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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잡학박사들이 말하는 사랑받을만한 인간

[TV 리뷰] tvN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22.12.10 13:09최종업데이트22.12.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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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랑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다. 우리는 어떤 스타일의 인간을 사랑할까. 사랑받을만한 인간이라는 어떤 모습일까. 사랑을 탐구하다보면 그 안에 인간의 본질이 보인다.
 
지난 9일 방송된 tvN 교양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 2회에서는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를 주제로 잡학 박사(장항준, RM, 김영하, 김상욱, 심채경, 이호)들의 흥미진진한 지적 수다가 펼쳐졌다.
 
먼저 지난 주에 미처 못다한 법의학자 이호의 '나만의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싶은 인간'이 소개됐다. 이호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를 선택했다. 이호는 히포크라테스에 대하여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임에도 정작 이름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왜 의사 선서에 등장할 정도로 의학의 아버지 취급을 받는지 이유는 잘 모를 확률이 높다는 데 주목했다.
 
이호는 히포크라테스의 진정한 업적으로 "신으로부터 의학을 독립시킨 것"을 꼽았다.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460~370년 사이의 고대 그리스로, 질병의 치료도 신에게 의존할만큼 종교적이고 비과학적인 정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독립선언을 통하여 모든 증상엔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다면 치료방법도 있을 것이라는 사고를 최초로 제시했다. 신들의 시대에 히포크라테스의 새로운 시각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그야말로 혁명적 사고였다.
 
히포크라테스는 4체액설을 통하여 인체가 네 가지 체액(혈액-공기, 황담즙-불, 흑담즙-흙, 점액-물)을 구성된다는 이론을 펼쳤다. 지금 보면 이 역시 비과학적인 이야기같지만, 세상은 신이 창조한 신비한 물질에 뒤덮여있다는 추상적 관념이 지배하던 시기에, 누구나 이해할수 있는 보편적 물질을 통하여 그 조합과 균형이 세상 만물을 만들고 인간의 건강까지 좌우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은 당시로서는 '신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파격에 가까웠다.
 
의학의 발전에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들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아직 전문적인 연구 기술이 전무했던 시기에 환자의 배설물을 직접 맛보는 방식으로 질병을 연구했고, 기도와 주문 대신 약물과 음식, 운동을 처방하는 것으로 환자를 치료했던 선구자였다. 또한 제멜바이스(1818-1865)는 헝가리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로, 지금을 지극히 당연해진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을 주장하며 위생관념이 부족했던 시대에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구해냈다.
 
또한 지금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히포크라테스 선언은, 제2차대전 이후 인권 개념이 발전하면서 현대적 윤리관을 결합하여 1948년 세계의사회에서 채택한 '제네바 선언'으로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이 선서를 만들어낸 근간에는, 직업인으로서 의미 이전에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전파하고 공유하는 사람들 간에 '의술 공동체'로서 서약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잡학박사들은 본격적으로 이날의 주제인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영하는 신뢰와 매력을 두 축으로 그래프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가까운 사람일수록 신뢰를, 먼 사람일수록 매력이 사랑을 느끼는데 중요한 순간이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영하는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별과 존재일지라도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김상욱은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의 한 구절을 언급하며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다"라는 문장을 소개했다.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연인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무지가 설렘을, 예측불가능한 놀라움이 매력을 만든다. 하지만 그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갔을 때는, 상대에게 예측가능한 '신뢰'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 사랑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는 사랑의 결실로 꼽히는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출연자 중 유일한 미혼인 RM(김남준)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고백하여 눈길을 끌었다. RM은 "결혼이 무섭기도 하고 되게 긴가민가하다. 예전에서는 결혼도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연예인이 되고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게되면서 '내가 결혼을 안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한번 들게되니 걷잡을 수 없더라"라고 고백했다.
 
김영하는 "요즘 젊은 세대가 비혼을 기본값으로 놓고 특별한 경우에만 결혼을 생각한다.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됐다"면서 결혼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경제적 격차 때문에 큰 결심을 해야만 결혼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세태를 꼬집었다. 심채경은 이에 덧붙여 "결혼을 함으로서 포기해야하는 '기회비용'이 있다. 그 비용을 나 혼자서 더 윤택하게 사는데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기본이 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영하는 결혼이 연애의 연장선이라는 과거의 낭만적 연애관과 비교하여 "사랑의 성격이 달라졌다. 가슴이 몇십년 동안 계속 뛴다면 그건 병원에 가야한다. 결혼은 장기적인 신뢰 관계다. 굳건하고 오래 지속되는 신뢰도 일종의 사랑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영하는 사랑에 빠질만한 인간으로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시조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를 소개했다. 발자크는 하루에만 18시간씩 글을 썼고 5일마다 책 한권을 써낼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가명으로 쓴 글까지 포함하면 현대에도 그 작업량을 따라올 작가가 없을 만큼 '다작왕'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발자크는 글쓰기 자체는 밥벌이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고, 풍부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사업에 더 관심이 있었다. 발자크가 구상한 사업은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족족 실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에 결국 대부분 실현된다.
 
