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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지한의 꿈, 시상식 올라 외치려 했던 '엄마 이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야기] 땀을 믿었던 청년의 스물넷 행복했던 삶

등록 2023.01.02 05:00수정 2023.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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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49재 이후 이런저린 일들을 챙기느라 아들에게 오랜만에 왔다는 조미은씨가 아들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 권우성

 
배우 이지한에겐 꿈이 있었다.

"엄마, 내가 만약 연말에 신인상을 받잖아? 수상소감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
"엄마 이름 세 글자를 크게 부를 거야. 조. 미. 은. 씨 감사합니다."


이태원 참사 후 두 달. 늦가을이었던 그날 이후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눈도 펑펑 내렸다. TV에선 연말 시상식이 한창이다. 지한씨 방에 앉아 엄마는 생각한다. '지한이는 왜 집에 안 오지? 촬영을 멀리 갔나? 아, 지한이가 숨을 거뒀지? 내가 착각했구나? 아니, 착각이 정말 착각일까?'

하루 종일 어지러운 엄마의 머릿속이지만 아들의 꿈과 약속만큼은 선명히 남아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몰라 보일러를 켜 둔 엄마 덕분에 그의 방은 여전히 아늑하다. 참사 후 두 달이 지난 12월 29일, 지한씨가 봉안돼 있는 경기도의 한 추모공원에서 엄마 조미은씨를 만났다.

"저의 장점은 '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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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이 아빠' 이종철씨가 아들을 찾아온 사람들이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방명록을 만들었다. ⓒ 권우성

 
스물넷 청년 지한씨는 꿈과 땀을 믿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때 지한씨는 자신을 소개하는 한 마디로 "저의 장점은 '땀'입니다"를 택했다. 그 동안 지한씨가 흘린 땀은 한 발짝, 한 발짝 그를 꿈으로 이끌었다.

고1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지한씨는 3년 내내 학교와 연습실을 성실히 오갔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지한씨의 또 다른 연습실이었다. 지하주차장도 마다하지 않던 아들을 위해 엄마·아빠는 번갈아 가며 카메라맨을 자처했다. 지한씨의 땀과 꿈은 '지하주차장 직캠'에 오롯이 담겼다.

대학 입시를 앞둔 어느 날, 지한씨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그는 "엄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배우인 것 같아. 이병헌님처럼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예술고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지한씨는 남들보다 더 힘을 쏟아야 했다. 엄마는 아들의 평소 모습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한씨의 땀은 점점 결실을 맺고 있었다. 동국대 연극학부에 합격한 그는 올해 한 달 간 오디션을 거쳐 연예 기획사에 합격했다. 남궁민·연정훈 등 유명 배우들이 속한 기획사였다. 지한씨는 곧장 MBC 드라마 <꼭두의 계절>에 캐스팅됐고 주인공의 옛 연인 역할을 맡아 한창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촬영 일정이 새벽까지 이어져도 몸 관리를 위해 음식 조절과 운동을 항상 달고 살아야했다. 하지만 지한씨의 입에선 "행복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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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던 조미은씨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권우성

 
"참사 전날에도 경주로 촬영을 다녀왔어요. 새벽 3시에 집에 들어와서도 제게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가 '힘든데 어서 자'라고 말려도 아들은 그저 '행복하다'고 했어요. '엄마, 나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촬영 때문에 왕복 11시간을 오갔지만 아들은 이 말뿐이었어요. 촬영 때문에 그날도 아무것도 못 먹어놓고..."

모처럼 쉬는 날이었던 10월 29일, 아들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준비했다. 신발장 앞에 선 아들이 "엄마, 신발이 자꾸 벗겨져"라고 말했다.

"너무 털털해서 좋은 옷, 좋은 신발에 관심이 없었어요. 신발장을 보니 인터넷에서 싸게 파는 구두 한 켤레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지한아, 오늘 갔다 와서 당장 신발부터 사자.' 근데 신발을 못 샀네요. 같이 신발 사러 가기로 했는데 그걸 못했네요."

