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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성-포용성 잃은 방송 3사 '연기대상'의 한계

[TV 리뷰] 지상파 3사 연기대상 시상식

23.01.01 12:42최종업데이트23.01.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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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거행된 2022 MBC 연기대상 시상식의 한 장면. 이종석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 MBC


2022년 지상파 방송 3사를 빛낸 연기대상의 주인공들이 모두 가려졌다. 지난달 30일 열린 '2022 MBC 연기대상'에서는 <빅 마우스>의 이종석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31일 열린 '2022 SBS 연기대상'에서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김남길이, KBS 연기대상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주상욱과 <법대로 사랑하라>의 이승기가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종석은 2016년 < W >로 첫 대상을 차지한 데 이어 MBC에서만 두 번째 수상이다. <빅마우스>는 대상, 올해의 드라마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임윤아), 베스트 커플상까지 3관왕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종석-임윤아의 열연이 빛난 <빅마우스>는 천재 사기꾼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최고 시청률 13.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올해 MBC 미니시리즈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유력한 대상 후보로 예상된 바 있다.
 
이종석은 "제가 6년 전, 20대 때 연기대상을 처음 받을 때는 이 상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 30대가 되어 오랜 만에 복귀작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렸는데 너무 많이 사랑해 주고 큰 상까지 주셔서 책임감과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종석은 "군복무를 마치고 많은 고민과 두려움, 괴로움이 있었는데 항상 인간적인 좋은 방향성과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분이 있다. '그 분'께 이 자리를 빌려 '항상 그렇게 멋져줘서 고맙고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전하고 싶다"며 의미심장한 언급을 하면서 "그 분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 걸,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여 감사를 전했다.
 
김남길은 2019년 <열혈사제>에 이어 SBS에서 3년 만에 두 번째 대상을 수상했다. 연초에 방영되어 주목도에서 불리하다는 핸디캡을 딛고, 하반기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을 제쳤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를 쫓는 대한민국 최초 프로파일러의 탄생이야기를 다루며,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연과 섬세한 전개로 완성도에서 호평을 받았다.
 
김남길은 개인적인 수상의 기쁨보다도, 드라마에 기여했지만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소외된 이들의 공로를 언급하는 품격있는 소감을 했다. 김남길은 "이 작품은 어려운 소재였고 대중적인 부분들이 부족해서 망설였는데 잊지 않고 사랑해 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전하면서 "흉악범을 연기해 주신 배우분들 덕분에 이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 배역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셨다. 그분들을 보면서 연기는 유명세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고 늘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김남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프로파일러 여러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낮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동료와 주변인들을 먼저 챙기는 김남길의 품격 있는 소감은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달 31일 거행된 2022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 SBS


KBS는 유일하게 공동 대상을 선택했다. 주상욱은 5년 만에 부활한 KBS 정통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주인공 이방원 역을 열연하며 생애 첫 대상의 기쁨을 누렸다. 아내인 배우 차예련도 이날 <황금마차>로 일일드라마 우수상 여자 부문을 수상하며 부부가 함께 서로를 축하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됐다.
 
주상욱은 KBS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무게감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25년 전 KBS 청소년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연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KBS 대하사극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역할을 맡을 기회가 올까라고 생각했다. 대하사극이 주는 무게감을 혼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럴 때 항상 옆에서 도와준 선후배 동료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수 있었다"며 영광을 돌렸다.
 
또한 주상욱은 가족들에게 하나하나 감사를 전하며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항상 건강해줘서 고맙고 너무 사랑해"라고 마음을 전하여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내 차예련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한 시상식이다. 항상 언제나 제 편이고, 언제나 '우리 오빠가 최고'라고 옆에서 응원해주는 차예련 씨, 세상에서 하나뿐인 마누라 사랑해"라고 고백하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고 차예련은 남편의 말에 많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자아냈다.
 
최근 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이슈가 되었던 이승기는 시상식에 파격적인 삭발을 하고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승기는 앞서 베스트커플상 수상을 위하여 시상대에 오르며 "머리를 짧게 깎은 것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나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가 아닌가라고 추측하시는 분이 많았는데 전혀 아니다. 영화에서 주지 스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소 많은 분이 들어오는데 짠한 눈빛을 보내주시는데 그런 눈빛 안 보내주셔도 된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해명했다. 2023년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이승기는 "활동 계획도 있고 다툼 계획도 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승기는 대상을 수상한 이후 진지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올 한해가 아마도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해였던 것 같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시듯이 제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이런 축제에 와서 마냥 웃고 있자니 마음에 걸리고, 무표정으로 앉아 있자니 그것도 도리가 아닌듯해서 연기대상 참석과 불참을 두고 수백 번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한 사람 때문에 작품에 영혼을 갈아 넣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외면당하지 않게 하려고 참석했다"고 어려운 결심을 했던 이유를 고백했다.
 
