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할머니를 닮은 홍시를 만났다

등록 2022.12.19 14:34수정 2022.12.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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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할머니를 닮은 홍시를 만났다. ⓒ 김종섭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라 시장에는 각국의 과일들로 넘쳐난다. 사시사철 계절에 관계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는가 하면,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다. 캐나다에 있는 한국 마트에도 한국 과일이 풍성하다. 제철이 지난 홍시가 캐나다에 상륙했다. 홍시는 가을이 제철이다. 하지만 홍시는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홍시라는 말만 들어도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세월이 변하고 할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셔도 홍시만은 여전히 할머니를 닮아있길 바랬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나훈아가 부른 노래다. 홍시와 어머니에 대해 담고 있지만, 나에게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먼저 찾아가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할머니와의 기억을 붙잡는 순간이다.

할머니 댁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안채가 있고 문간 옆으로는 곳간이 있다. 곳간에만 유일하게 자물쇠가 잠겨있다.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할머니 밖에 없었다. 배고팠던 시대에 곳간은 먹을 것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야 부의 상징이었다. 할머니 댁은 머슴까지 두고 있을 정도로 부농이었다. 곳간은 안방마님만이 누릴 수 있는 상징적인 보물 1호와도 같은 존재감이 아니었을까. 

곳간 깊숙한 곳에 큰 독이 하나 있다. 독 안에는 가을철 추수해 놓은 홍시를 저장해두었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곳간에 저장해 두었던 먹거리를 내어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기쁨이자 낙이셨다. 할머니의 아랫목은 항상 따끈따끈하다. 할머니는 제일 먼저 손주에게 아랫목을 양보하시고 잠시 자리를 비우신다. 잠시 후,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큰 홍시를 그릇에 담아 숟가락과 함께 가져다주셨다. 두 손으로 잡고 먹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다.

어렸을 때 먹었던 홍시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를 지녔다.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없는 맛이다. 긴 세월을 보낸 탓에 홍시의 맛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세월 탓에 입맛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은 할머니의 손길이 묻지 않은 탓에 옛날의 그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 댁 앞마당 감나무에 홍시가 열리면 할머니가 올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고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세월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더 이상 할머니가 오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홍시의 추억마저 떠나가 버렸다.


할머니가 떠나버린지 오랜 세월을 맞이한 곳간은 사랑의 손길 대신 먼지만 무성할 것이다. 오늘은 홍시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할머니의 모습을 기다리던 어릴 적 동심의 마음은 오간 데 없다. 인생의 먼 길을 여유 없이 걸어왔다. 할머니를 닮은 홍시가 다시 열리면 좋겠다.
#홍시 #할머니 #감나무 #추억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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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Daum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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