자정을 막 넘긴 시각, 지한씨 아빠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병원이었다. "응급실입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아들이 맞는지, 동명이인이 아닌지 연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목격자가 있었어요. (오후) 11시에 도로에 지한이가 누워 있었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CPR(심폐소생술)을 안 했다고 해요. 근데 왜 지한이는 11시 52분에야 소방차를 탔을까요. 왜 52분이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어야 했을까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누워있는 아들을 마주했다. 손을 잡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인공호흡을 하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는 아들의 입에 힘찬 숨을 불어넣었다.

"뻥 뚫린 관으로 내 숨이 통과하는 느낌이었어요. 내 숨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때 어렴풋이 느꼈죠. '아, 정말 숨을 거둔 건가.' 하얗고 뽀얀 얼굴은 상처 하나 없이 평화로웠어요. 천사처럼 누워 죽은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선명히 아름다웠어요."

49재 그날, 환히 웃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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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입구에 마련된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앞에서 극우보수단체의 혐오 발언을 들은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12월 19일 엄마는 분향소가 마련된 녹사평역 인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극우단체의 막말과 2차 가해를 참고 또 참아왔지만 지한씨를 향한 모욕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확성기 소리가 아무리 커도, 거기에 대고 어떤 말을 해도 다 참았어요. 근데 '시체팔이 탈렌트 XX 엄마'란 말에 정말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그런데 우리 유족들에게 그들을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는 걸까요. 말로는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하면서 왜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는 걸까요.

집회신고를 해놨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다? 전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우리를 모욕하겠다고 집회신고를 해놓은 게 아니잖아요. 2차 가해도 마음이 아프지만 책임 있게 나서는 사람 한 명이 없다는 게 저희를 더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아요."


직전 예고도 없이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1분도 안 돼 자리를 떴다. 유족들이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자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며 분향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 총리는 되레 극우단체 인사들이 거수경례를 하자 그들과 악수를 나누며 "분향 좀 하려고 했더니 못하게 하시네요"라고 토로했다.

엄마는 희생자들의 49재 날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을 찾아 환히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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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지한 어머니 조미은씨의 호소 "대통령께 부탁하고 싶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순리대로 유족들을 돌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고, 무엇이 필요할지 찾아봐 주세요." ⓒ 권우성

 
"대통령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 2차 가해가 사라질까요? 제가 '2찍'이에요. 그 말이 뭔지도 몰랐는데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잘할 거로 생각해서 찍었는데 내가 찍은 대통령 임기 중 내 아들이 죽어 못 돌아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국민 숨소리까지 듣겠다고 했잖아요. 159명으론 부족한가요. 얼마나 더 죽어야 숨소리가 들리는 건가요.

대통령만 제대로 행동한다면 진상규명은 시간문제일 거예요. 책임자 처벌도 당연히 제대로 이뤄지겠죠. 2차 가해도 사라질 거고요. 대통령이 49재 날 그렇게 환히 웃고 있는데 밑에 사람 어느 누가 잘못을 인정하겠어요. 어느 누가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 거로 예측하겠어요. 어느 누가 제대로 처벌이 이뤄질 거로 생각하겠어요. 어느 누가 2차 가해가 사라질 거로 판단하겠어요. 대통령께 부탁하고 싶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순리대로 유족들을 돌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고, 무엇이 필요할지 찾아봐 주세요."


