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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학교 안의 유령, 학교 비정규직 여성 이야기 ⑤] 유치원방과후전담사 이상혜

등록 2022.12.07 09:39수정 2022.12.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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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 유령노동자가 있다. 90%가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교직원의 40%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돌봄노동이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 그대로 옮겨왔고 임금노동으로 '공식화'되었다.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학교의 많은 직군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적은 인력으로 힘든 일을 시키며 저임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 예산이 넘쳐나도, 국가는 비정규직 노동권 향상을 위해서 예산을 배분하지 않는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공공 교육·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들, '학교 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급식조리사, 특수교육지도사(특수교육실무사), 청소실무사, (초교병설)유치원 방과후전담사, 돌봄전담사의 이야기를 6회의 연재를 통해 전한다. - 기자 말


유치원방과후전담사는 유치원 누리과정 8시간 중 교육과정 4~5시간 이후의 시간인 3~4시간의 누리과정을 담당하고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한부모, 조손 가정 및 일반가정의 유아가 가정과 같은 포근한 분위기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돌봄을 제공하는 국공립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유치원방과후 과정은 누리과정의 확장 교육 및 돌봄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교육법에 의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방과후과정의 운영과 교육 방향을 제시 및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이 아닌 돌봄과 놀이 중심의 시간이라는 이유로 유아교육법에 명시된 누리과정의 시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방과후과정에 교육공무원이 배치된 경우 방과후과정 수업시간이라고 이야기하고 비정규직이 배치될 경우에는 방과후과정 활동으로 규정한다.

코로나19 이후 국공립유치원이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운영시간을 축소하거나 미운영기간일 때에도 방과후과정 전담사들은 근무시간을 변경하면서까지 국공립유치원에 등원하는 유아들의 방과후과정을 담당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일 때는, 교육과정 유아들을 각 반의 정원 중 1/3을 넘지 않게 운영하기 위해 방과후과정 전담사를 배치하고 반을 늘려 운영했다. 방과후과정 시간이 되면 하원하는 유아 없이 방과후과정반으로 편성함으로써 유아들의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은 채 운영됐다.

오전에는 유아들이 거리두기 지침에 의해 운영되고 방과후과정이 되면 거리두기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헀다. 이러한 상황은 유아들에게 코로나19 전염과 확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이 사실이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더라도 돌봄의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유은혜 전 교육부장관의 발언처럼 긴급돌봄이 이루어진 국공립유치원에서 유아들의 돌봄을 오롯이 감당한 것은 유치원방과후전담사였다.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은 방과후과정 전담사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교육과정 이후의 누리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펼쳐 유아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유아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주먹구구식의 국공립유치원 운영을 다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만 5세 무상교육이 현실화되고 있고, 국공립유치원의 방과후과정의 중요성과 유아들의 돌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치원방과후과정전담사가 전문인력임을 인정하고 유아들에게 교육과정 이후 누리과정의 시간 보장이 필요하다. 만 5세 무상교육은 이 시기의 유아들에게 필요한 교육 및 활동이 보장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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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들에게 교육과정 이후 누리과정의 시간 보장이 필요하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현재의 교육과정만 중요하게 운영되는 국공립유치원의 불합리함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유아들에게 불안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방과후과정전담사도 한 가정의 일원이다. 불안한 일자리, 불평등한 근무환경은 여성 노동이 저평가되는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다. 

지난 11월 18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집담회에 참가한 이상혜(73년생, 근무 10년차)씨와 유치원방과후전담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슈퍼우먼'을 바란다"

 - 현재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자녀가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면서 늦게 출근하고 퇴근시간을 지킬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 보니 학교의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었고 마침 이전 근무와 연관이 있는 유치원방과후 전담사 일자리를 알게 되어 입사하게 됐다."

