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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캐롯 사태, KBL이 나서야 한다

[주장] 모기업의 경영 악화, KBL과 농구계 입장 내놔야

23.01.07 13:02최종업데이트23.01.0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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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당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프로농구 신생팀 고양 캐롯 점퍼스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선수단이 모기업의 경영 악화로 인해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주요 언론들은 지난 6일 캐롯 구단의 급여 지연 사태를 보도했다. 캐롯 구단은 원래 매달 5일 선수단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이번 달은 선수단에 양해를 구하고 13일에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 선수들 외에도 사무국 직원이나, 지원 스태프들의 급여도 연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캐롯의 운영주체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법인 데이원스포츠다. 2021-22시즌 고양 오리온을 인수한 데이원스포츠는 KBL에 가입하며 캐롯손해보험을 네이밍스폰서로 유치하며 고양 캐롯 점퍼스를 출범했다.
 
캐롯은 농구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허재를 스포츠 총괄 대표이사로, 안양 KGC의 우승을 이끈 김승기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국가대표 슈터 전성현을 영입하는 등 화려한 이름값으로 시선을 모았다. 캐롯 선수단은 방송계에서 유명세를 탄 허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한 예능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였다.
 
하지만 캐롯 구단은 출발부터 불안했다. 데이원은 이미 인수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많았고, 그 핵심은 구단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불신이었다. 실제로 지난 6월 KBL에서 진행한 신규 회원사 가입 심사에서는 자료 부실을 이유로 회원 가입이 보류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자금 운영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재정의 연속성과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데이원스포츠의 모기업인 대우해양조선건설의 지불 보증이 이뤄지고 나서야, KBL의 승인을 받을수 있었다.
 
또한 데이원은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서는 KBL 가입급 15억원 중 우선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5억원을 내지 못해 우려를 낳았다. KBL은 이에 캐롯의 정규시즌 출전을 불허할수 있다며 경고했고, 데이원은 개막 직전에야 뒤늦게 1차 가입금을 납입하면서 간신히 시즌에 정상적으로 참여할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원의 운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결과적으로 첫 시즌의 절반밖에 안 지난 시점에 벌써 온갖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데이원의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부터가 현재 임직원 임금 체불과 하도급금 지연 등 자금난에 빠진 상태다. 최근에는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대한컬링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 이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캐롯의 실질적 운영 주체인 만큼, 농구단에 불똥이 튈 거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애초부터 농구단을 인수하고 운영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데이원은 아직 KBL에 납부해야 할 가입비 잔여 10억원을 완납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울러 오리온에 구단 인수 대금 조차 납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농구단의 스폰서인 캐롯손해보험도 적자 누적으로 인하여 스포츠단 후원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농구단이 운영난에 빠져 급여 연체가 장기화되고, KBL 가입비와 구단 인수대금까지 모두 납부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면, 결국 KBL 차원에서 나서서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할 수밖에 없다. KBL 측은 우선 캐롯의 상황을 잘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리그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조치에 대하여 아직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정한 상황은 농구단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즌 초반 선두권을 달리며 신생팀 돌풍을 일으켰던 캐롯은 현재 5할승률이 무너지며 공동 5위로 중위권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역대급 시즌을 보내며 MVP 후보로 부상한 간판슈터 전성현의 고군분투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구단이 자금난으로 위기에 봉착한 사례는 2001-2002시즌 여수 코리아텐더(현 수원 KT) 이후로 약 20년 만이다. 당시 코리아텐더는 모기업의 재정 상태 악화로 선수단에게 약 6개월 동안 월급을 지급하지 못했고, 구단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프로농구가 아직 자리잡지못한 초창기였고 코리아텐더가 지금의 KT에 인수된 이후로 한동안 비슷한 사태가 재현된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농구인기가 침체된 시기에도 안정적인 구단 운영과 급여-복지 등 충실한 계약이행은 외국인 선수와 에이전트들도 극찬할만큼 KBL의 높은 신뢰도를 상징하는 자랑거리였다. 캐롯의 파행은 프로농구의 시계를 20년전으로 돌리는 국제망신에 가깝다.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운영주체인 데이원과 대우조선해양건설에 있지만, KBL과 농구계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데이원은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여러 스포츠에 손을 뻗쳤다. 대표적으로 고양에서 농구단과 함께 프로축구단 창단도 추진했지만, 당시 고양시는 데이원스포츠의 자금 조달과 운용 계획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부적격 판정을 내린 바 있다. 고양시는 올시즌 신생팀 창단을 거쳐 뒤 내년 프로리그 참가를 목표로 했던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지만, 지금에 와서 데이원을 거부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같은 상황에서도 KBL의 판단은 달랐다. KBL은 이미 데이원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10개구단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하여, 데이원의 리스크를 적당히 봐주고 용인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KBL은 데이원이 신뢰할수 없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 일시적인 9개구단 체제와 리그 파행을 감수하고서라도 데이원의 리그 참여를 끝까지 불허했어야 했다.
 
또한 무책임한 행태는 이들만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25년 역사의 농구단을 검증도 안된 기업에게 팔아넘기고 폭탄을 떠넘긴 격이 된 전신 오리온 그룹도 이 사태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허재는 '농구계의 아이콘'이라는 자신의 위상을 바탕으로 캐롯 농구단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공식석상에서 허재는 항상 캐롯의 '구단주'로 소개되었고 각종 방송을 통하여 구단 홍보에 앞장섰지만, 실제로는 경영상태에는 전혀 무지하고 그저 농구단 마케팅을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역풍을 맞고 있다.

허재는 구단의 창단식 준비, 훈련 과정 등 자세한 팀의 면면을 방송을 통해 알리며 "시즌 후 평가해 달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정작 구단을 둘러싼 급여 연체 등 각종 논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KBL과 농구계는 이번 사태를 더 이상 소극적으로 방관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데이원의 KBL 가입자격을 박탈하고 9개구단 체제로 당분간 운영을 하거나, 새로운 인수기업을 찾을 때까지 KBL이 농구단을 위탁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모기업의 재정상태가 언제 호전될지 기약이 없는 데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신뢰를 잃어버린 데이원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KBL이 지금보다 더 깊은 수렁에 함께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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