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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장면 바꾸자고 했다" 감독 조른 유해진의 속사정

[인터뷰] 영화 <올빼미> 인조 역할 맡은 배우 유해진

22.11.14 13:25최종업데이트22.11.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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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에서 인조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형이 왕 역할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형만이 할 수 있는 왕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안태진 감독의 이 기대감이 시작이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배우 유해진은 웃음기를 싹 뺀 채 인조를 연기했다. 17년 전 <왕의 남자> 속 광대 육갑으로 임금을 풍자하며 웃음을 주긴 했으나 진짜 왕 역할은 배우 경력 25년 만에 처음이다.
 
영화는 명청 교체기에 맞물린 조선 시기를 조명한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불명예를 얻은 인조는 유독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던 아들 소현세자를 미워했다고 한다. <올빼미>에선 그 증오를 직접 다루고 있진 않는다. 소현세자 독살 사건을 목격한 소경 침술사(류준열)의 시점으로 인조를 바라보고, 사건의 진실을 좇는 과정을 그린다.
 
유해진만의 인조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으로 유해진과의 인연이 깊다. 유해진은 "소통하기 편했고,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며 "감독은 유해진이 연기하면 다른 왕이 나올 것 같았다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제 질문이기도 했다"고 시작 과정을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유해진은 첫 왕 역할 관련한 자신만의 걱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코미디 연기로 관객분들이 절 친숙하게 생각하시기에 고민이 됐다. 처음 하는 왕 역할이라 해서 나왔는데 첫 등장에 실소하면 어떡할까 싶어서 첫 등장 장면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원랜 갑자기 인조가 등장하는 거였는데, 천천히 관객분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언론 시사회 때 그 장면을 가장 조마조마하며 봤다. 다행히 웃음은 나오지 않은 것 같더라.
 
배우 일을 하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것 같다. 왕 역할을 내가 해볼 수 있을까. 이건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역할은 전혀 생각이 없는데, 왕은 좀 다르지. 특별히 어떤 왕에 욕심나기보단 이 영화 속 인조가 특별해 보였다. 왜 꼭 그래야 해? 왕은 반드시 이래야 해? 이런 의문을 품고 연기하려 했다."

 
이번 영화가 유해진에게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움직임이 많은 액션은 아니지만, 온 몸과 정서적 에너지를 오롯이 쏟아야 하는 작품이라는 데 있다. 점점 광기가 어리는 인조를 두고 유해진은 연극할 때를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한다. "영화보다 연극이 좀 더 굵은 느낌"이라며 그는 "저만의 느낌이지만, 몇 발짝 걸을 때도 알 수 없는 공기의 무게를 느끼려 했다"고 말했다.
 
"다른 현장과 달리 무겁고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에 농담도 별로 안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까불다가 인조를 연기할 순 없으니까. 구안와사가 오는 장면에서도 스태프들은 분장하자고 했는데 제가 마다했다. 연기하는 데 거추장스러울 것 같았다. 웬만하면 전 분장을 안 한다. 뭔가 제약이 생기는 것 같거든. 그만큼 날 것 같은 인조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 NEW

 
선 넘은 나쁜 짓, 이해하려 했다
 
마치 재즈같았다. 인조라는 악보를 받은 유해진은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살려 변주했다고 볼 수 있었다. 기자 말에 그는 "그 표현이 참 좋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고 화답했다. 그만큼 우리가 아는 인조가 아닌, <올빼미>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인조의 모습을 유해진 스스로 찾아가려 한 셈이다. 유해진은 "이 영화는 역사 드라마라기보단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룬 스릴러로 보는 게 맞다"며 "주변 환경에서 오는 불안함에 인조라는 기형적 인물이 나왔다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조를 이해는 하려 했지만, 그 캐릭터를 연민할 순 없었다.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질렀잖나. 역사적으로 인조라는 왕에게 연민이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연민은 안 어울린다. <올빼미> 속 인조는 자기 욕망 하나만 보고 달린 것 같다. 영화를 보시고 나서 인조라는 캐릭터보단 영화 자체를 많이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다. 영화가 지닌 장점이나 여러 해석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저도 이 영화에 잘 섞여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
  

영화 <올빼미>에서 인조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지난 추석 연휴 개봉한 <공조2: 인터내셔날>이 약 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임에도 성공할 만큼, 상업영화에서 유해진이 출연한 작품은 크게 실패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다는 뜻이다. 그는 "작품을 못 고르진 않는 것 같다"고 재치 있게 받으면서도 "고른 뒤엔 아무래도 운이 많이 작용한다. 영화 선택과 꼭 같이 존재해야 하는 게 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엔 영화만 잘 만든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 뭐가 다 맞아야 하지 않나.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외부 환경이나 그런 게 좋지 않으면 극장엘 오지 않겠지. 일단 흥미를 끄는 작품이면 좋겠다. 재미가 있든 감동을 주든 영화를 봤을 때 어떤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름 영화 개봉의 의의를 정의하면서 그는 여전히 연기하는 맛이 좋다는 걸 강조했다. "볕 좋은 날 마음 맞는 팀과 모니터 앞에 앉아 시시덕거리며 웃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며 유해진은 "제가 땀 흘리는 시간 만큼은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든 일상에서든 땀 흘리는 가치를 알고 행복해하는 유해진은 연말 이후에도 꾸준히 달릴 예정이다.
유해진 올빼미 인조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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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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