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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태원... 살아남은 1990년대생들은 두렵습니다

[이 참사를 응시하라②] 우린 무사히 30대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요

등록 2022.12.05 09:51수정 2022.12.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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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오후 이태원압사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2010년대에는 비애였고 2020년대는 혐오인가
이제 이 시대는 우리에게 무슨 고통을 새길 것인가 1)


'안전'하신가요? 안녕이란 말 대신, 안전을 묻는 말로 인사를 건넵니다. 저는 아직 학기 중이어서, 하필 대학생에게 가장 바쁜 달이어서 단순하고 반듯한 일상을 '강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은 버석거리고 머릿속은 복잡한 날들을 보내면서요.

제가 다니는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엔 매일 아침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몰리곤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던 지하철인데, 문득 생과 사를 가르는 최전선처럼 느껴집니다. 에스컬레이터를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그 거리'에 얼마나 많은 비명과 황망한 죽음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이태원 참사를 마음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긴 채 새 달을 맞이할 수 없어서 평소와 달리 반대 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태원역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향냄새를 맡다가 기시감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컨트롤타워 부재와 초기 대응 미흡, 뒤늦은 재발 방지대책,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조롱...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닌 것처럼, 마치 참사를 겪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할 것처럼 우리는 참사들을 겪었습니다.

"팽목항에서 사고가 났는데, 모두 구조됐대. 참 다행이지"라던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두어 시간 만에 "배 안에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 물이 차오르는데도 아직 못 나오고 있대"로 바뀌었던 열일곱의 그 날이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선생님은 그 일이 마치 당신의 오보로 벌어진 것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다들 한 명이라도 구하려 애썼어"라는 말... 그리고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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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국무위원들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 박진 외교부장관, 권영세 통일부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이희훈

 
'너의 마지막 발자취를 보러왔어'
'이제 진짜 갈게 미안하고 사랑해'
'많이 오래 기도할게'

제 소중한 친구 '양'도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참혹한 상황을 지켜본 동료 시민들의 회복을 빌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주 7일을 일하는 '양'을 떠올리며 너무 지질하게 사는 것 같아서 눈두덩이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지문으로 멎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뜬 눈으로 밤새 서빙하고 월 80만 원이란 월세에 젊음을 바치는 '양'. 일터에서 인수인계를 해줬던 선임 언니가 구급차에 실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4시간 동안 누빈 이태원 거리,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팔 걷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뱉은 호흡과 어떻게든 질서를 만들려는 외침.

"역에서 직장까지 불과 5분 거리인데, 개찰구부터 꽉 막혀서 40분이 걸렸어.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귀가 터질 듯 계속 울리길래 옥상에서 그 도로를 내려다봤어. 사람들 표정이 다 보였어. 애원하고 혼절한 사람들의 그 표정이. 직원의 손을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덮인 모포를 걷어내면서 일일이 얼굴을 확인했어. 그날은 정말 모두의 심장 소리가 요동치는 듯했어. 내가 봤던 그곳에선 다들 한 명이라도 구하려고 애썼어."

촛불의 나날을 보낸 사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10대부터 들은 몸서리치는 속보들에 날카로워진 시선과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한탄이 글자가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태원 합동분향소는 정부가 정한 애도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정리됐습니다. 저는 그곳에 다시 가서 마이크를 잡았어요. 대형 인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깨져서 더는 입 닫고 애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이크를 꼭 쥐고 말을 이어가는 중에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데, 책임지겠다는 어른은 대체 어디 있죠?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책임은 사라지고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추궁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은 리본에 '근조'를 지우고 책임자 없는 사고라고 주장합니다. 교육부장관이 전국의 교육청에 노란 리본을 달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고, 끝가지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한 대통령이 겹칩니다.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말과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말이 겹칩니다.

'일탈하다 변을 당한 애들' '흥청망청 유희를 즐기러 갔다가 죽은 애들'이라는 비난도 귀에 박힙니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때마다 느끼는 이 공포는 왜 공유되지 못하는 걸까요? 간명한 애도는 새로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산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간신히 아문 딱지는 자꾸 벗겨집니다.

살아남은 1990년대생을 수치로 셈하는 일... 그만하고 싶다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곳이 바로 이곳이며, 언제 겪을지 모를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살아남은 1990년대생을 수치로 셈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탄핵으로 대통령을 바꾸고도 여전히 불안전한 국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잃은 것이 많은 밀레니얼에게 과연 미래는 있습니까? 이곳에서 우리는 무사히 30대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든 '양'과 저는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언젠가 '양'은 일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한 손으로 셀 수 없다고, 20시간을 일한 날엔 이러다가 죽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양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생계를 위해 다시 그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304명과 158명의 죽음을 몸소 겪은 사람처럼 겁에 질린 채, 책임 공방과 경솔한 발언 사이에서 우리가 잃은 것을 곱씹고 있습니다. '양'이 보낸 시간 일부를 소개함으로써 국가에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이 참사는 왜 미리 막을 수 없었나요?"라는 의문은 돌연한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며, 삶을 갈망하는 이의 태도 보다는 가까운 죽음을 의식해온 이의 반응에 가깝습니다.

2022년의 지금, 저는 지금보다 더 나쁜 버전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는 이런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어른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선 경찰관과 소방관, 구조대원, 생존자와 목격자, 동료 시민들과 함께요.

훗날 10월 29일에 슬퍼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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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심경과 요구사항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들을 평생 곁에 둬야 할 존재들처럼 여기며, '양'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고 싶습니다.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을 끝까지 수호하면서요. 먼 미래에 친구가 될지도 모를 청년들이 새로운 시대를 아픔 없이 맞이하고 싶다고, 포기하지 말아달라 당부하는 듯해서 마음이 저리면서도 그 실낱같고 연약한 약속에 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언젠가 '양'이 쓴 글에 기대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시대에 맞설 힘을 내어봅니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거듭해왔으나 여전히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중략) 겨울의 한추위에는 주변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부여된 생을 또 다른 생에 떨어뜨리며 사는 것이 전부일지도."

훗날 10월 29일에 슬퍼지더라도 눈물을 숨기지 말자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무책임하게 슬픔을 다루지 않으려는 용기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우리가 함께 만드는 용기로 다음을 살게 되는 사람들은 덜 외로울 겁니다. 꼭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끝맺습니다.

1) 최승자 시 '세기말' 중 "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이제 이 세기말은 내게 무슨 낙인을 찍어줄 것인가"를 변형시킨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신유진 님은 가까운 미래에 초등학생을 만날 예비교사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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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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