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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2회 착용도 근무평가... "법원행정처가 날 부당해고"

[인터뷰] 법원 보안관리대원, 법원행정처 상대 해임 처분 취소소송

등록 2022.12.19 13:25수정 2022.12.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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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X 개념없네.' '니가 그러고도 남자XX냐?'
'너 내가 생매장 시켜줘? 법원에서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줄까?'
'한 대 쳐 봐. 먼저 쳐.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박재윤씨 메모장 중)


박재윤(가명·29)씨의 휴대전화 메모장엔 직장 A 선임으로부터 겪었던 괴롭힘이 아직 빼곡히 적혀있다. 2년 전인 2020년 9~10월, 폭언을 들을 때마다 억울함이 쌓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혼자 일기처럼 남긴 메모였다. 입사 후 9개월 때의 일이다.

박씨는 대법원의 보안관리대원이었다. 대법원 동문·서문·정문 등에서 경비를 서며 청사 질서와 보안을 지켰다. 업무 특성상 야간 근무가 필수여서 5일에 한 번은 꼭 24시간 청사에 상주하는 당직을 섰다.

박씨는 이 당직 순서를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로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박씨는 A 선임과 당직을 한 번 바꿨는데, 사정이 생겨 이를 동기직원과 다시 바꿨다. A 선임은 이를 거세게 질책했다. 관례상 동기와는 당직을 바꾸지 않는데 어겼고, 이를 자신에게 얘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집 임대차 계약 때문에 사정이 급했고 팀장에게 허락도 구했다고 해명했지만 A 선임은 계속 그를 몰아붙였다. 이어 박씨가 죄송하다고 하자 '이제 와서? 넌 이미 사과가 늦었다'는 답과 폭언만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개월 간 무시, 폭언, 인격모독, 감시 등의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그는 특히 집안 사정 비교와 성희롱을 당할 땐 비참함도 느꼈다고 했다. 

박씨가 이제야 이를 적극 밝힐 수 있는 이유는 이 사건이 자신의 '부당 해고'에 직접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서다. 박씨는 현 보안관리대원 170여명 중에서 임기 도중 해임된 첫 사례다. 보안관리대원은 기간제 노동자와 비슷하게 근로 기간이 최대 5년으로 정해진 '임기제 공무원'이다. 대부분 임기 10년(2020년부터 5년)을 채운 뒤 정규직 공무원으로 전환돼왔다. 박씨처럼 2년 일한 뒤 바로 해임된 사례는 없었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근무평가와 직후 근무평가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최상에서 하로 떨어졌어요. 직장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는 둥, 근무시각에 자리에 없었다는 둥 일방적인 평가의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았고, 제 의견은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저를 내보냄으로써 문제를 일단락시킨 것밖에 안 됩니다. 법원행정처는 해고가 아니라 '임기 만료'랍니다. 그러나 제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해고입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해임 통보를 받은 후부터 지금까지 대법원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싸우고 있다. 결국 지난 4월 인사권자인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서울행정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박씨를 만나 소송까지 결심한 이유를 들었다.

갈등 직후 근무 평가 바닥... "대체 누가 평가했나"

박씨는 법원행정처가 사건의 맥락을 싹 빼고 자신을 불성실하다고 낙인찍은 평가서만 보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박씨는 입사 직후인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근무 평가는 최상에 가까웠다. 항목 대부분에서 '우수'를 받았고, 근태가 모범적이라거나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 사건 발생 직후인 11월, 한 달 전까진 '우수'였던 결과가 대부분 보통이나 미흡으로 떨어졌다. '일부 선배와의 마찰'이 언급되면서 신망도, 협조성 항목에서 '중' 등급을 받았고 '자질이 없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이후 2021년 12월 해임 전까지 유사한 결과가 평가서에 꾸준히 남았다. 마치 자신만 표적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날 몇 시 몇 분에 근무장소에 없었다'는 평가는 여러 개였는데, 박씨는 이에 "내 업무시간이 아닌 것도 포함됐고, 2년 동안 지적받은 적도 한 번도 없다"며 "우리는 2인 1조 근무인데, 왜 다른 근무자에겐 어떤 조치도 않고 나에게만 책임을 묻는가"라고 반문했다.