마지막 육성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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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지한씨의 어릴적 사진과 발도장. ⓒ 권우성

 
1998년 8월 3일. 엄마는 지한씨를 처음 품에 안은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엄마가 차곡차곡 채워왔던 육아 앨범엔 아들의 태어날 즈음 발 도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육아 앨범 첫 장, 생후 이틀 후 엄마가 쓴 일기엔 "건강하고 정의롭게 자라 줬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98년 범띠 해에 태어난 4kg의 건강한 사내 아이. 바로 이 아이가 조미은과 이종철의 아들인 것이다.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 아들. 아들의 첫 모습은 뭐라고 할까... 너무나 크고 오똑한 코에 우리는 모두 너에게 반해 버렸단다. 건강하고 정의롭게 자라 줬으면 좋겠다. - 1998년 8월 5일"

엄마는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눈물과 옅은 웃음을 함께 내보였다. 사진 속 지한씨는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건 2000년이네요. 세 살 때 찍은 거예요. 저 지한이 어릴 때 빠진 이도 갖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이 아이를 잊겠어요. 너무 착해서 이런 애는 20명도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뱃속에서도 얼마나 얌전한지 살아있나 만져볼 때가 많았다니까요."

"이건 유치원 때. 그때도 귀엽게 생겼네요. 아, 그리고 이 사진은요. 지한이 어렸을 때 저희가 형편이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사진 속 이 옷을 3년 입혔어요. 팔 걷어진 거 보이시죠? 처음에 많이 걷었다가 조금씩 내리고, 내리고 해서...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이에요. 지한이 정말 즐거워하죠? 키도 이렇게 커요. 태어날 때도 의사 선생님이 '53cm네요. 오늘 태어난 아기 중 제일 크네요'라고 그러더라고요. 진짜 기뻤어요. 10월 2일 이렇게 가족여행에서 너무 해맑고 즐거웠는데. 10월 29일 떠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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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이 어렸을 때 저희가 형편이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사진 속 이 옷을 3년 입혔어요. 팔 걷어진 거 보이시죠? 처음에 많이 걷었다가 조금씩 내리고, 내리고 해서...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 이지한 어머니 조미은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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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한 행복한 가족여행 사진. ⓒ 권우성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지한씨 앞에 섰다. 전날 꿈에 나온 아들은 한 달 전 꿈에서와 달리 밝은 얼굴이었다.

"11월 28일 새벽에 힘없는 얼굴로 저를 찾아왔어요. 제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더니 '엄마 사랑해' 하면서 제 볼에 뽀뽀를 하고 눈을 감더라고요. 어제 12월 28일엔 좀 달랐어요. 되게 좋은 얼굴로 나타났어요. 제가 49재 전까지 매일 밥상을 차렸거든요. 꿈에서 지한이가 그 밥상에 턱 앉더니 '어디 한 번 먹어볼까' 그러는 거예요. 걔가 끝까지 그렇게 엄마를 감동하게 하네요."

지한씨가 즐겨 먹던 샌드위치와 식혜가 그의 봉안함 앞에 놓였다. 엄마는 유리 막에 얼굴을 비비며 "지한아 사랑해"라고 연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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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팠지. 많이 먹어" 샌드위치와 식혜를 준비해온 부모님. ⓒ 권우성


엄마의 휴대폰에 담겨 있는 아들의 마지막 육성 또한 "엄마 사랑해"였다. 평소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 '별 보러 가자(적재)'를 불러 생일선물로 안겼던 지한씨. 노래를 마친 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엄마는 별이 돼버린 아들을 떠올리며 그 노래를 좋아했던 것조차 미안할 뿐이다. 

"지한아. 엄마가 방에 들어가면 손을 꼭 잡고 '내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라고 말해주던 따뜻한 우리 지한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듣고 기억했다가 나중에 다 해주고, 내가 고민이 있으면 다 해결해준다고 했던 우리 지한이. 지한아, 나뿐만 아니라 아빠도 누나도 모두 정말 너를 사랑했다. 항상 맑고 밝고 긍정적이었던 지한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생각했어. 하늘나라에선 못 가본 데 다 가보고 이제 살찔 걱정하지 말고 그 동안 못 먹었던 거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다. 조금 더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좋았을 텐데... 고마웠다 지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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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이 아빠와 엄마가 아들을 만나고 있다. ⓒ 권우성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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