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상] 70년간 사격 자세' 할아버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날은...

제5회 <오마이뉴스> 통일염원 글짓기 수상작, 박현정(망포고, 산문)

등록 2022.12.13 15:05수정 2022.12.13 15:05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역사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들어오셔서 출석을 확인하자마자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미라는 분명한데 보통 미라와는 달랐다. 이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셨지만 아무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신문에 나온 '70년간 사격 자세' 국군의 유해라고 하셨다. 2021년 10월, 비무장지대 백마고지에서 소총을 겨누고 있는 듯한 자세로 발견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고 조응성 하사라고 한다. 선생님의 외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께서는 1928년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으로 1952년 3월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하셨다. 훈련을 마치고 국군 제9사단 30연대에 배치되어 1952년 11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9사단은 6·25전쟁 때 강원도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군과 12차례나 공방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7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2021년 10월 28일,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육군 5사단 유해발굴단에 의해 발굴이 되었다. 탄약과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의 유품도 함께 발견되었다. 만년필! 할아버지께서는 글을 쓰시는 분이 아니었을까.

철모와 머리뼈에서 총알의 관통 흔적이 확인되어 발굴한 군인이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마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으니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을 것이다. 사후 사격 자세 그대로 쓰러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아버지께서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와 핏덩이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가장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아내와 어린 딸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을까. 군인으로 나간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을 것이다. 꼭 이렇게 싸워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6.25 전쟁은 우리나라가 분단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다. 분명 불과 77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국토에서 살던 민족이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라면 힘써 싸워야 옳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끼리 싸워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우리가 어찌하여 서로 헐뜯으며 미워해야 하는 것인가. 서로 아끼고 사랑해 줘도 모자랄 판이지 않은가. 우리끼리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 번 돌아서면 다시 돌리긴 힘든 법이다. 분단된 지 77년이 지나간다.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예외는 앞으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더라도 원래는 한민족이었다. 북한과 남한을 보면 다른 나라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극찬하는 한글을 북한과 남한 모두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서 즉석국수는 라면을 뜻하고, 얼음보숭이는 아이스크림을 말한다. 남한에서도 볼 수 있는 사투리의 차이일 뿐이다. 남과 북의 입맛, 의복, 집 등 또한 아주 미세한 차이다. 탈북자가 남한에서 두세 달을 지내면 완벽하게 적응한다. 이를 보면 77년의 흔적일 뿐이지 남이 아니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보면 통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다시 생각해보면 통일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엔 달이 뜨는 일과 같다. 그 정도로 당연한 것이다. 세계에서 분단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통일에 대한 가능성과 당위성은 북한과 남한 모두 알고 있다. 서로 사소한 배려만 존재한다면 통일은 멀지 않다고 여겨진다.

글을 쓰면서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외할머니께서는 원래 개성에서 단란하게 계셨다. 38선이 그어질 때까지만 해도 개성은 남한 땅이었다. 6.25 전쟁에서 국군이 후퇴할 때 외할머니의 가족은 국군과 함께 남하하여 수원에 정착하셨다.

외할머니께선 돌아가시기 전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다만 고향이 너무나 그립다고. 개성은 세계적인 인삼 재배지로 유명하다. 인삼이 약으로뿐만 아니라 비누, 치약과 바디워시 등 다양하게 쓰이기도 한다. 외할머니께서는 개성에서 먹는 인삼의 맛은 남한의 어떤 곳의 인삼과도 비교가 안 된다고 여러 번 투덜대셨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때 외할머니께선 돼지고기저냐와 북어저냐 그리고 쌀가루를 곱게 쳐서 흰떡을 만든 조랭이떡국을 대접해 주셨다. 하나둘 맛을 본 친구들이 놀랐다. 이런 음식이 있는 줄 몰랐다며 매우 좋아했다. 외할머니께서 개성에서 즐겨 잡수시던 음식이라고 알려주었다. 친구들이 듣고선 한 번 더 놀라니 웃음이 나왔다.

외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어머니께 조랭이떡국을 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도통 기억하던 맛이 나질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이 맛도 곧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성에 직접 가서 먹어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꼭 친구들과 함께 가서 그리운 맛을 보고 싶다.

'70년간 사격 자세' 할아버지의 유해는 현충원에 안장되어 안식에 들어가셨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한은 남아있다. 통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날, 그 한은 풀어져 영원한 안식이 될 것이다.

박현정(망포고, 산문)
#통일염원 글짓기 #오마이뉴스 #평화상 #박현정 #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