친이 '음독자살'한 사실이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임을 주장했다.

2004년 국방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재조사 결과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는 불우한 성장배경에 "궁핍한 가정환경", "만성 축농증", "입대 후 신병교육 중 수류탄 자살 미수" 등의 이유로 안 일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발표했다.

헌병대와 국방부는 이 주장의 근거로 고 안경환 일병의 생활기록부를 내세웠다. 기록부 내용을 토대로 망인의 자살이 입대 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이미 입대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30년째 주장하는 것이었다.


안 일병의 과거가 어땠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직접 살펴봤다. 기록부는 군과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성실하고 활동적이며 학급 일에 협조적 (중1)", "성적이 우수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생활태도 (중2)", "실장으로 학생들 간의 관계가 좋고 (중3)"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도 마찬가지였다. 헌병대와 국방부가 망인의 자살과 관련 있다는 망인 아버지 자살과 관련된 내용은 해당 문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고 안경환 일병의 동생 안보환씨는 지난 2018년 11월, 대통령 직속기구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를 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은 두 번째 신청이었다. 30년째 국방부가 제대로 된 근거 제시 없이, 형의 죽음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과 나약함, 궁핍했던 어린 시절 등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축농증 때문에 자살했다?

유족이 군과 국방부의 주장을 30년째 받아들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고 안경환 일병의 '축농증' 문제다. 1992년에 헌병대와 2004년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안 일병에게 생긴 '만성 축농증'이 입대 후 자살의 배경이자 이유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1992년 헌병대 수사내용과 2004년 국방부 조사결과 보고서 어디에도 망인의 축농증이 왜 원인이 된 건지, 그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군은 인과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축농증 관련 입대 전후 진단서나 진료확인서, 처방전 등의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이 사실을 증명하는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2019년 약 10개월 동안 실시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증언이 밝혀졌다. 사망 당시 망인의 후임병이 "망인과 같은 내무실에서 생활하며 제가 바로 옆자리에서 잠을 잤는데 축농증에 대해 불편함은 전혀 들은 바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부소대장도 "저는 망인 안경환이 축농증을 이유로 자살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라고 한 점을 볼 때, 군과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망인이 축농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건 신빙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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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경환 일병 축농증 관련, 부대 지휘관 진술 내용 중 일부 ⓒ 정현환

 
수류탄으로 자살기도? 증거도 없이 주장만

"수류탄으로 자살기도". 지난 30년 동안 군과 국방부는 아버지의 음독자살, 축농증이란 망인의 건강상태와 함께, 신병훈련소에서 이미 수류탄으로 자살 기도한 점 등을 토대로 극단적 선택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일까. 현재 고 안경환 일병의 친동생 안보환씨는 "형이 수류탄으로 자살 시도한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로 "수류탄이라는 무기가 군에서 다뤄지는 살상 무기인 만큼, 수류탄 자살기도 주장은 군과 국방부 스스로가 입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992년 헌병대, 2004년 국방부,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도 수류탄 자살기도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신 망인의 수류탄 자살기도와 관련, 부소대장 이아무개씨는 진술 과정에서 "(수류탄 자살기도를) 정확하게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했다. 선임병 김아무개씨도 "당시에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모르지만"이라고 입장을 드러냈다. 

따라서 지난 30년 동안 군과 국방부가 주장한 망인의 수류탄 자실 시도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보인다. 대신 헌병대와 국방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라는 세 군데 국가기관은 망인과 관련된 당시 부대 관계자들의 진술 유무를 파악했는데, 이마저도 출처가 불명확했다. 하지만 그동안 국방부는 유족의 비판에 "사건이 오래되어 기록이 많이 없다"라는 답변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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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경환 일병 수류탄 자살기도 관련, 부대 지휘관들 진술 내용 중 일부 ⓒ 정현환

 
사과하지 않는 국방부

그렇게 지난 30년 동안, 군은 고 안경환 일병 사망과 관련하여 개연성이 떨어지는 주장을 반복했다.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의원회 조사과정에서는 오히려 1992년 망인이 배치된 부대 지휘관이 잘못된 일처리를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1992년 제22사단 헌병대가 작성한 '중요사건보고'에서 부소대장 이아무개씨는 "저도 망인이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하는 GOP 근무에 차출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당시 대대장이 인력 부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데려갔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같은 수사에서 행정보급관 이아무개씨도 "제가 당시 대대장님께 망인의 심층적인 상담을 해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GOP 근무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라고 하며, "하지만 대대장님께서 현재도 GOP 근무 병력이 부족한데 망인까지 제외하게 되면 남은 병사들이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GOP 근무에 투입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실은 부소대장과 행정보급관이라는 군 경험이 많은 경력자들의 의견과 입장을 당시 부대 지휘관이 묵살했음을 보여준다.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결국 고 안경환 일병은 근무하기에 부적절한 GOP에 투입됐고, 연이은 휴가 취소 소식을 들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망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그런데 군 규정에 어긋난 부대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징집된 청년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군과 국방부는 고 안경환 일병의 자살과 관련, 군의 과실이 있었음이 드러났음에도 현재까지 유족에게 어떠한 사과나 입장 표명을 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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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경환 일병 사망사고 관련, 군의 잘못을 보여주는 당시 부대 관계자들의 진술 내용 ⓒ 정현환

 
막을 수 있었던 죽음, 30년 동안 국가와 싸웠다

지난, 2019년 11월 25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고 안경환 일병 관련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1992년 헌병대 수사결과에서 밝힌 불우한 가정환경과 만성 축농증이 망인의 자살 이유로 보기 어렵다는 조사결과 때문이었다. 보호관심병사로 분류되어 있던 망인의 상태를 부대에서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GOP 근무에 투입한 잘못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6조에 따라 국방부 장관에게 망인의 순직을 재심사하는 권고를 했고, 국방부는 이 내용을 인용해 망인을 '순직Ⅲ형'(2020년 3월 9일)으로 결정했다. 국방부가 망인이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등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사유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했다고 본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도 고 안경환 일병의 유족은 국가와 싸우고 있다. 동생 안보환씨는 "형이 군 의무복무 도중 사망했음에도 제대로 된 예우는커녕 확실한 근거 없이 지난 30년 동안 국방부가 허위에 가까운 주장만 했다"라고 말하며, "군과 국방부라는 두 개의 국가기관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여기에 안씨는 "우리의 순직과 보훈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라고 언급하며, "그동안 형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관련,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배운 노하우를 다른 유족과 공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1992년 군 의무복무 도중에 형이 사망했을 때 14살이었던 소년은 올해로 44살 어른이 됐다. 30년째 국가와 싸웠다. 국가가 사람을 버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유족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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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경환 일병은 군의 병력 관리 소홀로 인한 사망이 인정되어, 사망한 지 28년 만에 ‘순직자’가 됐다 ⓒ 정현환

#군 사망사고 #육군 #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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