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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한 유족에게 빵을 보낸 회사의 만행

[TV 리뷰] KBS1 <시사직격> '제빵왕과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 편

22.11.12 12:59최종업데이트22.11.1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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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시사직격> ⓒ KBS1


지난 10월 15일 새벽 6시경, SPC계열사에 빵을 공급하는 SPL평택공장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는 23살 여성. 자신의 빵집을 차리겠다는 꿈을 안고 입사했던 그녀는 왜 3년이 되지 않아 참혹한 사고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해야만 했을까. 과연 그 사고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한 청춘의 꿈과 인생을 짓밟은 기업은 어떤 책임을 다했는가.
 
11월 11일 방송된 KBS1 <시사직격>은 '제빵왕과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 편을 통하여 SPC그룹의 비윤리적 경영 논란과 가혹한 노동환경의 폐해가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를 조명했다.
 
사고 당일, 평택 팽성의 119 종합상황실로 긴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으로 출동한 대원들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야했다. 희생자는 기계에 몸이 휘말려 이미 의식도 맥박도 없는 상태였다. 주변의 목격자들은 패닉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쇼크로 기절한 사람들도 있을만큼 아비규환이었다. 

희생자 고 이수영 씨(가명)은 평소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일에 대한 고충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수영 씨는 주간과 야간을 넘나들며 격무에 힘들어하면서도 꿋꿋히 성실하게 근무해왔던 사실이 밝혀지며 언타까움을 자아냈다.

제작진은 SPC 공장과 사무실을 찾았지만 관계자들은 취재를 거부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남성 직원은 수영 씨의 업무가 남성이 소화하기에도 힘든 격무였다고 폭로했다. 2인1조 근무라는 원칙도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직원은 수영 씨가 평소에 두 명이서 해도 힘든 일을 혼자 하는 모습을 본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높이 1미터에 가로 90cm, 2개의 날개가 회전하면서 재료를 섞는 배합기였다. 덮개를 열고 작동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 수영씨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덮개는 다른 곳에 놓여있었다.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운행을 멈추게 하는 인터록(자동제어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사측은 사고가 난 다음날에야 뒤늦게 인터록을 설치했다.
 
수영 씨가 남긴 업무수첩을 보면 주말에는 발주량이 배로 들어난다고 기록되어있다. 남성 직원은 과장급 담당자들이 발주량이 밀린다싶으면 공장에 와서 기기가동속도를 크게 올리며 굳이 직원들앞에서 휴대폰으로 직접 시간까지 재면서 압박을 준다고 폭로했다. 직원은 "예전부터 그랬다. 저희를 사람 취급을 거의 안해준다."고 증언했다.
 
사고가 난 SPL은 계열사의 빵 반죽 등을 공급하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빵 공장이다. 일일 평균생산량만 420만개에 이르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2021년 6월 한국산업안전공단이 배포한 혼합기 작업중 끼임사고 관련 시뮬레이션 영상은 수영 씨처럼 배합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안전교육을 등한시했다고 폭로했다. 과거에는 안전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으나 교육시간이 무급처리하려다가 근무시간만 30분이 늘어나는데 노조가 항의하자 이후로는 안전교육을 소홀히 했다고.
 
이에 SPC는 서면답변을 통하여 규정에 따라 관리자들이 안전교육을 실시했다고 해명하며 직원들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SPC 공장은 산업안전보건공간에서 '안전한 사업장'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측은 심사결과가 기준에 부합했고 5월 심사때는 혼합기 덮개가 설치되어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감독관들이 방문했을때만 미리 동선을 파악해서 보여주기식으로 대처했을뿐, 실제 작업 환경과는 많이 달랐다고 폭로했다.
 
해당 SPC 공장에서는 수영 씨의 사망사고 8일전에도 컨베이어 벨트 공정에서 손끼임 사고가 발생한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회사는 응급조치보다 직원들의 잘잘못을 문책하는데만 급급했다. 심지어 수영 씨의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 동료중 일부는 수영 씨의 사고와는 무관한 라인이라는 이유도 바로 출근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고.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자기 동료가 참혹하게 죽어간 그 현장 옆에서 빵을 만들게 하고 있더라."며 씁쓸해했다.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SPL 지회의 지윤선 씨는 "우리를 같이 일하는 동료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맞나."며 회사의 만행에 분노했다.

사망사고 목격자의 지인은 "회사에서 사망사고를 목격한 직원들에게 출근을 지시했다. 어제까지 가까이서 대화와 문자를 주고받던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힘들다고 하더라."고 증언했다. 이 사실이 공개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회사는 그제서야 뒤늦게 직원들에게 휴가와 심리치료 조치를 제시했다.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허영인 SPC 회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은 이과정에서 오히려 황당한 일들을 겪어야했다. 빵 공장에서 사고를 당한 고인의 빈소에 빵을 조문품으로 제공하는가하면, 관계자들은 슬픔에 잠긴 유족의 면전에서 보상조건을 거론하기도 했다고. 모친은 "보상이요? 그런거 다 필요없으니 내 딸만 돌려주라"고 울부짖었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전하며 유족은 눈물을 쏟아냈다.
 
