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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태극기' 말고 '우주개발 기본소득'을

[주장] 윤석열 '우주개발 로드맵'에서 빠져있는 철학과 상상력

등록 2022.12.02 10:58수정 2022.12.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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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JW매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우리나라 태극기는 놀랍게도 달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것도 50년 전에.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태극기를 비롯한 각국 국기를 싣고 갔던 것이다. 아폴로 11호가 귀환하고 나서 미국 닉슨 대통령은 동맹국에게 "우리가 달에 당신네 국기를 가지고 다녀왔다"라며 국기와 작은 월석을 선물했다. 미국의 힘과 관대함을 과시하는 이벤트였다. 이 '월석기념패'는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돼 있다. 

태극기가 이번엔 화성으로 향할까?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고 지난 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밝혔기 때문이다.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5년 안에 달에 가는 독자 발사체 개발, 2032년 달 자원 채굴, 광복 100주년인 2045년 화성 착륙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주개발 예산을 늘리고, 우주개발 전담조직으로 '우주항공청'을 설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주개발은 도전할 가치가 있다. 우주와 지구에 대한 새 지식을 얻어 인류의 삶을 개선할 수 있고, 우주개발 연관 산업 발전으로 미래의 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주개발의 필요성 인식에는 여야가 큰 차이가 없어서 관련한 국가 지원은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 우주정책의 틀인 '우주개발진흥법'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제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미사일 지침을 폐기하여 발사체 개발의 제약을 풀었다. 윤석열 정부가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가 제시한 로드맵은 전 정부들이 쌓은 기반 위에 서 있다.

우주개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우주개발에서 성과를 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주항공청의 설립 등을 조언한 전문가들은 많다. 나는 다른 것을 말하고 싶다. 우선,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 같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대신 '인류 보편 이익 추구'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한다.

뜬구름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주개발은 국제적 협력 없이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지구의 신냉전이 우주 냉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가주의는 우주 냉전을 촉발하기 쉽다. 중국이나 일본이 "오성홍기(일장기)를 화성에 꽂겠다"고 선언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점에서 '화성의 태극기' 같은 언설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다. 국가주의적 열정을 동원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를 향해 인류 이익을 위한 우리의 사명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제 공조를 끌어내기 수월하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한미우주동맹으로 격상"한다며 우주개발에서조차 중국을 자극하고 나선다.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옆길로 가면, 닐 암스트롱의 전기 영화 <퍼스트맨>(2018)이 개봉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비난을 퍼부었다.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안 나왔다는 이유다. 영화는 '인류'를 대신해 달에 간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웅장한 음악이 깔리며 성조기를 쿠쿵 하고 꽂는 장면이 나왔다면 트럼프는 몰라도 세계 관객들에겐 시시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달의 성조기'에 집착한 트럼프와 '화성의 태극기'를 굳이 언급한 윤 대통령은 많이 닮은 꼴이다.   

둘째, 우주개발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한다면 성과가 났을 때 국민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나는 '우주개발 기본소득'을 제안하고 싶다. 복지예산으로 쓸 수 있는 재정을 우주개발에 쓴다면, 그것이 국민 복지로 돌아온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정부는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통해 민간기업과 합작해 누리호를 네 차례 더 발사하고, 축적된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 선정되려고 대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대표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이처럼 정부가 기술을 이전할 때 대신 기업의 지분을 일정한 몫 인수해서, 기업이 성과를 내면 그 수익을 정부가 배당받아 기본소득으로 국민에게 지급하면 어떨까?

정부는 기술 이전이 '뉴 스페이스'(민간기업 주도 우주개발) 시대를 위해서라는데, 그런 산업 흐름을 인정하더라도 국민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 이익의 일부를 공공이 되돌려 받는 것은 정당하다. 이는 공공이 민간의 혁신을 촉발하고 민간의 혁신이 국민 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드는 일이다.

'화성의 태극기'보다 '우주개발 기본소득'

우주개발처럼 큰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사업은 정부가 '인내자본'으로 나서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초기 자본을 들여 생산한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하거나 민간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한다면, 대신 기업 지분을 확보했다가 기업이 성과를 내면 수익을 배당받아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를 '공유지분형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우주개발 기본소득'도 그런 방식이다.

다시 <퍼스트맨> 이야기를 하면, 영화에서 1960년대 흑인 가수 '길 스콧 헤론'이 "백인들이 달에 간다네Whiteys on the moon"란 노래를 부른다. 이런 가사다.

난 병원비 낼 돈도 없어 (그런데 백인들은 달에 간다네)..
집주인이 월세 올려 달래 (왜냐면 백인들이 달에 가니까)..
어째서 내겐 돈이 하나도 없지? (백인들이 달에 가느라고)..


아폴로 계획이 한창이던 미국은 반전운동과 흑인민권운동도 한창이었다. 산적한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두고 달에 가느라 돈을 쓰는 데 대한 비판도 컸다. 그 딜레마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 반지하에 살다가 폭우에 익사당하는 나라다.

이런데도 우주개발을 하자고 설득하려면, 이것이 인류 보편을 위한 사명임을 설명하고, 힘든 국민을 위한 복지를 더 강화해야 한다. 특히 우주개발이 성과를 내면 그 혜택을 국민이 직접 누리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철학과 과감한 정책 없이 국민을 설득하기도 어렵고 예산을 늘리기도 힘들다. 막대한 세금을 투입한 우주개발 사업으로 일부 대기업과 그 주주들만 이익을 얻고 불평등이 더 벌어져서도 안 된다. '화성의 태극기'보다 '우주개발 기본소득'의 상상력이 대한민국에 더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당 공동대표이다. <2050 대한민국 미래보고서>를 국회미래연구원과 공저했다.
#윤석열 #기본소득당오준호 #기본소득 #누리호 #화성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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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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