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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돌봄전담사 처우 개선 없이 안정적인 돌봄은 없다"

[학교 안의 유령, 학교 비정규직 여성 이야기 ②] 초등돌봄전담사 정현미

등록 2022.11.24 09:37수정 2022.11.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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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 유령노동자가 있다. 90%가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교직원의 40%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돌봄노동이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 그대로 옮겨왔고 임금노동으로 '공식화'되었다.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학교의 많은 직군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적은 인력으로 힘든 일을 시키며 저임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 예산이 넘쳐나도, 국가는 비정규직 노동권 향상을 위해서 예산을 배분하지 않는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공공 교육·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들, '학교 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급식조리사, 특수교육지도사(특수교육실무사), 청소실무사, (초교병설)유치원 방과후전담사, 돌봄전담사의 이야기를 6회의 연재를 통해 전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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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돌봄교실 운영 시간 연장은 학부모도 원하고 있다. 돌봄교실 운영시간연장은 시간제 초등돌봄전사에게도 시간확대와 안정적인 처우개선을 가능하게 한다. ⓒ 조순아

 
초등돌봄전담사는 초등학교 정규수업 과정 이후 아동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한부모, 조손 가정 등의 아동이 안전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초등돌봄교실에 근무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다. 학교 안 아이들의 돌봄을 책임지는 전국의 초등돌봄전담사는 2022년 4월 기준 총 1만 2046명이다. 그중 8시간 전일제 근무자는 5101명으로 지난해 8월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이 초등돌봄교실 운영개선 방안 발표 이후 증가했지만 여전히 시간제에 머무르고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초등돌봄교실은 아동의 돌봄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 아동의 입장에서 차별 없는 돌봄을 받고 있어 해마다 학부모에게 95% 이상의 만족도를 얻고 있다. 이처럼 돌봄교실은 학교라는 안정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어 매년 입실 전쟁을 치르곤 한다. 추첨에서 떨어진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학원셔틀'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돌봄교실은 부모들이 믿고 맡기는 공적 돌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예견치 못한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학교는 멈추어도 돌봄교실은 단 하루의 멈춤 없이 긴급돌봄 역할까지 맡았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한 장 지급되지 않았던 현장에서 돌봄전담사들은 코로나 감염 위험을 감수하며 아이들을 돌봐왔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 학교 학급에는 쌓여만 가던 소독 티슈를 아이들이 등교하는 돌봄교실은 학급이 아니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고, 정상 등교 시 일반 학급 아동을 위해 비축해 놓은 마스크를 돌봄교실 아동들에게는 지급할 수 없다던 학교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도 25명이 넘는 아동을 한 돌봄교실에서 돌보게 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색하게 했던 곳 등 학교 현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더 확연히 드러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더라도 돌봄교실은 운영하겠다던 유은혜 전 교육부장관의 발언처럼 돌봄교실은 학교에서 꼭 필요한 곳이고 돌봄전담사는 필수노동자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필수노동자 대책에 돌봄전담사는 고용이 보장됐다는 이유로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의 돌봄전담사 중 시간제 42%가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로 짧은 근무시간 안에 수많은 일들을 압축노동으로 처리해야 하거나 초과근무가 발생함에도 인정은 고사하고 공짜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돌봄교실이 법적 근거도 없이 17년째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고 최근에는 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겠다는 위협과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주먹구구식의 초등돌봄정책으로 인해 지금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학부모가 가장 넘기 힘든 돌봄 장벽이 되어버렸다. 현재의 돌봄정책과 제도로는 여성의 경력단절문제도, 세계 최하위 출생율을 개선하기에도 벅찬 일이다.

돌봄노동을 필수노동이라고 하지만 이에 걸맞게 제대로 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제 돌봄전담사를 상시전일제로 전환하고 돌봄교실의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안정적인 돌봄교실 운영을 보장하는 것은 돌봄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노동자에게도 모두 필요하다.

현재의 주먹구구식 초등돌봄제도는 엄마인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 문제나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도 부족할 뿐더러 돌봄전담사 일자리로 투입되는 여성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결국 여성노동이 주변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더욱 강화한다. 

지난 11월 18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집담회에 참가한 정현미(66년생, 근무 11년차) 초등돌봄전담사와 초등돌봄교실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압축·공짜노동 강요 받는 초등돌봄교실 노동자"

- 현재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IMF로 실직 후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학교에서 인턴교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면서 학교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때는 인턴교사가 돌봄 업무도 담당했는데 저녁 돌봄 채용 공고를 냈으나 지원자가 없다고 해서 저녁 돌봄까지 하게 됐다. 당시에는 인턴교사와 저녁 돌봄까지 하면 2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근속 수당까지 포함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벌써 10년 전 일인데 생각해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기에 시간제 일자리를 원한다는 편견이 있다. 실제로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비율이 높은가.

"사회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를 양육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벗어나면 학원비나 가계 보탬이 되려고 시간제 일자리를 찾아 사회로 나오는 여성들이 많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전일제 근무보다 시간제 일을 하게 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지 그때는 전일제보다는 시간제 일자리를 7대 3 정도로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랄수록 여성들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 경제 활동이 우선이긴 하지만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클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의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기업 10곳 중 6곳은 여성 임원이 없으며 한국의 유리천장지수 역시 세계 주요국 중 9년 연속 꼴찌를 달리고 있다. 이것만 봐도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 아닌가."

