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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 사건' 녹취 조작한 변호사에 징역 3년

[고 이예람 중사 재판 방청기] 유족 "100일간의 특검 수사로 진실 드러나 다행"

등록 2022.12.10 15:22수정 2022.12.1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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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과 6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고 이예람 중사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됐다. ⓒ 정현환


"우리를 이용하면 안 됐다고요."

조용하던 재판장에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박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어 기자들 노트북 타이핑 소리가 재판장에 울렸다. 지난 6일 6명의 배심원이 참여한 고 이예람 중사 국민참여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 재판장 강규태) 311호 중법정 풍경이 그랬다.

"검찰의 구형이 과하다", "집행 유예해 달라"라는 피고인 변호사들의 말에도 재판 내내 참던 박씨가 자리에서 들썩였다. 하지만 증인으로 나선 피고인의 아버지 김 씨가 "아들을 선처해 달라"라고 하자 박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리를 이용하면 안 됐다고요"를 외쳤다. 도대체 피고인 측이 무슨 말을 했기에, 어머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규했을까.

피고인 김아무개

피고인 김아무개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공군 제8전투비행단 법무실장을 지낸 변호사다. 생전에 이 중사가 제15, 제20 전투비행단에서 근무했고 그가 사망하기 전에 김씨가 이미 전역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중사 사건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하지만 피고인 김씨는 고 이 중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한 증거위조 및 업무방해 혐의로 특검으로부터 고발당해 수감 4개월째를 맞고 있다. 이 중사 가해자 측이 고용한 법조인도 아니고, 사건 수사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현재 옥살이 중이다. 

지난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그가 한 일이 드러났다. 고 이예람 중사 특별검사보는 피고인 김씨가 사람 목소리를 내는 기계인 문자음성변환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익수 녹취록'이라는 문건을 허위로 만들었음을 밝혔다.


이 허위 녹취록엔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고 이 중사 사건 수사 초기 직접 가해자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고, 이 과정에서 가해자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에 전관예우가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이자 가장 문제가 된 군 성폭력 피해자인 이 중사의 사진을 전익수 전 법무실장이 가져오라고 했고 그 이유가 피해자 사진을 보며 '음란행위'를 했다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왜 허위 녹취록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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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김아무개씨가 군인권센터에 허위로 제보한 내용이 반영된 녹취록.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 제공


김씨는 이 내용을 일부 언론에 제보하면서 여러 기자를 만났고 실제로 2021년과 2022년에 보도와 방송이 이뤄졌다. 지난 5일 특검은 이 사실을 지적하며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김씨는 조작된 녹취록을 군인권센터에도 제보했다. 2021년 11월 17일 군인권센터는 이 녹취록을 직접 공개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7일에 출범한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안미영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 8월 9일 특검은 김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같은 달 12일에 그를 증거위조·업무방해 등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특검이 밝혀내 국민참여재판에서 드러난, 김씨가 가짜 녹취록을 만든 이유는 이렇다.

피고인 김씨는 과거 공군 법무관 시절에 전역을 하루 앞두고 징계를 받았다. '하급자 군 검사에 대한 지휘감독 소홀과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감봉 1개월' 처분이었다. 당시 징계 결정권자가 현재 고 이예람 중사 사건 부실수사 문제로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된 '공군본부 전익수 법무실장'이었다.

그때 징계 수위와 시기로 인해 김씨는 전 실장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품게 됐고 이 악감정은 그대로 이어졌다. 자신이 전역하고 한참 지나 발생한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 '전인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개입되어 있다고 추측해 허위 사실을 꾸며 언론에 제보한 것이다.

김씨의 억지와 망상, 거짓과 조작, 분풀이로 꾸며진 내용이 군인권센터에 전달됐다. 초기엔 사진 몇 장이었으나 군인권센터가 음성 원본과 녹취록을 요구하자 허위 녹취록을 만들어 제공했다.

국민참여재판 첫째 날인 지난 5일, 김씨는 "군인권센터가 원본을 요청해 녹취록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날인 6일 재판에서 김씨는 "이 중사 사망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숭고한 목적이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특검 수사로 진실 드러나 다행"

이틀에 걸친 재판에서 특검보는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성없는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는 피고인을 두고 "죄질이 나쁘고 추가 혐의가 더 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군인권센터에 제보한 내용이 모두 허위이고 위조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허위 녹취록이 오히려 특검의 계기가 됐다"라며 "제보 내용의 대다수가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대한 내부 평가를 바탕으로 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의 아버지와 두 명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대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2학년인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라는 사실이나 "피고인이 같은 법조인", "국내 최고 로펌 소속이고 전도유망한 청년"이라는 이유를 들며 집행유예를 호소했다.  

김씨는 결국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김씨 측의 요구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장은 "배심원들이 징역 2년 4개월에서 징역 3년 6개월 의견을 냈다"라며 "집행유예에 대한 의견은 없었다"라고 선고 이유를 덧붙였다.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는 지난 8일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군사법원이 가해자들을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어준 것과 비교된다"라며 "100일간의 특검 수사로 진실이 드러나 다행이다"라고 했다.

박씨는 "증인으로 나선 피고인 아버지의 입장은 같은 부모로서 이해되지만, 피고인이 내 딸과 아무런 관련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딸을 이용한 점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유족은 군 성폭력으로 희생된 고 이예람 중사를 이용한 피고인이 더 강한 처벌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공군 #이예람 #중사 #군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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