평가자는 '민원인 민원 야기 및 사과 미실시'도 박씨 근태 문제로 남겨 놨다. 박씨는 "당시 한 노동조합 조합원이 1인 시위 용품을 가지고 청사 내로 입장을 하던 상황이라 제지했고 당사자가 큰 소리로 항의했다"며 "이때 나는 부적절한 언행을 하지 않았고 당시 같이 있던 선임이 자리를 피하라 해서 이동한 게 전부다. 사후 질책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무실에 슬리퍼 착용 방문 2회 연속'도 저평가의 근거였다. 박씨는 "청사 근무지에 슬리퍼를 착용하고 갔을 리는 절대 없다. 선임들과 함께 근무하기에 더 못 한다"며 "근무가 끝난 후 휴식이나 대기시간에 실내에서 슬리퍼로 바꿔 신었던 상황 같은데, 이걸 근무평가에 넣는 게 과연 옳은가"라고 물었다. 평가자는 '다른 대원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얘기가 들린다고도 평가서에 남겼다. 

하지만 '박씨가 불량한 근무자가 아니었다'고 탄원서를 써준 법원 직원은 동료 보안관리대원들을 합해 300명이 넘는다. 그가 채용되기 전 인턴 보안관리대원으로 일했던 의정부지법에서만 100여명의 직원들이 탄원서를 써줬다. 여러 사정을 알아본 법원노조(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박씨에게 연대해 박씨의 해임은 부당해고라며 법원행정처에 항의하고 있다.

박씨는 당시 괴롭힘을 두 달 동안 참다가 결국 청사 보안 담당관에게까지 고충을 털어놓으며 도와달라고 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근무 평가가 바닥을 쳤다고도 했다.

박씨는 그래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와 그 내용의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것을 법원행정처에 요구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이유가 있다"며 관련 사실조회 신청과 증인신문 요구도 모두 수용한다고 밝혔다.

"애초 정규직으로 뽑았으면 안 생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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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박씨는 더 근본적으로는 비정규직의 폐해라고 봤다.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이라면 일방적인 근무 기간 종료도 불가능할뿐더러, 근태에 문제가 있더라도 충분한 조사와 소명 절차를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노조가 박씨와 연대하는 이유기도 하다. 법원노조는 법원의 상시·지속·필수 업무인 보안관리대원을 기간제처럼 고용해온 관행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협약을 통해 2018년엔 '신분상 지위와 처우 개선을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는, 2021년엔 '임기제 고용을 폐지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2020년, 10년으로 정해진 임기를 5년으로 줄이면서 보안관리대원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뽑기 시작했다. 법원노조는 대원들이 임기 10년을 다 채워 일했던 관례에 비춰 5년으로 바뀐 제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가 기간만 단축한 게 아니라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하는 구조로 운용하면서 고용이 더 불안정해졌다.
 
"처우개선이라면 전보다 더 나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1년 단위로 기간을 연장하는 건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후퇴입니다. 노조는 강력히 항의합니다. 법원행정처는 박씨를 복직시켜야 합니다." (황건하 법원노조 교선국장)

박씨 또한 "대부분 주어진 임기를 다 채워 일한 후 정규직 전환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해 채용시험에 지원했다"며 "채용 공고에도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한다는 문구는 없었다. '총 근무기간이 5년을 넘지 않는다'는 말만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우개선의 취지를 보나, 관례로 보나, 상시·지속적인 보안관리대 업무를 보나 1년 씩 기간을 연장하는 구조는 이유가 없다"며 "중대한 하자가 없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기대할 권리도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씨가 처한 상황과 최근 법원 판결은 모순된다. 민간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 전환'이나 '계약 갱신' 등에 있어 '기대권(현재 확정 권리는 아니지만 장래에 법률상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을 인정받는 판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맡은 업무가 한시적 업무가 아니라는 점, 같은 직무에서 정규직 전환 사례가 있는 점, 갱신이 거절될 합리적 이유가 없는 점 등을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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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초경 공무원노조 법원본부의 한 간부가 대법원 앞에서 박씨에 대한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법원행정처 "의견 밝히는 것 적절하지 않아" 

법원행정처는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14일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피고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재판 중에 있는 내용들로 행정처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답변드릴 수 없음을 양해바란다"고 밝혔다. 
#법원 임기제 공무원 #보안관리대원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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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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