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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 실패한 세 가지 이유

[주장] 미국은 한반도 평화에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등록 2022.11.13 10:32수정 2022.11.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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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 사찰을 진행한지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됐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을 막지 못했다. 이 글은 지난 30년간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려 한다.

북한은 미국이 아닌 핵무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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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며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9월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ㆍ장거리포병부대ㆍ공군비행대의 훈련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월 10일 밝혔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1980년대 말 미소냉전의 해체는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은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 중국, 그리고 동유럽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며 냉전의 한 축을 허물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에 실패했다. 그렇게 북한은 고립되었고 비대칭 전략을 통한 균형을 시도했다.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이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후 협상의 핵심 당사국은 북한과 미국이었다. 북미 양자회담뿐만 아니라 4자, 6자회담에서도 핵심 이슈는 북미협상을 통해 다루어졌다. 북미협상의 핵심 주제는 두 가지였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북미관계 정상화 노력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목표를 철회하고 미국이 아닌 핵무기를 통한 안전보장을 선택했다. 한반도 비핵화의 실패 원인은 1차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약속 불이행에 있다. 그러나 미국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을 냉정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실패'했다

탈냉전 시대에 한반도가 냉전의 섬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지 못한 데 있다. 북한은 끊임없이 미국을 향해 도발하고 폭력적인 언어 도발을 일삼아 왔다. 그러한 도발을 북한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행태로 비난할 수 있지만, 그들의 거친 행동은 미국에 대한 구애에 가까웠다.

미소 냉전이 해체되고 고립된 북한은 어떻게 체제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을까?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말하겠지만, 북한은 그들의 안전을 미국만이 보장해줄 수 있음을 오래전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피곤해 했고,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의 관심을 끌려 노력했다.

그 결과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그리고 6자회담의 결과물인 9.19 공동성명(2005)과 2.13 합의(2007)까지 북한은 끊임없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 적은 없다. 클린턴 정부 말기인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상호 방문이 이뤄지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에 가장 근접했으나 이마저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면, 북한이 핵을 통한 자위의 길로 나갈 것이란 점을 몰랐을까?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평화에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낮은 단계의 조치부터 최소한의 행동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실패, 아니 관심이 없었고 북한은 핵무장을 선택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최악의 전략이었다

2009년 등장한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의 결정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무장이 가시화됐고, 2008년 12월 북핵 검증에 관한 이견으로 6자회담마저 중단된 상황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인 비전과 행동이 필요한 이 시기에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북정책을 내놓았다.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소극적인' 압박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다소 허황된 전략이었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의 '전략' 아닌 '전략'은 결과적으로 2011년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2017년 제6차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를 선언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했다. 2016년부터 UN안보리가 이전에 없는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한반도 비핵화에 기여한 점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서 무기력한 공백기로 남아 있다. '전략적 인내' 전략은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에서 가장 끔찍한 선택이었다.

현시점에서, 대북제재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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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 서명 후 발언하는 김정은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6월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UN안보리는 UN의 역사에서, '이전에 없던' 강력한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2017년 12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한 UN안보리 결의안 2397호는 그 결정판이었다.

UN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은 북한의 수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해외노동자 파견을 봉쇄하며, 금융과 투자를 원천 차단하는 조치였다. 여기에 미 재무부가 주도한 독자적 대북제재는 달러와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무기를 이용해 전세계 은행이 북한과의 거래를 자발적으로 차단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UN 안보리가 통제한 대북제재는 남북경협을 추진하던 한국 정부와 UN 안보리 거부권을 보유한 중국, 러시아가 동참하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여기에 2020년 초반에 발생한 코로나19에 대응해 북한이 스스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대북제재의 효과는 배가되었다.

그렇게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견뎌내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한국과 중국이 동참한 대북제재는 북한의 유일한 출구를 막고 항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 압박을 지난 5년 동안 견뎌내고 있다. 외부의 공급을 막으면 북한이 항복하리란 기대는 깨졌다. 그 원인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지난 칼럼을 참고하길 바란다('잦은 북한붕괴론, 그럼에도 견고한 북... 시각을 바꿔야 한다' http://omn.kr/212h1)

최근에는 강고했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동맹마저 흔들리고 있다. 올해 북한의 세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에 맞서 UN 안보리가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논의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추가 제재에 반대한 것이다.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단행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대북 제재레짐은 복원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더 이상 북한 핵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현시점에서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은 실패했다. 또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은 미국을 향하고 있다. 북한은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이 아닌 핵무기를 통한 자위를 선택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진행된 북한의 무력도발은 더 이상 대미협상용도, 국내정치용도 아니다. 북한은 빠른 시일 내에 핵을 소형화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넓혀 그들의 무기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임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이제 미국도 북한 핵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더 이상의 '전략적 인내'도, 위험천만한 안보 경쟁도 중단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무력도발과 한미연합의 대응이 에스컬레이팅 되는 상황은 국지적인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이 원하는 한반도 전략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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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단거리 2발 발사 관련 뉴스 보는 시민들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힌 3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반도는 분명 전에 없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엉킨 실타래를 풀러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미중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미국 또한 한반도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만큼은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중국과 대화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지금도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북미 간의 신뢰는 이미 깨져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1993년에, 2000년에, 그리고 2018년에 미국의 의미 있는 관계정상화 조치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미국은 자국의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을 대면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동결해야 한다.

셋째, 대북제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북제재는 한반도 비핵화의 도구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북제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효과적인 운영에 취약하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스냅백' 조치와 같은 '조건부' 제재 완화는 비핵화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대북제재의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 정부는 먼저 지난 30년의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서 자신의 선택을 냉정하게 재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미국은 그만큼의 협상 권한을 누려왔고, 한반도 평화에 책임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 #미국 #북미관계 #전략적인내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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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mail: 4025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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