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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이정후, 아버지 그 이상을 넘어

[KBO리그] 2022 KBO 시상식, 키움 이정후 MVP 수상

22.11.18 12:07최종업데이트22.11.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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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시상식에서 KBO 최우수선수상(MVP)과 타자 부문 타율상, 타점상, 안타상, 장타율상, 출루율상을 수상한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앞에 상패들이 놓여있다. 2022.11.17 ⓒ 연합뉴스

 
스포츠계에서는 선친의 뒤를 이어 같은 종목에서 활약하는 2세 선수들이 많다. 선대가 후대보다 낫거나, 후대가 선대보다 더 빛난 경우도 있지만, 선후대가 모두 '슈퍼스타'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물며 2대에 걸쳐 리그 MVP까지 등극한 경우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 전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바람의 가족' 이종범-이정후 부자가 그 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지난 17일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서울호텔에서 열린 '2022 KBO 시상식'에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올해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MVP를 수상했다. 이정후는 142경기에 나와 553타수 193안타(23홈런) 113타점 85득점 5도루 타율 .349 장타율 .575 출루율 0.421을 기록, 리그 타율·안타·타점·장타율·출루율 5관왕에 올랐다.
 
생애 첫 수상인 이정후는 2018년 김재환(두산 베어스) 이후 4년 만에 국내 선수로 MVP를 받게 되었으며, 히어로즈 소속으로는 2014년 서건창에 이어 8년 만이다. 이정후는 지난해에도 MVP 후보에 올랐으나 당시에는 아리엘 미란다(두산)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올해는 유효표 107표 중 104표를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이대호(2표), 팀 동료인 투수 안우진(1표)을 여유 있게 제치고 지난 해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또한 이정후가 수상하면서 아버지 이종범에 이어 최초의 '부자 MVP'라는 진기록도 탄생했다. 이종범은 해태 타이거즈(현 KIA)에서 뛰던 1994년 이종범은 타율(0.393), 최다안타(196개), 득점(113점), 도루(84개), 출루율(.452)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MVP를 수상한 바 있다. 아버지 이종범과 아들 이정후 모두 당시 24세의 나이였고 타격 5관왕을 수상했으며 그 해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는 공통점에서 기묘한 평행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자 MVP는 1982년 태동하여 40년 역사의 KBO리그에서 최초는 물론이고, 150년이 넘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VP)와 70년이 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아직 나오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종범은 1994년 MVP 수상 당시 부친인 이계화 씨를 언급했다. "수상의 영광을 아버님에게 돌리겠다. 아버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며 영광을 돌린바 있다.
 
28년의 시간이 흘러 MVP를 거머쥔 이정후도 이종범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동안 항상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왔다. 오늘을 계기로 내 이름으로 살아가겠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이어가셨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출중한 재능을 물려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또 한편으로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 따라다니는 비교와 기대감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선대와의 비교는 모든 스포츠 2세대들의 숙명이다. 특히 선대가 '레전드'일수록 비교대상이 되는 후대들이 받아야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정후-이종범 부자에 앞서 스포츠계 대표적인 2세대 스타들은 축구의 차범근-차두리 부자, 농구의 허재와 허웅-허훈 부자 등을 꼽을 수 있다.
 
'갈색폭격기' 차범근은 1970-80년대 당대 세계 최고의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하고 국가대표 역대 A매치 최다득점기록을 보유한 전설이었다. 아들 차두리 역시 국가대표를 지내며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로 활약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오랜 시간 뛰었던 훌륭한 선수였지만, 한국축구 '올타임 넘버원'으로까지 꼽히는 차범근의 거대한 위상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허재는 현역시절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전성기가 지나던 30대에 프로농구(KBL)가 뒤늦게 출범했음에도 1998년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으며, 국제대회에서도 월드컵 단일 경기 최다득점(61점) 기록을 세우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아들인 허웅(KCC)과 허훈(상무)도 현재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포인트가드인 허훈은 2019-20시즌 부친도 이루지 못한 프로농구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형제 모두 우승경험은 아직 없고, 기량면에서도 '역대 최고의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이자 해결사였던 허재의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평가다.
 
그렇다면 이정후의 위상은 어떨까. 일단 역대 스포츠 슈퍼스타 2세대 중에서는, 야구를 비롯하여 모든 종목을 아울러서도 올타임 넘버원이라고 할 정도의 위상을 구축했다고 할만하다.
 
이정후는 데뷔 첫 해 2017년부터 신인 선수 최다 안타(179개)와 최다 득점(111점)을 기록하며 아버지 이종범도 못 이룬 신인왕(당시 1993년 삼성 양준혁)을 차지했다. 2021년에는 이정후는 타율 .360을 기록하며 아버지에 이어 '부자 타격왕'에 등극했고, 통산 747경기 만에 1천 안타를 돌파하며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던 최소 경기(779경기) 1000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는 고 장효조, 이정훈, 이대호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타격왕 2연패를 해냈고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았다. 이정후가 걸어온 길이 곧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정후가 아직 아버지 이종범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면, 다재다능함과 우승 경력 정도다. 이종범은 전성기 시절 유격수로 수비에서도 당대 최고였고, 도루왕을 휩쓰는 주루능력에, 장타력까지 갖춘 5툴 플레이어이자 팔방미인이었다. 본인이 선수로 뛰는 동안 타이거즈에서 4회 우승에 기여하며 혼자 힘으로도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았다.
 
반면 이정후는 뛰어난 컨택트 능력을 지닌 중장거리 타자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수비-주루 등 경기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력에서 전성기 이종범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부자가 각자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와 2020년대의 야구환경은 수준 차이가 크고, 이정후는 아직도 더 성장 중인 선수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평가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실제로 기록에서 보듯이 이정후는 벌써 몇몇 부분에서는 전성기의 이종범을 뛰어넘은 영역도 존재한다. 심지어 '고척 아이돌'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나 스타성에서도 당대의 전국구 스타였던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던 아버지처럼 이정후도 플레이오프 MVP를 벌써 2번이나 수상하며 가을야구같은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증명했다.
 
이제는 아버지와 별개로 순수하게 그저 이정후라는 선수 본인만 놓고 평가하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살아있는 레전드'라 불러도 손색 없을만한 업적을 쌓았다. 아직 아버지를 확실하게 뛰어넘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이를지 몰라도, 최소한 최전성기의 아버지와 이제는 선수로서 대등한 선상에서 충분히 우열을 논할수 있을만큼 '동급'의 반열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정후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누구도 예측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정후는 내년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해외진출 자격을 갖추게 된다. KBO리그에서 독보적이었던 이종범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 잠시 진출했으나 불의의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로 인한 적응실패 등으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지금의 이정후는 일본보다도 훨씬 위상이 높은 세계 최고의 리그인 미국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위대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데 이어, 더욱 거대한 도전을 꿈꾸고 있는 이정후가 써내려갈 역사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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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이종범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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