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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잃은 계획의 실천보다 본질적 고민을 강조하다

[리뷰] 영화 <자산어보>

22.11.16 16:06최종업데이트22.11.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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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마침내'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진 기술과 기력을 아낌없이 쏟아내 결국에 해내는 과정에는 그 사람의 전부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를 '동기'라고 말하기도 하며 다른 말로 '삶의 의지'라고도 한다. 그리고 삶의 의지는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거창한 질문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일단 눈앞에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쓸 수도 있고, 크고 작은 계획을 실천하기에도 이미 바쁜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는 각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존재하겠지만, 확장하여 깊이 고민하는 것도, 나아가 그 모습을 서로에게 꾸밈없이 공유한다는 것도 결코 쉽지않다.
 
그러나 영화 <자산어보>는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삶과, 방향성을 상실한 계획만을 실천하며 사는 삶은 분명히 무력한 인생일 수밖에 없음을 그려내고 있다. 즉, 영화 <자산어보>는 삶의 의미는 인생의 크고 작은 계획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기존의 인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것에 집중한다.
 
먼저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저서인 <자산어보>와 정약용의 저서인 <목민심서>를 대비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확장하여 고민하는 것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두 서적은 단순하게는 실용주의적 성격을 띤 생물학 서적과 성리학적 질서를 정리한 실학서로 구분할 수 있지만 영화는 전자의 경우 고착화된 신념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려는 태도로, 후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상징화하여 대비시킨다.
 
청년어부 '창대'는 자신이 원하는 성리학의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출세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정약전은 창대를 제자로 삼으면서 조선의 신념이 가져오는 문제를 일상에서 가르치고 고민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창대가 옳다고 믿었던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만드는데, 이를 흑산도의 어종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자산어보>을 집필하는 과정으로 상징화했다.
 
또한 영화 <자산어보>는 삶의 의미를 객관화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하여 고민하는 태도가 계획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보다 상위의 개념에 있음을 청년어부 '창대'의 인생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창대는 정약전과 함께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다방면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 성장은 천민이었던 창대에게는 불가능하기만 했던 출세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창대는 막상 출세의 기회가 주어지자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고민하고 재해석한 삶의 방향성은 출세의 기회 앞에 한없이 약해졌고,  임금을 도와야만 백성을 위할 수 있다는 말로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알아갔던 '자산어보' 집필의 인생을 버리고, 일단 눈앞에 놓인 과거시험 합격이라는 계획을 실천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 <자산어보>는 창대가 과거시험에 합격 후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상실감과 허무함으로 불행하게 살게 하면서 이러한 선택이 가지는 위험성을 그려낸다. 창대는 관직에 올랐지만, 관리들의 이기심으로 많은 백성이 죽어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무력감과 허무함으로 느끼며 관직에서 내려와 흑산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흑산도로 돌아왔을 때는 정약전은 이미 죽은 뒤였고 창대는 스승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영화 <자산어보>는 이러한 창대의 인생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눈앞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기회를 따라 시간을 사용하는 것의 허무함을 그려내고 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를 확장하는 과정이 단편적인 시간을 계획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종속관계를 무시한 채 눈앞에 놓인 여러 기회로 삶의 의미를 바꾸어가는 인생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되며, 성취에는 허무함과 상실감이 남는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동기가 존재하겠지만, 그 출발은 삶의 의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정상에 도착하면 무언가가 있을거야'라는 흔한 사고 습관이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을 유예하고 목적없이 걸어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자산어보>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방향성 위에 설정되는 동기만이 마침내 한 인간을 움직이게 하며, 그러한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우리는 무엇이 옳은 삶인지 그 답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를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확장해나가는 과정은 정약전이 유배지에서도 많은 이들의 유익을 위한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도 삶의 가치를 잊지 않고 이를 실현하는 인생을 살게 할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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