- 가사 및 돌봄노동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해내는 노동'이라는 이유로 폄하되어 왔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 방문했을 때 이혼 후 혼자 벌어 아이들을 보살피고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분들은 나를 붙잡고 상시전일제로 제대로 일하고 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우리나라 출생율이 세계 최하위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주 양육자가 여성의 몫이고 생계를 부양하는 것 역시 아직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야속하기만 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꾸어야 하는데 그조차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위탁 업체를 통해 돌봄을 한 경력이 있다. 그곳에서 인턴교사를 하고 돌봄을 함께 해서 보수가 200만 원이 넘었다. 그러다 돌봄전담사를 무기계약직으로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위탁을 그만두고 전환했는데 갑자기 4시간 시급제 일자리로 바뀌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행사가 있는 날에는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 많아 80만 원 정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육감 직고용이 되면 좋은 줄 알았는데 억울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마침 집과 5분 거리에 학비노조가 있었다. 그래서 일하는 지역 35명의 돌봄전담사들에게 일일이 다 연락해 조직하자고 해서 모두 같이 가입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활동이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하는 투쟁을 시작하는 첫 계기였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하면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떼쓰는 집단으로 매도되어 왔기 때문에 학교부터 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부가 노동자를 산업일꾼, 인적자원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부 교육정책의 잘못이라는 게 명백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학생 대부분은 졸업 후 노동자가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한민국 현실이다."

- 돌봄 업무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돌봄교실은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맞벌이 가정의 증가와 양육환경의 변화로 저소득, 한부모, 다문화, 다자녀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가정환경을 가진 아이들이 온다. 세심하게 보살피고, 사회생활의 기본부터 두루두루 알려주려 한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 아이들부터 학부모까지 확대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같은 돌봄교실의 아이가 책을 읽는데 다른 아이가 그 책을 자기가 읽어야 하면 다툼이 생긴다. 학부모의 다툼이 돌봄전담사를 해고하라는 일로 번지고 징계와 사과를 동반하기도 한다."

- 돌봄 노동은 많은 체력을 요한다. 건강은 괜찮은가.

"저학년 아이들이라 손이 많이 간다. 잠시라도 느슨해져선 안 된다. 아이 개개인의 일정을 확인해서 방과후프로그램부터 학원, 하교까지 안전사고에 대한 염려로 항상 집중하고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앉아 있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돌봄전담사들의 업무 환경이다. 돌봄시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서 있는 시간이 많아 선 채로 PC 업무를 보다 보니 테니스엘보도 생긴다. 또 방과후 수업에 갔다가 없어지는 아이들을 찾으러 뛰어다니다 보면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있다. 퇴근 후에는 몸도 마음도 파김치가 된다. 아이들이 정규수업 교실보다는 돌봄교실에서 훨씬 자유롭다 보니 많은 말들을 한다. 이런 영향인지 청각에 이상이 있는 분들도 있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등 다니는 경우가 많다."

- 행정 업무를 위한 시간 확보가 돌봄전담사들에게 시급한 일이다. 문서 결재 처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힘든 점은 없는지.

"아이들을 돌보면서 행정 업무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 작성할 때 실수가 빈번하다. 점 하나 찍는 것도 지적당하면 다시 회수해서 수정해야 하고, 70만 원을 700만 원으로 잘못 입력하기도 한다. 돌봄전담사와 관리자들의 출근 시간이 달라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해도 교감 선생님이 이해할 수 없다며 다시 불려간다. 행정 업무만 하는 사람도 아닌데.

특히 돌봄교실은 수요조사가 많은데 코로나 긴급돌봄 때는 더했다. '돌봄'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모든 공문이 돌봄전담사에게 오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프로그램 강사 서류에 채용 면접까지 봐야 하고 성범죄 조회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아이들만 돌보면 되는데 무슨 할 일이 많느냐'고 하는데 돌봄 관련 행정 업무가 많다는 점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시간을 늘려 월급을 더 챙기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 외에 준비하고 행정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

"돌봄전담사의 불행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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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초등돌봄전담사들은 지자체이관, 민간위탁이라는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 조순아

 
- 시간제 근무로 압축노동을 강요받고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만 돌봄전담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행정업무처리, 수업준비, 마무리 시간을 주지 않는다.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은 근무 시간 외로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것이 압축노동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돌봄교실의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는 돌봄 담당 교사가 하던 업무들도 하나둘 넘어오면서 압축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돌봄전담사의 압축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를 단시간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방치하고 업무 하기 일쑤다. 돌봄교실을 이용하는 아동 대부분은 1~2학년 아이들인데 어떻게 방치하고 업무를 볼 수 있겠나. 우리는 아이들을 방치하게 만드는 교육 당국의 안일한 운영이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지만 귀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게 큰 문제다."

-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문제도 초등돌봄전담사에게 초미의 관심사 아닌가.

"최소한 제대로 된 정부라면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계속 지자체 이관을 얘기하고 있다. 어른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초등돌봄교실을 공적 돌봄의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

한때 위탁업체에서 근무했었다. 하지만 학교 안에 있는 돌봄교실은 학교장의 지시도 따라야 했는데 이는 불법 파견이었다. 그때는 급여에서 위탁업체에 수수료를 내야 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학습 준비물 비용도 1년에 고작 9만 원밖에 받지 못해서 색연필과 색종이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봄교실의 질을 높이려면 아이들 활동에 제약이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들의 돌봄을 두고 왜 이리 나 몰라라 하는지 모르겠고, 학교 안에서 방과후 아이들의 돌봄을 책임지는 우리들의 처우는 항상 뒷전인 것이 안타깝다. 돌봄전담사의 불행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교육 당국과 전국의 시도교육청은 아이들과 행복한 돌봄교실을 꿈꾸는 돌봄전담사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대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등돌봄전담사 #필수노동 #여성노동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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