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공동육아 초등방과후의 미래는 무엇일까?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⑥]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방과후 교사들

등록 2023.01.02 13:09수정 2023.01.04 12:28
0
원고료로 응원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2023년 1월 12일)을 앞두고, 필수 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고군분투 해 온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계신 필수 돌봄 노동자들의 수고와 존재를 알리고자 8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편집자말]
나와 배우자는 같은 일을 했었다. 방과 후 교사로 일한 시간이 10년 즈음이 되었으니 꽤 오래 일을 한 셈이다. 남자로 공동육아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한다는 것이 흔치 않는 일이라 거의 유일한 10년차 남자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교사들은 결혼을 하고나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터전을 그만두는 일이 대부분이다. 슬프지만 배우자가 넉넉한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공동육아 교사 월급으로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배우자는 일 하다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풍족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맞벌이기도 했고, 둘 다 딱히 경제적 풍요로움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니 월급이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 집에서도 터전 일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들로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했다. 상대방의 터전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극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가까운 곳에서 몇 년을 지켜보니 '저 사람 참 이 일에 진심이네'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주로 내가 배우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는데 아이들 간식에 진심이고(밖에서 맛있는 걸 먹거나 하면 '이거 아이들에게 해 줘 봐야지'라고 꼭 챙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에서 먼저 해 볼 생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놀이에 진심이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하고 교사도 함께 놀아야 한다고 늘 이야기 했다. 그래서 놀이 동아리도 만들고, 교사 대회마다 놀이강의를 하기도 하며 늘 어떻게 더 잘 놀까 생각 한다. 아이들과 노는 게 좋다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계속 하면 좋겠다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같은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다.
 
a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1학년 백일잔치. 같은 건물에 사는 대형견 천둥이가 1학년 100일을 축하해주러 내려왔다. 마을 방과후는 이렇게 마을 이웃들 품에서 함께 한다. ⓒ 박홍열

 
그런 사람이 2022년 백수가 되었다. '비자발적 실업자'라고 해야 하나. 다니고 있는 조합이 해산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따라 나의 배우자는 2021년 공동육아 초등 방과 후에서 마지막 해를 보냈다. 지역의 아이들이 줄어들고, 조합원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그리 결정되었다고 한다. 처음 배우자에게 조합이 해산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이젠 좀 정리하고 쉬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든 것 같다. '실업자'라는 충격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곳의 현실을 자각하면서 생긴 깨달음이랄까.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가 이렇게 영향을 줄 줄이야. 20여년이나 된 조합이 이렇게 해산하게 될 줄이야. 지금껏 지내왔던 시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줄이야. 줄이야. 줄이야....

배우자가 있는 조합이 해산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기 일 년 전쯤부터인가 여러 곳의 공동육아 방과 후에서 신입생모집에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이들 수가 적어지기도 하고 조합방식을 어려워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줄어드는 터전을 옆에서 종종 보게 된 것이다.

배우자의 조합도 몇 해를 걸쳐 그런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롤 모델 삼고 있던 방과 후가 공동육아를 탈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경력교사들이 대거 근무하고, 역사도, 규모도 큰 터전이었던지라 조그만 방과 후나 다른 교사들이 많이 의지하며 바라보던 곳이었는데 탈퇴라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모아지니 나의 생각은 한껏 복잡해졌다.

공동육아 초등방과후의 미래는 무엇일까? 결국 해산을 하거나 탈퇴를 하고 각자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모습을 바꾸는 게 바라보는 미래인 건가? 그 곳의 교사는 어떤 모습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
 
a

공동육아 교사 대회 배우자와 나는 동료로 만났다. 같은 사회적 조건이더라도 배우자인 남자 교사의 미래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고 한다. 동료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아이들 곁에 계속 남아 있는 것.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는 것. 그럴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선행되길 바란다. ⓒ 박민영

 
공동육아 조합은 백퍼센트 부모들의 출자와 보육료로 운영되는 구조로 거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터전의 공간은 부모들의 출자금의 규모로 결정되며, 교사의 월급과 터전의 운영비는 아이들의 보육료로 결정되니 매년 등원아동의 수는 민감한 문제이고 보육료의 인상과 교사의 임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내가 근무했던 '도토리마을 방과 후'도 두 개의 터전이 통합되어 아이들과 조합원의 수는 두 세배 늘었지만 운영방식이나 재정구조는 아이들이 스무 명 정도였던 이전의 터전과 비슷했다.
  
물론 이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계를 감당한다면 앞으로 더 좋아지고 발전해서 뭔가 멋진 모습의 우리가 될 것이라고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재정의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의 수를 늘리는 것에 동의하고 부족한 교사 수만큼 더 많은 역할을 맡고, 함께 힘들 옆의 교사에게 조금 이라도 부담을 덜 주기위해 체력에 신경 쓰고, 매년 최저임금 오르는 수치만큼만 올려보자고 다짐하면서 지낸다면 말이다.


바깥의 눈으로 보면 공동육아 초등 방과 후는 하는 일조차 불분명한 사적인 단체이고 그 곳의 교사들은 직업기입란에 기타로 표시되는 사람들이다. 10년을 일했다 하더라도 어디 가서 단 1년의 경력인정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몇 해 전부터 국가에서 초등 돌봄을 공적인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교사들에게 그건 남의 나라이야기이다. 직업의 법적지위도 획득하지 못하고, 공적 책임을 운운하는 돌봄의 영역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a

마을 방과후 활동_종업식 아이들과 보낸 한해를 마무리하며 종업식 공연을 준비한다. 각자 맡은 역할에 제법 진지한 모습들이다. ⓒ 도토리 마을 방과후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좋아서 하는 일이면서 바라는 것도 많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시선들이 있을지라도 나와 다른 교사들이 하고 있는 일이 특정한 누군가의 행복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이 시간과 공간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어린 시절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살가운 돌봄을 받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친구들과 실컷 놀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어떤 사회에나 꼭 필요한 곳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당장 그 곳의 미래는 생계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 치솟는 보육료와 개인의 부담이 해마다 반복되는 모습이거나 해산되는 조합의 모습일 수도 있고, 늘어가는 월급이 부담이 될까봐 스스로 그만두는 교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이런저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지켜가던 가치나 목표를 바꾸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눈앞의 문제를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니까.
 
a

마을 방과후 졸업식 코로나 전 마을 방과후 졸업식 풍경. 마을극장에 모두 모여 다함께 졸업을 축하했다. 1학년 때부터 지켜봐온 아이들이 6학년이 되어 졸업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 도토리 마을 방과후

   
터전은 20대 후반에 시작해서 40대가 되기까지 나의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터전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를 웃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의 미래가 깜짝 놀랄 만큼 변화하길 바라진 않는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퇴근길이 미래의 걱정으로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글_박민영(별명:분홍이)
아이들에게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을 자처했지만, '메리 포핀스'를 롤 모델 삼고 살아가는 지구인입니다. 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덧붙이는 글 * 기사는 영화 속에 출연한 도토리 마을방과후 선생님들이 쓰고 엮은 책,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1월 출간 예정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1월 12일 극장 개봉합니다.
#돌봄 #노동 #교육 #육아 #방과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예측 불허인 세상을 즐겁게 살아 가려는 사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