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가까운 나라 키르기스스탄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등록 2022.12.11 15:59수정 2022.12.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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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 후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디에 있는 나라야?'라는 말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그만큼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나라다.

이유 중 하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1992년까지는 소비에트 연방 국가였기 때문에 미소 냉전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륙국가인 데다 우리나라에서 직접 가는 항공편이 많지 않아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직항이 있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직항이 없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베일에 싸인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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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지도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 5국이라 부른다. ⓒ 구글지도

나 또한 이름조차 생소한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를 가자고 했을 때 친구에게 물었다.

"그 나라가 어디 있는 나라인데?"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


학창 시절 많이 들었던 지역이긴 한데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대충 짐작이 갔다. 우리에게 '실크로드'로 더 많이 알려진 지역임을 알게 되자 조금 감이 잡혔다. 이렇게 낯선 나라에 처음 가게 되니 가기 전 혹시 먼저 다녀온 사람의 여행기가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많지 않았다. 일부 배낭여행자들이 올린 블로그 글들이 가끔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나는 여행하기 전 충분하게 그 나라 정보를 찾아보고 가는 편인데 자료가 많지 않으니 유튜브를 통해 몇몇 자유여행자들의 여행담을 참고했고 가기 전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에서 얻은 몇몇 정보가 전부인 채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나라 여행과 다르게 기대와 호기심보다 낯선 나라에 대한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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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스 국제공항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마나스 국제공항 ⓒ 전병호

 
처음 보는 낯선 글자가 반기는 마나스 국제공항 문을 나서자 오기 전 가졌던 걱정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확 풀리며 오히려 이 나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와 다르게 생겼지만 밝은 미소로 맞아 주는 공항 직원들이 여행자를 안심시켰다.

국제공항임에도 작고 아담한 공항 모습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뭔가 정리되지 않고 소란스러운 느낌들이 불편함보다는 인간적이고 순수해 보여 약간의 긴장감을 가졌던 여행자를 무장해제시켰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달려들었던 뭔가 어설퍼 보이는 호객꾼들조차 돈에 물들어 되바라진 우리네 호객꾼들과 비교되어 호감이 갔다.


첫날밤을 묵은 수도 비슈케크의 인상도 비슷했다. 백만의 대도시라지만 잘 정리되어 보이지 않는 도로나 가로수들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같이 보여 오히려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키르기스스탄은 한 마디로 도시의 번잡함에 지친 여행자를 위한 나라 같았다.     키르기스스탄 역사 속에 우리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름만 들으면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멀고 먼 낯선 나라 같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키르기스스탄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나라였다. 바로 세계사 시간에 스치듯 배웠던 탈라스 전투(751년, Battle of Talas)와 고선지 장군이 이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서기 751년 있었던 탈라스 전투는 고구려 유민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이슬람 연합 세력과 벌인 전투이다.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승승장구하던 고선지 장군은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 연합군(아바스, 카를룩)에게 패하게 된다. 이로써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되었다.

탈라스 전투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전투의 승패를 떠나 이 전투를 계기로 유럽으로 전파된 제지기술 때문이다. 탈라스 전투의 패배로 잡혀간 당나라 군인 중에는 제지 기술을 가진 이들이 섞여 있었고 이들의 기술이 이슬람 문명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됨으로써 중세 유럽은 인쇄술과 함께 과학, 신학, 역사 등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한 나라의 역사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관계없이 홀로 이어온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한 나라 역사는 주변의 다른 나라 멀게는 세계 여러 나라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먼 나라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 또한 우리 이웃 역사인 당나라와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 역사인 고구려 역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과거의 역사가 연결되어 현재가 있으며 그 현재 속에 또 과거의 역사가 존재한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지구 반대편 나라의 역사 속에 현재 우리 삶이 들어 있고 우리 삶 속에 먼 옛날 지구 반대편 나라 역사가 들어 있다. 이처럼 긴 시간의 역사로 보면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낯선 나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이런 걸 느끼게 되니 먼 나라라고만 생각되었던 나라가 이웃이 되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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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전통 시장 시장 어딜가나 그들의 주식인 레뾰쉬카 빵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 전병호

   
현재는 수천만 년 쌓여온 과거의 결과물이다. 지금 서 있는 나는 이 지구에서 수천만 년 동안 살다 간 수많은 조상들의 유산인 것이다. 현재처럼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들여다보면 역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낯선 나라를 들여다보니 가는 곳마다 펼쳐진 조상들의 유물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 말미에는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먼 나라 조상들의 유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지금 내 모습 속에서 조상들의 조각을 찾아내고 있었다. 문화는 인류의 복잡한 사고 능력과 인지능력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말이 있다. 고대 인류들이 보관했던 문화창고의 흔적이 바로 유물들이다.

그 유물들은 통해 우리는 고대인들이 생각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만 나라 유물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조상들과 연결된 우리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키르기스스탄은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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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뽄아타:암각화 군락 암각화 속에 먼 조상들의 연결 고리가 숨어 있다. ⓒ 전병호

 
시간이 멈춘 나라, 그립다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갑자기 독립국가가 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다. 한때는 칭기즈칸의 점령지였고, 소련연방으로 70여 년을 지냈고, 소련 해체 후 갑자기 찾아온 독립으로 약간의 혼란기를 겪었다. 그동안 이 국가들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내륙에 자립 잡은 중앙아시아 지역적 특징도 있었을 터이고 갑자기 맞은 독립으로 정치경제적 어려움도 이유일 것이다.

이런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국제무대에 얼굴을 내밀더니 이제는 경쟁적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자국의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을 간직한 이 나라들도 여느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변해갈 것이다. 시간이 멈춘 도시는 머지않아 시간을 지배하는 도시로 변할 게 뻔하다.

뭔가 포근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시 비슈케크도 마찬가지다. 더 바빠지고 번잡해지고 자본에 물들기 전에 조만간 다시 키르기스스탄에 가보고 싶다. 유르트에서 양젖을 짜던 소년의 미소, 귀국 비행기에 동승했던 칼팍을 쓴 청년의 미소, 비슈케크 거리에서 만난 엘레첵을 쓴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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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풍경 유목민의 나라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은 유목민의 나라다. ⓒ 전병호

덧붙이는 글 본 기사 게재 후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 예정임.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유목민의후예 #초원 #유목민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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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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