또한 발자크는 허세와 과시욕이 심했고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하여 재산이 있는 귀족 과부과의 결혼에 집착했던 속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발자크의 행태는 19세기 당대에 다양한 만평에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발자크는 7년에 걸쳐 구애했던 마담 한스카와 결국 결혼에 성공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무관심 속에 눈까지 실명하면서 결혼 5개월 만에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평생 자신의 진짜 재능을 깨닫지 못했던 발자크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재능을 파악하는데는 탁월한 안목을 과시했다. <적과 흑>을 집필합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거장 스탕달,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 등을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격려해준 인물이 발자크였다. 위고는 발자크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직접 쓴 조문에서 "이 방대하고 비범한 작품의 저자는 혁명적인 작가들의 강력한 혈족"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발자크를 극찬했다.
 
김영하는 발자크가 여러 가지 단점에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인간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를 위해서 끝까지 싸워보고 몰락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발자크는 스스로를 비롯하여 당대 프랑스의 신흥 지배계층인 '부르주아'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글로서 폭로하며 19세기 프랑스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자크는 평생 귀족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꿈꿨지만, 그의 소설은 정작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따.
 
RM은 발자크와 비슷한 경험으로 "BTS가 전 세계 마이너리티들을 대변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BTS는 흑인 인권운동, 아시아혐오와 아동폭력 근절 캠페인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RM은 "세상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냥 하고싶은 이야기를 한 거고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마이너리티의 대변자로 UN와 백악관까지 가게되니까 책임감이 커졌다"는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RM은 "나에게 그들을 대변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사명과 자격이 있는가, 혹시 오만이 아닐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김영하는 이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해롤드 블룸이 제시한 '영향력에 대한 불안'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예술가는 다른 예술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예술가는 영향에 대한 불안을 가져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예술가가 내게 너무 강한 영향을 미칠까봐 불안해하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예술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하는 대중이 주는 영향에 대해서도 자의식을 갖고 불안을 느껴야한다. 지금의 나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나'에 고민해야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김영하는 발자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지만, 인간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설동설'을 제시하며 "매력적인, 사랑하게 되는 인간이란 좋은 이야기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시련과 고통,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며 높은 이상을 꿈꾸는 인간을 응원하게 된다"고 밝혔다. 심채경은 "보통의 인간들과 달리 세속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발자크를 보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심채경은 자신이 가장 사랑한 인간으로 바로 자기 자신을 꼽았다. 심채경은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들을 언급하며 "연애와 사랑을 하는 인간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채경은 "저는 저 자신이 좋다, 또한 자기를 잘 파악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심채경은 천문학자라는 진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공부를 좋아했다. 똑똑하고 싶은 공부나,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일을 할 때가 재미있는 것이다. 제가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아니라도 이 일이 매일매일 행복하다"고 밝혔다. 심채경은 배구선수 김연경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본인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선수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망설임없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좋다. 거들먹거리고 잘난척하는게 아니라, '그만큼 난 열심히했고 잘했고, 그런 내가 좋아'라는 당당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채경은 단지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부족한 모습, 잘못한 모습, 더 발전하려는 모습도 모두 나다.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심채경은 행복의 비결을 천체에 비유하며 "가치판단의 무게중심이 내 안에 있으면 가장 안정적이 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단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RM은 알고리즘과 SNS가 유행하는 시대에, "나의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은연 중에 끊임없이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에 심채경은 "내가 나란 존재를 너무 촘촘하게 가둬놓으면 너무 쉽게 무게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 내가 나를 볼 때 조금 관대해져도 괜찮다"는 의견을 밝혔다.
 
심채경은 대학에 신입생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수재와 천재들이 가득한 주변에 둘러싸여 위축되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심채경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저는 꾸준히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걸 잘했다. 과학은 팀을 이뤄서 하는 일이기에 저도 어딘가에 맞는 톱니바퀴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RM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음악적 우상들과 비교하며 "제가 그들보다 음악을 더 잘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제 음악을 굳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은 마음은, 제가 잘하는 '나만의 모서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RM은 "만일 저와 에미넴의 음악이 동시에 나온다고 해도 저는 제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먼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다른 인간도 그만큼 사랑할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 잡학박사들의 고백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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