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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부에 아들 뺏겼지만... 무능한 엄마 되지 않겠다"

참사 24일 만에 공식 회견 연 유가족들...대통령 진정한 사과 등 6가지 요구사항 발표

등록 2022.11.22 14:24수정 2022.11.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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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0·29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 만에 유가족들이 공식적인 목소리를 냈다.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주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은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앞에 두고 토해내듯 발언했다.

"저는 김인홍 아들의 엄마입니다. 오스트리아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항상 YES와 NO를 확실히 가르쳤습니다. 나라를 이끄시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참으로 답답합니다. 제가 여기에 동참한 것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28일 비엔나에서 아들 장례식이 있어서 가야만 합니다. 외국인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겠습니다." (희생자 김인홍의 어머니)
 
"1997년 6월 29일 태어나 2022년 10월 29일 26세에 꽃다운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하나뿐인 우리 딸 이상은의 아빠입니다. 대학 졸업과 함께 미국 공인회계사에 합격하고 '아빠 합격했어' 하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너 가고 이튿날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회사에서 문자가 날아왔는데 너는 갈 수가 없구나. 다시 태어나서 우리 꼭 만나자. 엄마 아빠 걱정 말고 뒤 돌아보지 말고 이승에서 모든 고통 버리고 힘내서 잘가라." (희생자 이상은의 아버지)


"내 자식 태어난 곳, 태어난 시간, 태어난 날짜, 태어난 순간을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저희 아들 사망진단서입니다. 사망일시도 추정, 사망 장소도 추정.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군가 도와주어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라도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빼앗겼지만 엄마는 더이상 눈물만 흘리는 무능한 엄마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들이 어처구니 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밝혀달라고 소리치겠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 날의 진실과 투명한 조사, 책임 있는 자의 사퇴,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입니다. 영정사진도 위패도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아이들도 국민이고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남훈아." (희생자 이남훈의 어머니)
 

"10월 29일 저녁 10시 15분.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은 묻습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었다고 떠벌린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보고 받은 적 없다고 일관하는 용산구청장 박희영, 용산경찰서장 이임재, 서울경찰청 상황 관리관 류미진에게 생명의 촛불이 꺼져갈 때 뭐하고 있었나 묻고 싶습니다. 찢어지는 유가족 마음을 헤아려서 우리 아이들 죽음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희생자 송은지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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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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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핼로윈 분장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두 가지 말은 꼭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 이 참사는 13만명이 모이는 인파 군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문제입니다. 집회 대처와 대통령실 경호에 경찰력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참사의 원인입니다. 둘째, 참사 이후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수습진행 상황 안내, 피해자 권리 안내 등 기본적 조치도 없었습니다. 유족들 모임을 차단한 정부 대처는 비인도적입니다.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유족들이 만날 공간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겁니까. 정부는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우리 얘기에 답변해야 합니다." (희생자 이민아의 아버지)
 

"존경하는 대한민국 대통령님께. 저는 희생자 배우 이지한의 엄마입니다. 법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사건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158명을 생매장한 사건입니다. 초동대처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단 한 명의 희생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국무총리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그곳에서 '압사당할 거 같다'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에서 설렁탕 먹고 뒷짐지고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부작위 살인에 책임을 지워 형사 책임 지워야 합니다. 대통령 도와주세요. 다시는 청년들이 생매장 되지 않도록 어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믿습니다. 믿겠습니다. 믿을 것입니다." (희생자 이지한 어머니)
 

어머니는 발언 말미, 이지한씨의 마지막 육성을 들려주었다. 직접 부른 짧은 노래와 함께 고 이지한씨는 "엄마 생일축하해, 사랑해"라 녹음해 어머니의 생일날 전해줬다고 한다.

참사 24일 만에 유가족들 첫 공식 회견...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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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심경과 요구사항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6명의 유가족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발언을 쏟아낸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모두 28명의 유족이 함께했다. 한 어머니는 아이의 영정사진을 가슴팍에 품고 있었다. 해사하게 맑은 얼굴 위로 검은 리본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휴대폰 화면에 띄운 채 흐느꼈다. 아버지는 통곡하다, 흐느끼다 쓰러질 뻔 했지만, 잠시 회견장 밖으로 나가 호흡을 고르고 다시 돌아왔다.

희생자 송은지씨의 아버지가 김의곤씨의 시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를 낭독하자 회견장은 통곡소리에 잠겼다. 아버지가 '뒤로, 뒤로, 뒤로'를 읊을 때, 어머니들은 눈물을 터트렸고, 한 아버지는 "저희를 대신 데려가고 자식들을 돌려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

이날 유족들은 6가지 요구사항을 정리해 발표했다.

▲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참사 책임이 정부·지자체·경찰에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함) ▲ 성역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유가족·생존자 포함 모든 피해자들이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 보장) ▲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정부는 공개를 희망하는 유가족의 의사를 확인한 후 공개 가능한 희생자 이름을 공개해야 함) ▲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이 그것이다.


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TF'(이하 'TF')는 희생자 유가족 34분과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모은 '요구사항'을 정리해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TF 공동간사를 맡고 있는 오민애 변호사는 "지난 두 차례 간담회에서 확인한 건 정부가 최소한의 기본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참사와 관련된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라며 "가족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유가족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진정한 애도와 추모는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라며 "유가족은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주체여야 한다. 재난 참사 피해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위패 없는 분향소가 유족에게는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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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TF 팀장을 맡고 있는 윤복남 변호사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추가 고발계획'에 대해 "수사가 미진한 상태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준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민변 측 변호사와 유가족들은 '희생자 이름 공개 논란'이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딸 아이의 영정사진을 내내 껴안고 있던 한 어머니는 기자회견 말미, 참다못해 나와 발언했다.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전에 저희 동의 없이 위패 없이 영정 없이 차려진 분향소가 저한테 2차 가해였습니다. 분향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 앞에 교복 입은 학생이 무릎 꿇고 통곡하는 걸 봤습니다. 그게 분향소가 맞나요. 그런 분향소 보셨나요. 저는 못봤습니다."  

윤 변호사는 "명단 공개 얘기가 많은데 그게 핵심이 아니"라며 "유가족 뜻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희생자 추모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지금 희생자 명단은 정부의 선제적 조치가 없다보니 사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형태"라며 "동의하시는 분들의 명단은 공개하는 것, 그것이 유가족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명단 공개가 잘못됐다, 잘됐다가 핵심이 아니고 정부의 공적 조치를 통해 진행했으면 될 일"이라며 "정부 조치가 미비인데,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압사 참사 #유가족 기자회견 #첫 공식 발언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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