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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큰고니 50마리... "두 눈을 의심했다"

[김병기의 환경새뜸] 도심 속의 섬, 세종의 '세렝게티' 장남들판을 가다

등록 2022.12.12 20:10수정 2023.11.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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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TV] 세종 '백조의 호수'... "두 눈을 의심했다" ⓒ 김병기


세종시 한복판에 '백조의 호수'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정부세종종합청사와 고층아파트가 빼곡하다. 도심 속의 섬처럼 고립된 이곳은 큰고니, 흑두루미와 같은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96번 도로와 금강을 사이에 둔 곳이 세종의 세링게티로 불리는 장남들판이다.

지난 11월 25일 서영석 사진작가,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초겨울 갈대밭 곳곳에 야생동물 발자국이 찍혀 있다. 밤새 이곳이 '야생의 놀이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큰 눈을 껌벅거리며 잠시 멈춰 섰다가, 갈대숲으로 후다닥 뜀박질해 숨는 고라니도 볼 수 있다. 멸종위기종인 삵이 무더기로 쌓아놓은 배설물 더미도 확인된다. 

도심 속의 섬, 세종판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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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장남들판에서 노는 큰고니 ⓒ 서영석

 
이날 벼베기가 끝난 논에서 큰고니가 무리를 지어 나락을 주어먹고 있었다. 10월경에 찾아와 2월 말이나 3월 초까지 머무는 겨울철새다. 아침 저녁으로 '부들논'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연못에서 쉬고 있는 큰고니 무리. 무려 50여마리가 넘는다. 생상의 <동물사육제> 중 '백조'에 나오는 새다. 부들논은 세종시에 자리한 아담한 '백조의 호수'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흑두루미와 황조롱이, 말똥가리, 후투티 등 온갖 멸종위기종 새들이 찾아드는 이곳은 놀랄만한 야생의 공간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큰고니 무리 옆의 논바닥에서 흑두루미 한 쌍이 쉬고 있었다. 장남들판이 지키고 보존해 온 '장남들 보전 시민모임'은 이 흑두루미에 이름도 붙였다. '장남이'와 '세종이'이다.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의 낙원인 이곳은 금강의 배후습지였다. 세종호수공원 바로 옆의 중앙공원 지역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논농사를 짓던 곳이다. 하지만 10여년 전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개발되기 시작했고, 고층아파트도 곳곳에 세워졌다. 장남평야 바로 옆에는 호수공원과 국립수목원, 중앙공원이 자리를 잡았다. 오는 2027년에는 국회 세종의사당이 들어선다.

장남평야는 이제 도심 속의 섬처럼 고립됐고, 규모도 과거 장남평야의 10% 내외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세종 생태계의 보고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인 금개구리 국내 최대 서식처이기도 하다. 대모잠자리와 물방개 등의 멸종위기종도 서식한다. 또 수달과 고라니, 삵, 너구리 같은 포유류들과 다양한 곤충들이 금강과 장남평야를 오가며 먹을 것을 구하고 쉴 곳을 찾는 쉼터이기도 하다.

세종 한복판에 살아있는 야생의 공간, 자연의 산 교육장


지난 11월 5일 이곳에서는 가을걷이 체험행사가 열렸다. 지난 5월 모내기를 했고 이곳의 생태 변화를 모니터링하면서 환경보전 활동을 해 온 '장남들 보전 시민모임'은 이날 30여명의 가족들과 함께 농경지에서 추수를 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왜소해졌지만, 이곳은 지금도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공간이다.

2016년부터 장남들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곳의 생태환경을 기록해 온 서영석 사진작가는 "장남들은 야생생물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먹이가 많아서 철새들이 많이 온다"면서 "세종시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서 작가는 이어 "이곳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사람과 도시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동식물의 삶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울 수 있고,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가르칠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6번 도로 존치 논란...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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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장남벌판의 저녁노을 ⓒ 서영석

 
그렇다면 도심 속 야생의 공간인 이곳은 언제까지 개발 광풍의 무풍지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종시로의 인구유입이 계속 증가하면 이곳의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더 커질 수 있다. 중앙공원 공사용 임시도로로 건설된 국지도 96번 도로의 존폐 여부가 그 첫 시험대다.

당초 이 도로는 폐쇄를 전제로 한 3km 임시도로로 건설됐다. 하지만 환경단체 인사들은 세종시가 이곳의 교통 수요량을 과대 추산하면서 존치하자는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96번 도로는 2014년에 폐쇄하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교통량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금강과 이곳의 생태축을 단절시키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도로를 폐쇄해서 야생동물들이 금강과 이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이어 "멸종위기종과 각종 보호종이 많아서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장남들의 생물다양성이 유지되려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될 필요가 있다"면서 "이곳의 규모가 너무 적다면 금강 수변과 하중도, 합강 습지 등을 엮어서 법정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캠페인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큰고니와 흑두루미가 날고, 금개구리가 지저귀며, 고라니와 삵이 뛰어노는 '세종판 세링게티'. 이곳을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 남겨줄 수는 없을까? 하지만 주변에는 도로가 건설되고 빌딩과 각종 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날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큰고니가 날아와 한가롭게 노니는 초겨울 장남들판에 서니 불안함이 엄습했다.

김병기의 환경새뜸 : http://omn.kr/1zbr3   #큰고니 #세종 #장남들
   
#큰고니 #백조 #세종시 #장남들 #멸종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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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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