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작품 질투는 나의 힘 등 5편의 시작 나무판자 위에 새겨져 있었다. 이게 다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상구
다시 연평리 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다 보면 해변이 나온다. 지도상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진 않지만 결코 작지 않다. 해변 입구에 보초를 서듯 커다란 퇴적암이 떡 버티고 섰다. 그 앞바다의 책섬과 삼형제 바위는 전에부터 자동차로도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드나들기 좋게 단단한 갯벌 위에 시멘트 블록을 놨다. 그게 성에 차지 않았는지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까지 놓았다. 꽤 긴 다리고 예산도 많이 들었을 텐데 그도 이름이 없었다.
해변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얼핏 본 안내판엔 '기형도'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뜨였다. '혹시 저게 그?' 했지만 안내판엔 별 다른 부연설명이 없었다. 백여 미터쯤 들어가자 수줍게 숨은 듯 자그마한 쉼터가 하나가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거긴 시인 기형도를 기리는 공간이었다. 그는 1960년 연평도에서 황해도 실향민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일찍이 가족과 함께 광명으로 이주했지만 그는 분명 인천 사람이었던 거다.
인천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 자신했던 나도 그걸 몰랐다. 거기 가서야 알았다. 그러고 읽으니 그의 시들이 새삼 달라 보였다. 특히 대표작 '안개'가 그랬다. 그는 도시 샛강에 끼는 안개를 '거대한 강', '홀로 갇혀 있음을 알고 경악하는',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등으로 묘사했다. 도시에선 그런 육중한 안개가 흔치 않다. 혹시 그는 유년 시절 연평 앞바다에서 본 장엄한 해무를 그 도시의 안개에 오버랩 한 건 아니었을까.
인천 사람으로 그를 독점하고픈 욕망의 고백이겠지만 출생지가 분명하니 이제라도 그를 제대로 추모하면 어떨까 싶다. 일단 그 이름 없는 해변과 다리부터 기형도 해변, 기형도 다리라 부르자. 돈 드는 일도 아니다. 그가 태어난 춘삼월에 그 해변에서 기형도 시 축제도 벌여보자. 그의 시를 함께 낭독하고 거기에 음을 붙여 노래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대로 시 배틀도 붙는 거다. 해보자. 물론 지금의 추모공간은 네댓 배 쯤 더 키울 필요는 있다. 지금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연평사람들의 60% 이상은 기형도와 같은 운명의 실향민이다. 그네들은 이 섬이 황해도 땅이었을 때 건너왔다 눌러 앉아야 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먼저 이승을 떠난 이들에게 각별하다. 고향 땅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러지 않아도 섬사람들은 뭍보다 조상을 훨씬 더 극진히 모신다. 그들의 영이 바다에 깃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섬 곳곳에 세워진 사당과 탑과 비는 그 간절한 추모의 심정을 상징한다.
가장 현명한 추모의 방식은 그를 기억하고 그 이름을 오래도록 불러주는 것이라 한다. 멕시코에서는 이승에서 누군가 그를 더 이상 불러주지 않을 때 비로소 저승으로 간다고 믿는다지 않던가. 시인 기형도는 그 짧은 생애만큼 강렬한 시를 남겼다. 그의 언어는 영원히 기릴만한 불멸의 유물이다. 바라건 데 이 비루한 한 여행객의 바람이리도 그냥 스쳐듣지 않기를, 그래서 내년이고 언제고 그의 고향 앞바다에서 그의 시가 울려 퍼지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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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자부했지만, 이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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