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
개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있다면 누구 하나를 편애하지 않으려는 거다. 겪어 보니 개도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자신과 비슷한 대상에게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우리 개들도 그렇다. 매번 똑같은 그릇에 똑같은 사료를 줘도 항상 자기 밥그릇과 남의 밥그릇을 비교한다. 사람이나 개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다.
간식이나 장난감 같이 민감한 주제의 자원 분배에는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한쪽으로 물량이 기울면 여지없이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집은 진도믹스 복주가 의젓한 성격이라 욕심 많은 허스키 해탈이에게 뭐든 곧잘 양보해서 주변의 다른 다견가정에 비해 큰 탈 없이 지내는 편이다.
나는 왜 복주를 더 많이 혼낼까?
a
▲ 모자를 쓴 복주 ⓒ 이선민
하지만 이런 복주도 종종 해탈이한테 참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복주의 애착 장난감을 해탈이가 훔쳐갈 때다. 이때만큼은 복주도 절대 해탈이를 봐주지 않는다. 복주의 애착인형들은 복주 덩치에 맞지 않게 하나같이 작고 조잡하다. 대표적으로 애기 손만한 사자인형, 탁구공 크기의 삑삑이 공, 실리콘 재질의 돼지인형 등이 있다. 복주는 이런 장난감 몇 개를 종일 가지고 놀다 졸리면 머리맡에 모아 놓고 잠을 잔다. 문제는 이걸 해탈이가 수시로 노린다는 데 있다.
둘은 이 문제로 여러 번 다퉜다. 한 번은 이 일로 크게 싸웠다. 그땐 정말 저러다 누구 하나 오늘 피 보겠다 싶을 정도로 상황이 험악했는데 복주가 가까스로 작정하고 덤비는 해탈이를 제압해 서로 다치지 않고 싸움이 끝났다. 해탈이가 8개월 무렵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전에는 해탈이 덩치가 복주보다 월등히 작으니 언니한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찍소리도 못하더니 그때는 녀석이 참지 않고 언니한테 덤볐다. 다행히 그 사건 이후로 둘은 더는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그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동네에 자주 가는 반려견 놀이터 한 구석에서 우리 개들끼리 작은 실랑이가 있었는데 나는 상황을 대충 눈으로 한 번 훑고 성질부리는 복주를 야단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언니 잠깐만, 왜 복주를 혼내? 지금 이거 해탈이가 잘못한 거야"라는 거다. 어라? 가만 보니 그 말이 맞다. 해탈이가 먼저 복주를 건드렸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복주를 나무란 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인 해탈이를 야단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말 잘 듣고 차분한 성격의 복주를 혼내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순간 머쓱해진 나는 친구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게 해탈이는 아직 어려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혼내도 별 의미가 없어. 내 감정만 소모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복주는 내 말을 잘 알아듣거든.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자꾸 복주를 다그치게 되네."
그 친구는 내게 '그러지 말라'고 '언니 하는 거 보니까 본인이 어려서 남동생 하고 싸울 때 엄마한테 당했던 일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a
▲ 8개월 해탈 ⓒ 이선민
그날 이후로 곰곰이 내 행동을 돌이켜 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해탈이보다 복주한테 엄하게 군다. 이상하지 복주한테는 내가 은연중에 맏이인 인간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요구한다. 복주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이미 잘하고 있는 복주한테는 오히려 더 잘하라고 한다. 반면에 해탈이한테는 아무 기대가 없다. 어려서부터 하도 말썽을 피워 그런가 해탈이는 그저 다른 사고 안 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뿐이다.
남들 보기엔 내 행동이 충분히 기울어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고 싶다. 나는 해탈이를 편애하지 않는다. 나는 둘 다를 똑같이 좋아한다. 복주는 복주대로 귀엽고 해탈이는 해탈이대로 소중하다. 다만 둘에게 허용되는 범위가 다르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다.
이밖에도 개를 키우면서 조심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개를 은연중에라도 '자식' 취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도 나는 우리 개들을 부를 때 '아이'나 '딸'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말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태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개들을 가능하면 자주 개라고 칭한다. 그래야 내가 개들에게 인간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전에 해탈이가 비둘기 사체를 물고 왔던 때처럼 말이다(관련기사 : 개가 비둘기 사체를 물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일들을 마주했을 때 개를 개로 보면 크게 문제될 게 없는데 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개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와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개와 사람은 같지 않다. 일단 우리는 언어가 다르다. 개는 홀로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하지 않는다. 개들은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나는 우리 개들에게 이런 기회를 자주 제공해 주면 된다. 왜? 우리는 서로 행복하려고 만났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같이 사는 이유가 없으니까.
다만 개와 사는 것은 큰 틀에서 인간과 사는 것과 별 차이는 없다. 중요한 건 서로의 다름을 기꺼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상대가 누가 됐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와 같기를 바랄 때 언제나 관계에 균열이 생기니까. 그것이 털가죽을 입고 있는 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