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 사건 합동진상규명 조사단 방해 장소 표지석. 빨갱이로 변장한 국군이 매복해서 국회의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장소에 세워졌다.
서부원
당시 지역의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단이 꾸려져 신원면 현장을 찾아가는 도중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빨치산의 공격이라고 단정했지만, 실은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우리 국군이 빨치산으로 변장해 저지른 소행이었음이 밝혀졌다.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기 위한 이승만 정부의 천인공노할 만행이 드러난 것이다.
"진실이 밝혀진 뒤 관련자들은 엄벌을 받았나요?"
아이들로선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데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어 난감했다. 당시 학살을 명령한 김종원 경남 계엄사령관과 실행한 오익경 제11연대장, 한동석 제3대대장 모두 무기에서 3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곧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 되레 승승장구했다. 결국 엄벌은커녕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셈이 됐다.
그중에도 김종원의 생애는 아이들 앞에서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다. 일제 관동군 장교 출신의 악질 친일파로, 해방 후 이승만의 충복이 되어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좌익 부역자라며 민간인을 일본도로 목을 내리쳐 죽인 장본인으로서, 온갖 만행에도 이승만 정부의 경찰 총수 자리까지 올랐다.
아이들의 일갈 '전국이 학살터였군요'
구절양장의 도로를 따라 지리산 자락을 한 시간 남짓 휘감아 오르면,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에 닿는다. 고장의 이름만 달리할 뿐 거창 사건과 같은 시기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가파른 비탈에 조성되었다는 것 말고는 거창 사건 추모공원과 형태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이곳의 희생자들도 태반이 10대 아이들이다. 묘비에 적힌 이름으로 보아 가족과 친척이 몰살당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도 마을을 한꺼번에 도륙 낸 무차별 학살이 자행됐다는 뜻이다. 이웃한 두 고장에서 학살된 이들의 위패를 한데 모아놓았다는 게 거창 사건 추모공원과 다른 점이다.
"6.25 전쟁 전후 이곳 지리산 자락을 비롯해 전국 곳곳이 거대한 민간인 학살터였던 거군요."
한 아이가 이번 답사 여행을 매조지듯 말했다. 소감을 말한 거지만, 가감 없는 사실이다. 현재 조사와 발굴이 이뤄졌거나 진행 중인 곳들만도 수십 곳이니, 그의 말마따나 전국이 학살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과 북의 군인들이 서로 보복하듯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증언과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까지 드러난 게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6.25 전쟁을 전황 위주로 다룬 역사 교과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쟁을 승패의 관점에서 보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죽음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는 깨달음을 공유했다. 6.25 전쟁을 좌우 이념이나 지배층의 시각에서 다루지 말고, 전란 속에 험한 삶을 산 민간인의 관점에서 기록되어야 한다는 한 아이의 지적에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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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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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장본인이 처벌 대신 '훈장' 받은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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