SPC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최근 5년간 SPC 계열사에서 일어난 산업재해 사고만 총 759건으로 제조업계 평균의 1.4배에 이른다. 수영 씨의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에도 며칠 간격으로 노동장들이 크게 다치는 위험한 사고들이 속출했다. SPC는 제작진의 질의에 해당 직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사고 재발을 막기위하여 필요한 조치들을 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사고는 반복됐고 결국 귀중한 인명을 잃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과연 사고를 막지못한 것인가. 안 막은 것인가.
 
SPC 사고가 알려지면서 대중들은 크게 분노했다. 많은 이들은 이 사건을 기업의 무분별인 이윤추구로 인한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SPC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허영인 SPC 회장이 출연한 발전기금으로 설립된 '허영인 세미나실' 앞에 비판의 대자보가 붙였다. 서울대만이 아니라 대학가 곳곳에서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SPC가 빵을 남품하는 매장에서는 고객들이 SPC 제품임을 확인하고 구입을 포기했고,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찍어서 SPC 계열사 제품인지 확인해주는 사이트도 개발됐다.
 
SPC 계열사 매장의 직원들은 불매운동을 취재하려는 제작진에게 답변을 거부했고 회사에 즉각 보고해야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2013년에 남양유업이 갑질논란으로 불매운동에 휩싸이며 영업이익이 급락하며 홍원식 회장이 2021년 5월에 책임을 지고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등돌린 대중의 마음을 돌릴수는 없었다. 대형 기업들이 불매운동에 민감해진 이유다.

하지만 불매운동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가들만이 아니다. 사건과 무관한 가맹점주들은 회사의 잘못으로 벌어진 불매운동 때문에 애꿎은 피해를 당해야했다. 코로나19도 겪었다는 한 가맹점주는 "17년동안 장사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처음"이라며 씁쓸해했다.
 
또다른 가맹점주는 "열심히 빵을 만들었는데, 저희가 만든 빵이 잘못된 빵인 것처럼 인식되는게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본사는 자금력이 있어서 힘들어도 견딜수 있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고 길거리에 나앉게되는 것은 힘없는 일반인 자영업자들이다. 점주는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가장 두렵다. 대책도 기한도 없는 그런 공포다."라며 힘들어했다. 일각에서는 성급하고 과격한 불매운동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허영인 회장은 불매운동이 확산되던 지난 10월 21일, 사고 6일만에 뒤늦은 대국민 기자회견에 나섰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허 회장은 이른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지며 성공신화로 주목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공격적인 경영방식으로 가맹점에 대한 갑질횡포와 지배구조 문제를 일으켜 숱한 논란에 휩싸였다. 2020년에는 공정거래위로부터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하여 계열사에 부당지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징계를 받기도 했다.
 
허 회장은 SPC 계열사간 거래에서 반드시 삼립을 끼워놓아 부당한 마진으로 이윤을 챙기는 '통행세'를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다보나 원재료의 가격은 올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SPC그룹내에서만 원재료를 조달하게하는 폐쇄적인 구조로 바뀌면서 가맹점주와 중소기업까지 덩달아 피해를 양산하게 됐다. SPC측은 이에 역할에 따라 적절한 마진을 받은 것이고 통행세가 성립되지않는다고 부인했다.
 
또한 허 회장의 아들인 허희수 부사장은 2018년 마약 밀수-흡연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시 회사측은 허희수를 회사 경영에서 영구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고 본인도 참여 의시가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11월 말을 바꿔서 돌연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던 허영인 회장의 이야기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제보자로 나선 한 SPC 전 직원은 허 회장의 만행을 폭로했다. 허 회장은 매장을 순찰하다가 자신을 못알아봤다는 이유로 점장을 바로 해임하기도 했고, 매장 CCTV를 직접 확인하며 직원들의 사소한 행동까지 일일이 검열했다고 폭로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웠다고.
 
<시사직격>은 올해 5월에 SPC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폭로한바 있다. 직원들은 제대로 점심식사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몸이 아파도 조퇴가 허용되지않고 근무를 해야했다. 한 여성 제빵기사는 임신중에도 과도한 격무에 시달리다가 유산을 하기도 했다.
 
SPC는 취재진의 질문에 직원 휴무일을 보장하고 직원 추가채용과 업무-복지 시스템 등을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현장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방송 이후에도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고. SPC는 총수의 황제 경영 논란과 허희수의 복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언제든이 일어나룻 있는 일이다. '일하다 죽지않게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언제까지 울려퍼져야 회사와 우리 사회는 바뀔수 있는 것일까. 수영 씨의 죽음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하는 것일까.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24세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고는 우리 사회에 많은 충격을 줬다. 이후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물을수 있게 한 중대재해처벌법도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젊은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고는 계속되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졌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망사고 이후 허영인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유족에게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질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올해 1월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삼표채석장 붕괴 매몰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이후 첫 사고였지만, 정작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입건도 되지않았다. 서류상으로는 대표이사가 아닌 대주주에 불과하다는게 그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이익을 보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법 취지는 맞지만, 현재 형법 해석상 '모 회사의 주주를 경영책임자로 직접 처벌할수 있는지' 그 현실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심지어 정부가 재계의 압력에 밀려서 그나마 중대재해처벌법마저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있다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도 SPC 사건이 거론되었지만 정작 사측 관계자를 대변해야할 허 회장은 불참했다. SPC는 허 회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주장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안타까운 희생자가 또 나올때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이나마 바뀌어왔지만, 아직도 갈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애도의 시작이란, 책임자의 처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시사직격 SPC사망사고 허영인회장 불매운동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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