- 유치원방과후전담사와 같은 돌봄 노동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내는 노동이라고 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여성이 일을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여자가, 엄마가,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동료 중 만 5세, 만 3세 자녀를 둔 30대 방과후과정전담사의 경우 퇴근 후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 두 곳으로 데리러 가는데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늦을까 조바심의 연속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아이들의 식사와 주말 동안의 육아 노동의 이야기를 한바탕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사회가 여자는, 엄마는, 아내는 일도 하고 가정도 잘 돌봐야 하는 '슈퍼우먼'을 바라는 것 같아 씁쓸하다."

- 수업 준비 시간이나 행정 업무 시간이 보장되고 있는지.

"출근하자마자 교육과정 시간을 보조하고 나면 바로 방과후과정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행정 업무를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학기 중에도 매우 어렵다. 보통은 유아들이 하원한 후 행정 업무를 하지만 부장교사 및 관리자가 다 퇴근한 이후에 하더라도 결재 처리에 어려움이 있고 다음 날 출근 후 행정처리 확인도 쉽지 않다. 이는 교육과정 방학 중에는 더 심각해서 유아들과 8시간 내내 함께 있기 때문에 행정업무 뿐 아니라 수업을 위한 준비 시간 확보가 더 어렵다.

유치원방과후전담사의 이런 상황은 아이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친다. 많이 준비한 수업도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준비 시간이 부족한 경우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다양한 활동이 간소화되어 제공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 유치원교사나 유치원 내 정규직과의 직무 차이와 업무 분담, 처우 차별에 따른 갈등이 있는지.

"차별과 갈등이 많다. 교육과정에 필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비정규직인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도서대장(도서 등록 및 폐기) 관리부터 불용처리 비품 등 업무 분담 시 차별은 일상이다.

사실 교실 정리가 교사의 업무임에도 비정규직이 다 하고 있는 상황이며 때로는 교구나 도서를 바꾸는 일까지 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소소하게는 회식 시에도 제외 되기도 하지만 사실 참여할 수 없는 시간(근무 중)에 하는 경우가 많아 참여 자체를 꺼리는 선생님들이 많다."

- 유치원방과후전담사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정교사와 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는 방과후과정 전담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선생님은 이 수업은 하면 안 된다'고 하거나 '교육과정에 할 수업이니 선생님이 계획한 수업을 변경을 해주세요'라고 할 때는 속상했다. 먼저 방과후과정전담사와 협의가 원활하게 됐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업무지시나 협의 없는 수업계획의 변경 등은 일할 때 자존감을 낮아지게 하고, 힘겨운 상황을 만든다. 

정교사가 점심 급식할 때 유아의 안전을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지원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방과후과정의 오후 간식시간에 정교사에게 유아의 안전을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당한다. 같은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오전에는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고 오후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인데,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식 지원을 하게 되면 방과후과정 시간의 수업 준비나 행정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서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오후 간식을 준비하고 정리할 때도 교실을 비워야 하는 현장의 어려움이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서 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특별한 대책 없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행사지원이나 현장체험학습도 방과후과정강사는 초과근무를 해야 해서 유치원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오후가 되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근무를 한다. 교실 정리도 정교사와 같은 교실을 사용할 경우 방과후과정이 시작할 때 정리되지 않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되는데 정리와 청소로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방과후과정을 시작할 때도 유아들이 정돈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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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돌봄이 이뤄진 국공립유치원에서 유아들의 돌봄을 오롯이 감당한 사람은 유치원방과후전담사다. ⓒ 이상혜

 
- 유아를 돌보는 일은 많은 체력이 필요한데.

"미취학 유아들은 손이 많이 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자리에 앉아서 있기보다는 유아들의 움직임에 따라 종종거리며 다니게 된다. 아이들의 책상이 낮아 허리를 굽혀 함께 활동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허리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유치원방과후전담사가 많다.

또한 3월 신학기에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화장실 한번 가기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운동도 하고 관리를 한다고 해도 허리 관련 질환이나 손목 관련 질환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에 마음이 녹는다."
#여성노동자 #필수노동자 #유치원방과후전담사 #학교비정규직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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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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