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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아닌 '인간' 안중근의 마지막 1년

[리뷰] 영화 <영웅>

22.12.21 13:39최종업데이트22.12.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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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 스틸컷 ⓒ CJ ENM

 
대한민국 국민 DNA에는 '이순신'과 더불어 듣기만 해도 마음속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름이 있다. 바로 '안중근'이란 세 글자다. 그래서일까. <영웅>을 보고 나서 많이 힘들었다. 몇 해 전 이맘때쯤 서대문형무소에서 당시를 간접 경험했던 때가 떠올랐다. 두꺼운 패닝과 목도리, 보온 장갑과 신발로 무장해도 추운데 저 차가운 맨바닥에서 어떻게 겨울을 보냈을까. 생각만 해도 몸과 마음이 아릿해졌다.

뜬금없지만 부천에는 '안중근 공원'이 있다. 무슨 연고가 있냐고? 사실은 하얼빈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업가가 사비를 털어 제작한 동상을 하얼빈역에 세웠던 것. 외국인 동상은 공공장소에 불허한다는 중국정부의 입장 때문에 11일 만에 철거되어 2009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필자는 영화관에 가기 위에 이 공원을 반드시 질러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마주하는 안중근 동상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 결말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원작의 명성을 얻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비교 대상이 있다는 부담감이 있을 텐데 이 정도면 성공적인 뮤지컬 영화의 각색이라 할만했다. 결말을 아는 상황에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배치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서사와 극적 상황의 강약 조절, 구멍 없는 연기가 포인트다.

끝없는 설원. 동지들과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단지 동맹 후 혈서로 조국 독립 결의를 다지는 오프닝의 숭고함은 클로징까지 이어진다.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만 일"이란 말로 독립운동의 헌신을 다짐한 동의단지회. 그들의 단단했던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손톱 하나 잘 못 깎아도 호들갑 떨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재구성
  

영화 <영웅> 스틸컷 ⓒ CJ ENM

 
홀어머니(나문희)와 자식 둘, 그리고 아내(장영란)를 남기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온 안중근(정성화). 3년 이내에 국가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맹세한 몸으로 그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법에 따라 일본 포로를 풀어준 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인류애를 실천했건만, 안중근은 화령 전투에서 동지를 다수 잃고 실의에 빠진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다시 뭉쳐 거사를 치르려 한다. 러시아와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소식을 듣고 그날을 준비한다. 한편,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힘없는 궁녀에서 조국의 정보원이 된 설희(김고은). 정체를 숨기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고급 정보를 독립군에 빼돌린다.

바로 그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총성으로 체포된 안중근은 한국 변호사의 변호를 선임할 기회도 없이 일본 법정에 살인죄로 재판받아 사형을 선고받는다. 국제법에 따라 전쟁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조항은 깡그리 없앤 채 철저한 일본법에 따른 졸속 판결이었다. 하지만 항소는커녕 어머니 조마리아의 뜻에 따라 여순 감옥에 투옥된 후 맹세를 지켜낸다.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보내달라는 소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뮤지컬 영화화의 좋은 예
  

영화 <영웅> 스틸컷 ⓒ CJ ENM

 
<영웅>은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동명 뮤지컬의 영화 버전이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변호사도 없이 바로 사형 판결을 받아 이듬해인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했다. 막과 막, 장과 장으로 무대가 바뀌는 뮤지컬 장르를 어떻게 영화로 옮겨 왔을지 궁금함이 커졌다.
 
일단은 합격! 장면전환은 찻잔이 떨리며 과거를 회상하고 앞치마를 펼치면 다음 장면에서 겉옷을 입는 등 자연스러운 컷과 컷의 연결로 해결했다. 최초 쌍 천만 감독인 윤제균의 노련미가 느껴진다. 무대의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순간을 담은 장치도 활용했다. 마치 공연 라이브를 보는 듯 독특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기대 반 우려반. 원작을 보지 않았던 관객에게도 진정성이 전해지는 목소리와 가사, 음악은 몰입감을 선사해 집중하게 만든다. 초반부터 결연한데 결과를 알고 있어서인지, 슬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이 선보였던 다수의 상업 영화 결을 따른 코믹 요소는 호불호가 있겠다. 아무래도 소재가 무거운 만큼 중압감과 묵직함을 해소하는 쉼표가 필요했을 거라 판단했을 것 같다. 그 부분을 쉽게 허용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겠다.

2009년 초연했던 창작 뮤지컬부터 안중근의 대체 불가 존재감 정성화가 이어 맡았고, 오리지널 넘버가 사용되었다. 이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70% 소화했다는 배우들의 각고의 노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실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유독 약세인 뮤지컬 영화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인간 안중근, 모두가 영웅!
 

영화 <영웅> 스틸컷 ⓒ CJ ENM

 
영화는 위인이기보다 인간인 안중근의 마지막 생애를 담았다.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이냐'라며 한탄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동지를 잃어버린 실수를 인정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가장이자 아들, 한 인간이었던 안중근을 짧고 굵게 보여준다.
 
단 세 발로 국가 원흉을 처단한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쳐 만천하에 공표했다. 2시간 동안 서사를 쌓아 올려 마지막 10분에서 터트린다. 하이라이트는 스스로를 독립군 대장으로 칭하며 기울어진 재판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기개와 정신을 전하는 재판 장면이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동양 평화를 바라는 군인이자 국민으로서 떳떳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궁녀, 어머니, 아내, 소녀 모두가 영웅이었던 여성의 참여도 잊지 않는다. 독립은 영웅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게 아닌, 사람과 사람이 있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민초들의 연결과 믿음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모두의 희생과 노력이 밑거름 되었기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자긍심도 전한다.

출연 배우 모두가 각자의 노래 파트가 있다. 정성화는 14년째 원작 뮤지컬을 경험을 토대로 뛰어난 성량, 연기와 노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함을 선보인다. 의외로 김고은의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며 압도적이다. 노래만 부르는 것도 힘들 텐데 울부짖은 연기와 동선까지 처리해야 할 현장의 어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한에 사무친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의 마음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영화, 드라마까지 섭렵한 최고의 스타가 이제 뮤지컬까지 영역을 넓히는 건 아닌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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