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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힙한 게 뭐야?" 아빠와 딸의 '힙' 경험기

50살 아빠와 22살 딸, 서로의 '힙한 하루' 보내보니... 나만의 '힙' 찾는 방법은?

등록 2022.12.15 11:43수정 2022.12.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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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빠, 김영인(50)씨는 자주 신조어를 배워온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빠는 자주 인터넷에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검색해보는 모양이다. 아빠가 신조어를 배우는 이유는 하나. 대학생인 아들과 딸, 그리고 초등학생인 막내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가끔 버카충(버스카드충전), 레알(정말로)과 같이 철 지난 유행어를 배워 오기도 하고, 정말 맛있다는 뜻의 존맛탱을 정말탱으로 잘못 쓰기도 하지만 아빠는 굴하지 않고 신조어를 어디선가 배워 온다.


그런 아빠가 요즘 꽂힌 신조어가 있다. 바로 '힙하다'이다. 아빠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딸, 힙하다는 말 알아? 근데 그게 멋지다는 뜻이야? 요즘 가수들 영상 댓글에도 힙하다고 하고 옛날 가수 영상에도 힙하다는 말이 써 있더라?"

"음... 그게 무슨 뜻이냐면..." 아빠의 물음에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분명 힙하다라는 단어는 평소에 친구들과 종종 쓰는 말이었는데, 막상 무슨 뜻인지 정의하려고 하니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신식 인테리어를 한 카페를 보고 힙하다고 하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노포에 가면서 힙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멋있다? 유행을 따라가다? 인기가 많다? '힙'은 도대체 뭐지?

20대의 힙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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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기다려 먹은 수제비 ⓒ 김혜원


호기심이 많은 나와 아빠는 직접 힙한 하루를 보내 보기로 했다. 50살 아빠와 22살 딸의 '힙 경험의 날'을 갖기로 한 것이다. 아빠와 나의 '힙한 하루의 코스'는 내 주변에서 가장 힙한 곳을 잘 아는 친구가 짜주었다. 코스는 다음과 같다.

12:00 안국역에서 집합
12:00-12:15 수제비 식당으로 이동
12:00-1:00 점심 식사
13:00-13:15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관으로 이동
13:15-14:30 미술관 관람
14:30-15:30 미술관 내 카페에서 티타임
15:30-16:00 즉석 사진 부스에서 사진 찍기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은 너무 유명해서 1시간이나 줄을 서서 먹었고, 미술관도 유명한 공연이 진행 중이라 사람이 가득했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소품을 골라 사진도 찍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까지 모든 일정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아빠에게 '힙하다는 게 뭔지 알겠는지' 물었다.

"힙하다는 건 무언가를 제대로 한다는 것 같아. 줄을 서더라도 정말 맛있는 곳에서 먹고 사람들 틈에 끼어서라도 좋은 전시를 보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펙이니 학점이니 챙겨야 할 게 많아서 시간이 없으니까 이왕 시간 낸 거 제대로 된 걸 하겠다는 마음에서 힙하다는 표현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아빠는 힙하다는 단어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 20대의 생활 환경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험한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미술관에서도 사람들이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사진을 찍고 길거리에 즉석 사진기가 엄청 많더라. 즉 힙하다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한번 할 때 제대로 잘하는 곳을 경험하기!'같아."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한 힙하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힙하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여기서 '고유한'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힙한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의 고유함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성을 가득 담은 카페에 가서도 힙하다는 말을 하고 시간의 손길이 가득한 노포에 가서도 힙하다는 말을 사용한 것이었다. 힙하다의 중심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함이 포인트가 아닐까. 고유함의 측면에서 '제대로'를 강조한 아빠의 정의는 꽤나 결을 같이 한다.

아빠의 '힙'은 뭘까? 

이제 나는 아빠의 힙함이 궁금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아빠의 '고유함'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아빠에게 아빠의 힙한 하루를 같이 보내고 싶다는 연락을 하자마자 아빠는 일정을 보내왔다.

10:00 조치원역에서 만나기
10:10 조치원 시장에서 만두 먹고 밭으로 이동
11:00 배추 뽑기
13:00 배추 절이고 김장 준비
19:00 김장 끝내고 밥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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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이에서는 취미가 있는 것이 힙한 것이라고 한다. 아빠의 취미는 주말농장. ⓒ 김혜원

 
그렇다. 나는 김장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김장하는 것 빼면 시장에 가는 것과 밭에 가는 것은 매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아빠의 힙함이라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50대는 취미가 있는 게 힙이야. 50대쯤 되면 자식도 다 크고 내 시간이 많아지거든. 취미가 있다는 건 행복을 찾는 나만의 방법 있다는 뜻이고, 그게 힙이지. 왜 농사가 취미냐고? 아빠 고향이 시골이잖아. 그래서 흙을 밟으면 마음이 편해."

배추를 뽑고 집에 가는 길에 아빠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만의 힙함을 찾는 거, 좋은 것 같아.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는데 나만 가지고 있는 무언가는 안 바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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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찍은 '네컷 사진' ⓒ 김혜원

#힙하다는 것 #신조어 #아빠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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