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2 04:58최종 업데이트 23.01.02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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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가 밝았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해가 넘어갔다는 감각이 점점 옅어진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기보다 새로운 주가 다가온 느낌이다. 주말을 쉬고 월요일이 밝아 다시 출근하는 기분. 익숙한 사무실, 내 자리, 내 컴퓨터와 업무가 나를 반길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 주에도 하던 일을 2023년의 시작에도 할 것이다.

물론 조촐한 이벤트는 있다. 일하는 곳이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총회를 비롯하여 새해에만 할 법한 행사를 치르겠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이후로는 다시금 익숙한 반복이다. 극적인 단절도 변화도 없다. 이렇게 몇 년이 반복되다 보니 바뀐 연도를 헷갈리고 잘못 쓰는 일이 반복된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달라지는 게 있다. 바로 나이다. 유일한 단절과 변화가 아닐까. 자정에 도달하여 1월 1일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나이에 한 살이 추가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23년부터는 만 나이가 적용된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6월부터 시작이라 생일이 그 이전인 나는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 거기에 이 만 나이는 사법 관계와 행정 분야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데 이게 일상으로도 잘 스며들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나이에 따른 특유의 서열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존댓말 사용 여부와 언니, 오빠, 형, 누나 등 호칭 정리도 지금의 나이 체계에 기대고 있다. 사람들이 그 모든 혼란을 감당하며 만 나이를 사용할까. 모를 일이다.

누구나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나이

30대 이후로는 나이를 까먹는 일이 잦아졌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의식해야 하는 순간은 다가온다.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볼 때도 있고 여러 이유로 내가 나이를 직접 밝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아, 내가 벌써' 혹은 '이제는 내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끔 고민하게 된다. 내가 나이에 맞게 충분히 잘살고 있는 걸까. 미래를 잘 상상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나이가 되면 안정적으로 자리도 잘 잡고 가야 할 길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예상과 현실은 늘 빗나간다. 지금까지도 사는 건 빠듯하고 미래는 잘 보이지 않고 많은 게 혼란스럽다. 내가 나이에 걸맞게 잘살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10년 후에는 또 달라질까. 이미 10년 전의 예상도 틀렸는데 그렇다면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워 본 순간이 있었다. 올해 초에 참석했던 영어 공부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모임마다 마지막에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영어 작문을 했다.

어느 날의 주제는 '70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40살도 잘 모르겠는데 70살의 나에게 편지를 쓰라니, 그것도 영어로? 주제가 막막하지만 쓸 수 있는 언어가 극도로 단순해지니 의외로 글은 거침없이 나왔다. 에두를 수가 없으니 직설적으로 뱉어냈다. 편지의 시작은 이러했다.

'솔직히 말할게, 내 생각에 넌 나를 싫어할 거야.'

70살의 나는 지금의 나를 싫어할 것이다

이유는 이러했다. 70살의 나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위험하고 우둔한 사람과 지나치게 가깝고(왜냐하면 지금의 내가 멍청하기 때문에) 책임감과 자신감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확신했냐고? 지금보다 과거의 나에 대한 내 생각이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가풍은 '자신에 대한 평가는 아무리 박해도 과하지 않다'인데 내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나는 1년 전의 나도 23살의 나도 17살의 나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멍청하고 한심했고 최선의 인생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냉정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7살의 나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49세 선수의 아름다운 마무리 19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오벌)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를 마친 뒤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이 중국 관중들 앞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페히슈타인은 1972년생으로 올해 49살의 나이로 이날 출전해 매스스타트에서 6위를 차지했다. 이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2022.2.19 ⓒ 연합뉴스

 
하지만 70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자기혐오로 점철한 채 끝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설명이 필요했다. 나는 변명과 설명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 이야기를 썼다. 돌이켜보면 많은 게 나에게 처음이었다는 것. 이건 나이가 어릴수록 인생의 시련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내 평소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가령 어린 시절 나는 수면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용이 별 게 아니다. 왜 인간은 잠이 오지 않을 때 잠을 자고 잠이 오는 아침에는 억지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가. 우울감이 들고 아침부터 나를 불러내는 학교가 원망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일도 10년, 20년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알람을 듣고 눈을 뜰 때의 스트레스는 점점 옅어지다 어느 순간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 일어나면 하루를 시작하기도 바쁘다.

나는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17살의 나는 대학교 생활이 어떨지 몰랐다. 상상하는 모습은 있는데 구체적인 현실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원하는 것의 좋은 것만 보려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꿈만 꿨다. 그러다 보니 20살 막 대학생이 된 나는 낯선 도시에 떨어진 사람처럼 일상이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26살쯤 되자 이제는 대학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적어도 어떻게 해야 이상해 보이지 않을지는 알았다. 단 나는 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몰랐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취업을 희망했고 일하는 내가 꽃길을 걷는 모습만 상상했다. 그 결과 첫 직장에서 나는 행복한 시간도 많이 보냈지만 수치심에 다시 돌아가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저지르곤 했다. 회사 조직 생활의 요령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

왜 과거의 내가 그렇게 미운지 이유를 적었지만 그러고 나니 이전의 나 자신이 조금씩 이해되기도 했다. 몰랐고 서툴렀구나. 그리고 계속해서 다가오는 새해를 마주하며 새로운 나이와 세대로 진입한 때의 나 또한 마찬가지의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익숙한 것은 아마 잘 해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나이에 요구받는 새로운 역할과 주어지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 나는 또다시 고장 난 로봇 청소기처럼 우왕좌왕하고 실수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충분히 나이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할 것이다. 그 결과 70살이 되어서도 나는 예전의 내가 멍청하다고 다시금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편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쳤다.

'70살의 나에게. 나는 너에게 지금의 나를 좋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거야. 멍청하다고 생각하거나 싫어하지 말라고 부탁하지 않을 거야. 대신 나는 지난 시간 과거의 내 모든 모습들을 용서하고 포용하고 사랑할 거야. 그리고 지금의 나도. 너는 나와 같은 일을 하거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 모든 건 너에게 달렸어.'

그리고 70살의 나에게 전한 그 메시지를 자신의 새로운 나이를 확인하며 '이 나이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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