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과 다이어트, 그 이상한 경계에 관하여

[주장] 비만을 낙인 찍는 사회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등록 2022.12.29 11:36수정 2022.12.2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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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 ⓒ 픽사베이

 
의사 일을 하며 다양한 환자들을 본다. 그중에 가끔 다이어트약을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럴 때 참 고민스럽다. 다이어트약, 식욕억제제는 적응증이 되는 사람, 일정 BMI를 넘는 키와 체중을 가지고 있고 합병증이 우려되는 사람에게 처방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이 있는 사람보다 적응증에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 약을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약을 먹고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다이어트할 때 꼭 그 약이 필요하다고 여겨 약에 의존하게 된다.

다이어트약을 먹으면 수면장애가 생기기도 하고, 우울 불안이 증가하기도 한다. 약물의 부작용이 있기에 약의 이익과 위해를 따져서 환자 본인에게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체중감소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 많은 위해가 간과되고 있다. 다이어트약은 체중 감량을 빠르고 쉽게 하려는 이들의 욕망과 약을 판매하고 처방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합쳐져 꼭 필요한 때 꼼꼼한 평가를 거쳐 쓰이는 게 아니고 혹해서 먹는 것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다이어트가 건강 그 자체보다 중요시되는 이유는, 비만을 가지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난 체형을 가진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타박을 받기도 한다. 어릴 때 받는 직접적인 놀림부터 시작하여 커서는 걱정으로 포장된 편견이 그들에게 날아온다. 자기관리에 대한 평가에는 신체적 요소가 꼭 들어가서 날씬하지 않은 몸은 자기관리를 안 한 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비만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직장, 교육기관, 의료기관 등에서 더러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하며,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차별받는다는 전문가 합의문이 있다. 비만에 대한 낙인이 삶과 의료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비만 체형은 우울증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 국민영양건강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이 있으면 비만율은 약 2배로 높아진다. 반대로, 우울증이 없던 사람도 체중이 증가한 뒤 우울감에 시달리기 쉽다는 연구가 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병원 연구 결과, 체지방이 표준치 기준에서 10㎏ 증가할 때마다 우울증 위험은 17%씩 증가했다. 비만은 자아 존중감을 낮추고 우울,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비만은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등 사회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키며 삶의 질을 낮춘다는 연구가 있다.

체형과 체중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한다. 다이어트의 교과서라는 식이조절과 운동도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도저히 해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우울증 등의 심적 요소가 엮여 폭식과 무기력이 있을 수도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살을 빼야지'라는 말은 상당히 납작하며, 비만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환경적 및 사회적 요소를 무시한다. 사람은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흡연율이나 정신질환율이 사회적 요소와 관련이 있듯이, 비만을 가지는 것도 사회적 환경이 일정 부분 작용한다. 

비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애초에, 비만이 해결할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비만을 만드는 사회가 해결이 필요한 문제일 것인가? 비만을 만드는 사회도 사회 나름이다. 사람들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도 문제이고, '비만'을 정의하고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찍는 사회도 문제가 된다. 비만과 체중을 둘러싼 요소들은 다층적이며, 비만이 '게을러서 생긴다'라는 편견 어린 인식은 비만의 건강적 의미를 퇴색시킨다. 비만은 만성질환의 위험 요소가 되지만, 비만은 체중의 경계일 뿐이다. 자신이 건강한 스펙트럼이 있는 한 비만이 용납할 수 없는 질환은 아니다. 

의학의 역할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서 이익을 취하려 하면 안 된다. 외모가 평가의 대상이자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다이어트약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체중은 각자 건강을 관리하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 체중이 평가의 영역이 되는 순간, '비만'이라는 체중의 선이 그어지고, 비만을 가진 이들에게 던져지는 손가락질은 당연한 것이 된다.


몸이 평가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몸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몸을 아끼고 관리하는 대신, 타인에게 보여줘야 할 몸을 만들기 위해 몸을 닦달하는 관리인이 된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외모, 체중에 쏠린 무게추를 조금씩 건강의 영역으로 미는 것이다. 각자의 몸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때, 체중과 체형은 우리 몸의 일부이자 건강의 요소가 된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비만 #건강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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