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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위험분석' 묵살한 경찰 간부 "집회 총력 대응" 주문

'증거인멸' 경찰 3명 공소장에 드러난 난맥상... 참사 발생 후엔 증거 삭제 급급

등록 2023.01.11 10:39수정 2023.0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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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서)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보관이 축제에 나가서 할 게 뭐가 있나. 이건 주체(주최)도 없고 그냥 크리스마스와 같은 거다. 누가 크리스마스 (같은) 때 정보관이 나가나. 그냥 자료만 올리고 집회에 나와야 된다.'

-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관 3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한 서울서부지검 공소장 중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3일 전인 2022년 10월 26일, 서울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는 인파 위험을 우려한 정보관 A 경사의 보고가 이뤄지고 있었다. A 경사는 2018년부터 용산서에서 일하며 특정 기념일에 인파가 몰리는 이태원을 수년 간 지켜봤고, 참사 2주 전 열린 '2022 이태원 지구촌축제' 땐 현장 정보관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지난 경험을 토대로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핼러윈 전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위험할 수 있고, 경찰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였다. 동시에 정보과장에게 "핼러윈데이에 이태원에 나가 현장에서 인파를 관리하고, 위험 상황 발생 시 경력을 요청하는 등 신속 대응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보고는 묵살됐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0일 공개한 서울서부지검 공소장에 따르면, A 경사로부터 보고받은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은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지 정보관이 축제에 나가서 할 게 뭐가 있느냐"며 보고를 묵살했다. 

게다가 참사 발생 4일 후인 11월 2일엔 A 경사가 작성한 보고 자료가 그의 컴퓨터에서 삭제됐다. 이날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용산서 정보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날이었다.  

특수본은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과 김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증거 인멸을 모의해 용산서 한 정보관에게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보고 두 간부를 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넘겼다. 파일을 삭제한 정보관에겐 공용전자기록등손상과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30일 기소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첫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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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가 일어 나기전 안전사고 발생을 예상한 보고서에 대해 삭제 지시 및 회유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이 2022년 11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증거인멸·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조사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인파 위험 조사해놓고 왜 '집회 대응'에만 집중?

공소장을 보면 경찰청과 서울청, 용산서는 10월 초부터 핼러윈 기간 이태원 지역의 안전관리 문제를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서버엔 지역의 특정 동향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경우 하급청 정보관이 정보를 수집·분석해 상급청에 보고하는 'SRI' 보고서들이 남아 있었다.


용산서 정보관은 10월 4일 경찰청 정보국 지시로 '가을축제행사 안전관리 실태 및 사고위험 요인' SRI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 다른 용산서 정보관도 10월 7일 '핼러윈 데이, 온오프 치안부담요인'이라는 제목의 SRI 보고서와 '할로윈, 경찰제복으로 파티 참석 등 불법위험 우려'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관할 31개 경찰서 정보과 보고를 취합한 서울청 정보부도 10월 14일경 '핼러윈 데이를 앞둔 분위기 및 부담요인' 보고서를 작성해 서울청장에 보고했다. 서울청장은 이에 10월 17일 열린 회의에서 산하 경찰서장들에게 "3년만의 거리두기 해제로 이태원, 홍대, 강남 등 중심으로 많은 인파 운집 예상된다"며 "해당 부서, 관서는 범죄 예방과 시민안전 위한 촘촘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이같은 지시가 있었음에도) 서울청 정보부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용산서 정보과는) 과장회의와 112종합상황실로부터 '핼러윈 업무추진 계획 수립' 취지의 연락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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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이태원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2022년 12월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앞 참사현장 입구 도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고 이지한 아버지)를 비롯해 참석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근본 문제로 비화될 소지 크고..."

경찰로 쏠리는 책임을 지자체나 축제 주최 측으로 돌리려 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박성민 전 정보부장이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경찰 정보관계자들에게 보낸 카카오톡 문자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0 사고 책임 관련 검토
- 경찰이 경력배치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으로 흐를 경우 -> 서울청 대비 미흡, 주말 대규모 집회 시위 대응으로 경력 부족 등 부각 ->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 크고, 앞으로 지역행사.축제 등에 더 많은 경력배치 문제로 연결돼 수익자 부담 원칙, 경찰 만능주의 극복에 악영향. 경찰에서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 발생
- 주최측, 자치단체 안전불감증으로 귀책될 경우 -> 그쪽 책임 강화로 이어져 경찰부담 완화
- 적극적인 수사 드라이브로 주최측, 자치단체 책임이 부각되도록 조치 필요
 
박 전 정보부장은 10월 31일에도 경찰 관계자들에게 "경찰은 안전확보의 1차 책임자가 아니다. 앞으로 경찰의 경비원화를 막는 좋은 논리니까 지역축제, 행사에 경찰이 안전유지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관행을 깨고, 범죄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험이 있을 때나 경찰이 압도적 강제력으로 장악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좋겠다"는 카카오톡 문자를 보냈다.

갑자기 사라진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분석.hwp'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정보과장은 당시 바로 아래 직위인 정보계장에게 '이태원 위험 분석 보고서를 썼던 A 경사에게 해당 보고서를 안 썼다고 하면 어떻겠냐, 컴퓨터를 다 지우는 게 어떻겠냐'는 회유성 말을 하게 했다.

이어 11월 2일 특수본이 압수수색을 위해 용산서 정보과 사무실에 들이닥치자, 박 전 정보부장과 김 전 정보과장이 A 경사 컴퓨터 자료 등을 인멸했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검찰은 박 전 정보부장이 '관련 증거를 삭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이해 못한 김 전 정보과장을 질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전 정보부장은 11월 1~2일 동안 31개 서울시 내 경찰서 정보과장들이 참여한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압수수색, 감찰, 언론취재 대비 규정에 안 맞는 문서 보관하는 일 없도록 보안관리 점검" 등의 지시를 공유했다. 그런데 김 전 정보과장이 경찰청 특별감찰반으로부터 자료 제출 요청을 받고 이를 문의하자 '지시를 했으면 그 의미 이해해야죠. 왜 이해 안하고 있어요'라며 삭제 취지로 다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11월 2일 경찰청 특수본이 용산서 정보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 후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용산서 정보관이 서울청 정보부장의 삭제 명령을 받은 용산서 정보과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A 경사 컴퓨터의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분석.hwp' 등의 파일을 삭제했다"며 이들에게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단독1부는 오는 2월 8일 이들 경찰관 3명의 증거인멸 사건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이태원 참사 #증거인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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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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