또한 이승기는 "한국 콘텐츠가 현재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 10년, 20년 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후배분에게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싸워서 얻어야 하는 이런 일은 물려주면 안 된다고 오늘 또 다짐한다"라며 또다시 우회적으로 소속사와의 분쟁 문제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이승기는 "많은 분이 응원해주셔서 제가 큰 힘이 됐다. 앞으로도 저는 꾸준히 배우 생활 열심히 하겠다. '법대로 사랑하라' 팀에 한도 없이 회식 한 번 시원하게 쏘겠다"라고 유쾌하게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이승기는 연예계의 대표 멀티엔터테이너답게 2011년 KBS 연예대상(1박2일), 2018년 SBS 연예대상(집사부일체)에 이어 방송사상 최초로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방송 3사 연기대상 시상식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한편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도 남겼다. 지난해 <오징어게임> 열풍에 이어 올해도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화제성과 완성도를 모두 잡은 대표작들은 모두 지상파가 아닌 다른 채널에서 나왔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성민-송중기 등은 지상파 방송사라면 무조건 유력한 대상 후보였을 것이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내수용'에 가까운 일일드라마와 주말극을 제외하면, 큰 히트작을 배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빅마우스> <태종 이방원> 등이 나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출연자들의 스타파워, 대하사극 전작들의 명성을 감안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천원짜리 변호사> 등 시청률 자체는 준수했어도 마무리나 완성도에서 잡음이 있었던 작품들도 많았다. 현재 K드라마는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있지만, 정작 그 '대표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젊은 스타들 위주의 나눠주기식 시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올해 대상수상자인 이종석, 주상욱, 이승기 등이 과연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견이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남는다.

특히 공동수상이 유독 남발되었던 KBS는 가장 중요한 대상까지도 공동수상을 주는 촌극을 벌였는데, 수상의 기준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주상욱의 경우 KBS가 간판으로 밀어주는 대하사극의 주인공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유동근,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 김명민, 이덕화 등 역대 대하극 수상자들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크게 떨어지는게 사실이고, 이승기는 사실 <법대로 사랑하라>의 시청률이나 연기력면을 다졌을 때 대상까지 수상한 것은 다소 뜬금없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올해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방송사 연기시상식의 공통점은, 수상후보들의 연령대는 젊어지는 반면, 50대-60대 이상 중장년 배우들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드물게 <커튼콜>의 고두심, <태종 이방원>의 김영철 같이 그나마 몇안되는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중견 배우들도 있었지만,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도 수상에 실패하거나 아예 시상식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는 노련한 중장년 배우들을 활용할 만한 캐릭터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구조적인 현실과도 관련되어 있다. 윤여정같은 원로 배우들이 <미나리> <파친코> 같은 걸작을 통하여 60-70대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안타까운 장면이다. 결국 인지도 높은 주연급 배우들끼리만 주요 시상을 나눠먹는 포용성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세대의 베테랑 연기자 고수들이 고르게 아우러지면서 함께 경쟁하고 발전해야 시상식의 권위와 품격도 높아진다.

3사의 시상식 자체만 놓고보면 SBS의 판정승에 가까웠다. SBS도 지난해 <펜트하우스> 시리즈 같은 빅히트작은 없었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자들> <천원짜리 변호사> <소방서옆 경찰서> <왜 오수재인가>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준수한 작품들을 꾸준히 배출해내며 나름 흥미진진한 경쟁구도가 연출됐다. 신동엽의 안정된 진행을 바탕으로 곳곳에서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연출과 이벤트, 장기하와 메이트리의 축하공연들이 빛났다.
 
특히 초대 가수 박진영과 라이징스타들(김현진, 려운, 이진혁, 한수아)가 함께 콜라보로 꾸민 흥겨운 축하무대는 단연 올해 방송 3사 특별무대를 통틀어 최고였다는 극찬을 받을 만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시상식에 참여하며 함께 즐기고 격려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이날 SBS 연기대상은 최고 시청률 8.2%, 2049 시청률 3.3% (닐슨코리아, 2부 기준) 기록, 동시간대 2049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연기대상 시상식의 체면을 살렸다.
연기대상 주상욱 김남길 이승기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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