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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모래톱에 큰절 올리며 소원 비는 사람들

[현장] 낙동강 모래톱 걷기-모래 모시기 행사... "겨울철새 공존 위해 합천보 수문개방 연장돼야"

등록 2023.01.15 11:24수정 2023.01.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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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낙동강 생명평화 10배 절명상" 중 절을 하면서 합천보 수문개방 연장이라는 간절한 마음을 모으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명의 강 낙동강은 흘러야 한다!"
"합천보 수문개방 연장하라!"


아침부터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이 깔린 경북 고령 박석진교. 그 아래 낙동강 모래톱 위에서 50여 명이 힘차게 외쳤다. 지난 14일 낙동강네트워크가 주최한 '2023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행사에서다.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가 있다. 합천창녕보(이하 합천보) 개방으로 낙동강의 수위가 떨어져 훤히 드러난 모래톱이 다시 수장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시작된 합천보 개방은 그달 22일부터 완전개방됐다. 모습을 드러낸 모래톱 위로 독수리와 황새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찾아왔는데 이 아름다운 풍경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생겼다.

환경부는 오는 17일부터 다시 합천보 수문을 닫을 계획이다. 겨울철 마늘과 양파 등을 기르는 지역 농부들의 요구에 따라 양수장을 가동하기 위해선 강 수위를 올려야 하고, 그러려면 합천보 수문을 다시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낙동강의 취수장(수돗물 원수 취수)과 양수장(농업용수 취수)의 취수구(물을 빨아들이는 구멍)가 보에 물을 가득 채운 수위인 관리수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수문을 열어 수위가 떨어지면 이 취·양수장의 취수구가 물 밖으로 드러나면서 취수를 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당초 보를 가동할 때 수문을 열 경우를 대비해서 수위가 떨어지더라도 취·양수장을 가동할 수 있도록 그 취수구를 깊이 내려야 함에도 4대강사업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토부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수문만 열면 수위가 떨어져 양수장 가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농업용수가 많이 필요로 하는 늦봄부터 여름철에는 수문을 절대 열 수 없으며, 농한기인 겨울철에만 수문을 살짝 열어왔던 것이다다. 그런데 이 겨울에도 수문을 닫으라고 농민들이 요구하고 있다. 늦가을 파종하는 마늘과 양파가 1~2월에 싹을 틔우고 초봄엔 이들이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대야 해서다.

일각에선 이런 농업의 현실을 반영하더라도 당장 수문을 다시 닫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14일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마늘과 양파밭에도 물이 흠뻑 들어가 해갈이 충분히 됐으므로 수문을 이르게 닫을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환경부 역시 물 이용에 지장이 없으면 수문을 닫는 시점을 2월 2일로 미룬다는 계획을 세워둔 바 있다.

"생명의 질서 회복 위해 3월 초까지 수문개방 연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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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보 개방으로 훤히 드러난 모래톱 위로 비가 내리고, 모래톱 위를 지나던 고라니 세 마리가 물을 마신 뒤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옆으로 아이들이 걸어간다. ⓒ 이상범

 
그러나 낙동강네트워크 임희자 집행위원장은 "겨울철새이자 법정보호종인 독수리(천연기념물)와 황새(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와 기러기(멸종위기종) 같은 귀한 새들은 3월 초중순까지 이곳 낙동강에 머무른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3월 초까지는 수문개방을 연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경기 이천과 광주, 부산, 울산, 경주, 창원, 밀양, 창녕, 고령, 구미, 대구 등에서 온 50여 명이 모였다. 구미에선 신평성당과 원평성당 소속 성직자와 신도들도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 걷기를 시작으로 회천에 마련된 독수리식당(이날 비가 와서 독수리는 식당을 찾지 않았다)과 두물머리 합수부를 탐방한 뒤, 합천보 1km 직상류 이방면 장천리의 넓은 모래톱에 함께 모여 간절한 기원의 마음을 모았다.
       
이른바 '낙동강 생명평화 10배 절명상'이라고 모래톱 위에서 열 차례 절을 올렸다. 낙동강에 산적한 문제들 중 10가지 핵심 과제를 서원(誓願) 삼아 간절히 절을 올린 것이다.
 
낙동강 생명평화 10배 서원(誓願) 절명상

생명의 강 낙동강이 온전히 흐르기를 희망하며 일배(절을 올립니다)
낙동강 뭇 생명들의 평화를 희망하며 일배
낙동강에 되돌아온 모래톱이 영원하길 희망하며 일배
낙동강에 돌아온 귀한 새 황새와 호사비오리를 생각하며 일배
낙동강 모든 보의 수문이 활짝 열리기를 희망하며 일배
낙동강 주변 농민들이 물 걱정 없이 농사짓기를 희망하며 일배
영주댐이 철거되어 낙동강으로 맑은 물과 모래가 흘러들기를 염원하며 일배
낙동강 최상류 오염덩이공장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에서 사라지기를 희망하며 일배
낙동강이 고향인 물고기 흰수마자가 낙동강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일배
낙동강 700리 물길이 한 물길로 이어지게 낙동강의 모든 보들이 사라지기를 열망하며 일배
 
절을 마치고 함께 피켓을 들고 구호도 외치고 생명의 장단에 맞춰 강강수월래도 하면서 생명의 질서 회복을 간절히 기원했다. 부디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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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보를 개방하자 강 수위가 떨어지면서 현풍양수장의 취수구가 물 밖으로 드러났다. 저렇게 되면 양수장을 가동할 수가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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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기후위기비생행동 회원들이 모래톱 위에서 피케팅을 벌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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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을 걷고 있다. ⓒ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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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낙동강을 흘려야 한다, 합천보 수문개방 연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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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합천보 수문개방 연장의 염원을 담아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낙동강 현장을 기록하면서 낙동강 회생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낙동강 #수문개방 #합천보 수문개방 #모래톱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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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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