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집념으로 일궈낸 서해미술관

서산시 첫 공식미술관... 정태궁 관장의 목각 회화 작품도 볼 만

등록 2022.11.29 16:38수정 2022.11.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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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미술관(충남 서산시 부석면 무학로 152-13)에 가면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 ⓒ 최미향

    
개인적으로 숨 고르고 싶을 때 자주 찾는 곳이 서해미술관이다. 고즈넉한 산자락 아래 얌전히 몸을 숙이고 앉아 서산시 부석면 창리 포구를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는 서산시 첫 공식 미술관.

창리는 부석면 간월도리와 태안군 남면 당암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대건설의 대규모 간척 사업 시발 현장이기도 하다. 우럭과 새조개 등 풍부한 수산물을 자랑하고 있으며 천수만 철새를 보기 위한 출발점이다. 특히 포구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할 정도로 탄성을 자아낸다.

이렇듯 한적하고 아름다운 포구에 미술관이 들어선 건 이십여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분교가 있던 이곳은 세속의 달콤한 유혹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은, 마치 벽면수행 아니 벽면좌선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서해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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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각 전시실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 ⓒ 최미향

 
몇 년 전 나는 이곳에서 북토크콘서트 작가로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손님들은 주로 다도 회원들이었는데, 그날 고소하고 담백한 내음이 코를 살살 간지럽혀 자꾸 목이 탔던 기억이 있다. 

창문 너머에는 때마침 가을 단풍이 미술관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레지던스 작가들의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잠시 한 꼭지 시간을 채운 날이었는데 내겐 행운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처음 서해미술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특히 미술관에 주차하고 눈에 띄었던 설치미술 작품들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보니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남긴 작품들 속에는 울창한 숲속에 산새 둥지 같은 아늑한 미술관의 인상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 줬다.

서해미술관 화백 정태궁 관장은 "행사가 끝나면 그들의 작품이 미술관에 영구 보관되어 서해미술관의 또 다른 역사로 남겨진다"고 말해 관심이 더 갔다.

정태궁 관장의 집념이 이뤄낸 서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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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미술관 화백 정태궁 관장 . ⓒ 최미향

 
서해미술관의 역사 속에는 화백 정태궁 관장을 빼놓을 수 없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가꾸어 온 그의 집념이 오늘의 서산시 첫 공식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20여 년 전, 문화적 불모지였던 이곳 창리 포구에 미술관 건립의 꿈을 실현했다.

당시 IMF 구제금융으로 온 나라가 어려워진 뒤끝이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그것은 비단 미술관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그의 작품 세계도 무모함 그 자체였다. 캔버스에 물감이 익숙하던 그 시절에 나무판 위에 이미지와 형상을 덧붙이는가 하면, 나무와 돌과 색채가 새로운 결합을 통해 이질적 의미의 확장을 도모했다. 그의 시도는 융합이 실현된 현장이었다. 상당히 독창적이었다.

그때는 융합이란 용어가 아직 부재하던 시기라 주위의 눈초리가 상당히 따가웠으리라 미리 짐작된다. 융합이란 유행어는 그로부터 족히 십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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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궁 화백의 작품들 . ⓒ 최미향

 
특히 최근 우리 회화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여건 속에서 다양한 회화 양식이 분출하고 있다. 이따금 목조회화도 더러 눈에 띄는데 적어도 30년 전, 1990년대 초 목각회화를 과감히 선보인 화가가 바로 서해미술관 정태궁 관장이다. 그래서 그의 도발적인 출발은 다분히 선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미술관이든 작품 세계든 가리지 않는다. 서해미술관 화백 정태궁 관장은 벌거숭이 산에 나무를 심듯, 이곳 창리 포구를 미술관 불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이 작은 포구를 서산에서도 손꼽히는 예술촌으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문화창달과 예술의 저변 확대란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인 것 같다.

그가 외롭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지켜오는 동안 어느 틈엔가 서해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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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미술관 운동장에 설치된 정태궁 화백 작품 . ⓒ 최미향

 
시인 이경교는 정태궁 화백을 두고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평론가는 그의 회화를 부조浮彫회화라고 일컫지만, 나는 그의 창의적 회화를 목각木刻회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은 캔버스가 아니라 나무 위에 조각칼로 새겨지고 끌과 망치의 도움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며 "물론 부조회화적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워낙 오래된 부조회화의 고전적 맥락에 그의 방식을 연결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시인은 "돋을새김 방식을 통하여 입체성을 환기한 고전양식이 부조회화다. 그리스 로마미술은 물론 불교미술에서도 그 사례는 충분히 엿볼 수 있다"며 "그러나 정태궁의 목각회화는 부조회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걸 가일층 조작하고 왜곡시킨 모더니티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더구나 그는 "그의 방식이 부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돋을새김만이 아니라, 파내어 음각을 부각하거나 스크래치를 강조하여 테마가 다양하게 변형되는 점, 그리고 돌을 붙여넣는 3차원적 왜곡으로의 확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특징들이야말로 그의 회화가 부조회화의 경계를 초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태궁 화백의 작품 목각회화를 두고 "캔버스와 액자를 거부하고 나무판 위에서 작품을 만들고, 그 나무판이 그대로 액자로 기능한다는 건 간접적 소재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무와 그림의 직접적 소통을 도모한 의도로 읽힌다"며 "아울러 페인팅과 조각의 과감한 결합은 물론, 돌을 사용한 붙여넣기까지 동원됨으로써 하나의 융합을 실험한 셈이다. 화가의 이런 실험정신을 목각회화란 명칭 이외에도 융합회화나 삽입회화란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고 본다"고 했다.

에필로그

나는 정태궁 화백의 그림 속에 스며있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기 위해 애를 썼던 적이 있다. 그것은 서해미술관을, 그리고 화백 정태궁 관장을 이해하는 첫 단추였기 때문이다. '자연은 영혼의 상징이며, 예술은 자연을 축소하거나 변형한 것'이란 누군가의 말처럼 정태궁 화백의 작품은 자연소재인 목판 위에서 나무와 돌이 화가의 조형적 구도에 의해 물감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보면, 정 화백의 초기 작품이 추상적 세계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섭리의 스토리텔링이었다면, 후기작들은 오브제를 생략하고 압축하는 미니멀리즘 경향으로 바뀌어 있다. 특히 정태궁 화백의 목각회화는 전기의 산문적 구성양식이 후기의 시적 비약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기의 이야기 구성방식 역시 침묵이 강화된 쪽으로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 화백의 목각회화가 전기의 우렁찬 낭송에서 후기의 묵독양식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멀리서 지켜보는 중임을 고백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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