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2 05:10최종 업데이트 23.01.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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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하면 연예인 중에 누가 떠오르는가. 성별과 세대에 따라 각자 다양한 사람을 꼽을 것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와 리서치회사의 조사 결과로는 걸그룹 출신 가수 겸 배우인 수지(본명 배수지)가 모두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수지는 10대 시절인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뒤 청순한 이미지로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물론 대중들의 이런 반응에 동의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갖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자유다. 더 나아가 그런 반감을 외부로 드러낼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호감 연예인을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한다면?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 연예인이 감내해야 할 영역, 법이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수지 모욕 댓글 사건'이 그런 고민을 담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수지 ⓒ 이정민

    
수지 모욕 댓글 사건, 법정에 서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수지 관련 기사 밑에 A씨가 댓글을 달면서다. A씨는 2차례에 걸쳐 댓글란에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수지를 왜 ○○한테 붙임? 제왑 언플('JYP 언론플레이'의 의미: 기자주) 징하네"


다소 거북하고 민망한 표현이다. 사실 연예인을 향한 이 정도 수위의 댓글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정당화할 수는 없다. 더욱이 당사자가 처벌을 원한다고 나선 이상 법적인 판단을 피할 수는 없다. 수지는 A씨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여기서 쟁점은 이 댓글이 ① 정당한 표현의 자유 내에 있는지 ② 불쾌하거나 부적절하지만 처벌할 정도는 아닌지 ③ 모욕죄로 처벌해야 할 수준인지다. 일단, 검찰은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재판에 넘겼다. 법원의 판결은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달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떤 평결을 내리겠는가.

[1심 유죄] "'거품', '퇴물', '폭망'은 모욕적 언사"

댓글 중에서 문제가 된 표현은 ① 거품 ② 영화 폭망 ③ 퇴물 ④ 국민호텔녀 등이다. 법정에 선 A씨는 자신의 댓글이 "연예기획사의 상업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자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표현"으로서 "허용 수위를 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심(서울북부지법)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1심은 ①~④ 표현 모두 유죄로 판결했다. 댓글의 표현이 "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모욕적 언사"라면서 "고소인이 연예인인 점, 인터넷 댓글이라는 범행수단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인격 침해까지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A씨는 이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2심 무죄] "다소 과한 표현이나 '표현의 자유' 영역"

항소심은 상반된 결론을 내린다. ①~④ 표현 모두 무죄. 2심은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 쪽에 무게를 두었다. A씨의 표현이 다소 과한 측면이 있으나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다. 형법(제20조)에는 '정당행위' 조항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얼핏 보면 범죄처럼 여겨지는 행위도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컨대,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행위,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는 행위는 정당행위가 된다.

A씨의 댓글도 정당행위라고 2심은 판단했다. 2심은 "공적 인물이나 연예인의 명예나 사생활도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면서도 "연예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한 모욕죄 성부를 판단함에 있어, 비연예인에 대한 표현과 언제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차지하는 위상 △댓글이라는 매체의 특성 △연예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정도를 감안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심은 A씨의 댓글이 수지의 열애설을 비꼬거나 수지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생각 등을 "거칠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서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이라 하더라도 보다 절제되고 타인을 배려하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 권장된다"면서도 "이러한 윤리를 형벌이라는 최후수단을 통해 관철하려 할 때는 더욱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A씨 댓글의 횟수, 전체적인 의미와 맥락, 표현 방법 등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번엔 검사가 반발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간다.

[대법원 일부 유죄] "'호텔녀'는 성적 대상화...정당한 비판 아니다"

1심에선 연예인의 '인격권'이, 2심에선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가 강조되었다. 대법원은 이 두 가지를 저울대 양쪽에 올리고 무게를 달아봐야 한다고 보았다. 즉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비교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은 다소 거칠게 표현하였더라도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하나 "혐오 표현"이나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하는 것"이라면 모욕죄가 성립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① 거품 ② 영화 폭망 ③ 퇴물은 다소 거칠지만,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 범주에 들어갔다.

그러나 '국민여동생'을 비꼰 ④ 국민호텔녀는 차원이 달랐다. 대법원은 "A씨가 '호텔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앞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배치하고, '호텔'은 남자연예인과의 스캔들을 연상시키도록 사용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하는 것"이라면서 "모멸적인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고,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결론내렸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유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수지 모욕 댓글 사건 ⓒ 김용국

 
사건을 정리해보자. 연예인에게 '거품', '퇴물'이라고 말하는 건 부적절하지만 처벌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호텔녀'와 같은 성적대상화 혹은 혐오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댓글에 사용된 단어 하나하나를 구구절절 따져야 할까 싶지만 이게 판사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참고로, 이 재판은 7년이 넘게 진행돼 왔다.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법원의 판단에 수긍하는가. 그런데 법을 떠나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 무심코 단 악성 댓글이 누군가에겐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연예인 하나 본보기 삼아 공식적 이지메"

최진실, 설리, 구하라 등 유명 연예인들은 생전에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온라인에 무방비로 노출된 연예인들은 공적 인물이라는 이유로 성희롱, 조롱, 혐오, 비하 댓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야 연예인들도 민·형사상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몇 차례 이어지자 포털사이트는 연예, 스포츠 기사의 댓글창을 닫았다. 하지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터넷 카페, SNS에는 여전히 인신공격성 악성댓글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설리는 '마약', '노브라', '노출증', '관종' 같은 댓글과 싸워야 했다. 설리는 2019년 '악플의 밤'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악플로 상처받은 심경을 직접 토로했다. 설리는 악플을 단 네티즌을 고소했다가 "동갑내기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미안"해서 고소를 취하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그가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야 했는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한 20대 여성이 도대체 대중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최근 온라인에는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때문에 혐오 표현 공세를 받거나 조롱을 당하는 일이 잦다. 연예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찍이 고(故) 신해철은 이런 현상을 "연예인 하나 본보기로 삼아 한 놈을 죽여 광장에 매달 때 가학의 쾌감에 취한 채 떳떳한 공식적 이지메의 파티"(넥스트, 개한민국 가사)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악성 댓글은 표현의 자유라는 외피를 쓴 흉기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없는 말초적인 댓글을 달 권리가 인격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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