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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듯 살아온 연주씨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 "거기선 놀러만 다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야기] 경찰관을 꿈꿨던 스물한 살 유연주씨

등록 2023.01.25 19:46수정 2023.01.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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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씨.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은 '카타리나'였다. 연주씨 어머니는 "카타리나 성녀가 어떤 분이셨는지 찾아봤는데, '하느님의 중재를 하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라며 "우리 연주도 친구들의 불화를 중재하며 사이를 좋게 만드는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 유연주씨 가족 제공

 
월, 수, 목 오후 6시부터 학원 아르바이트.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토익 스터디. 9월 26일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2급 시험 접수.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연주(21)씨가 과제에 시험까지 살뜰히 챙기며 소화한 2022년 9월 스케줄 일부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주말에도 밤 11시, 12시까지 일하고 공부하고 들어왔어요. 길게 자야 6시간 자면서 학교생활도 하고, 동생들 과외해 주고, 아르바이트 두 탕씩 뛰며 정말 빡세게 살았어요."

연주씨 언니 유정(25)씨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겠다 다짐한 연주씨가 스스로 생활비를 책임졌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연주씨는 음식점, 카페, 학원, 예식장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토익학원에 등록하고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한 인터넷 강의료를 결제했다. 거기에 저축도 했다. 연주씨는 9월 다이어리에 '소비 : 50만 원, 저금 : 80만 원'이라 적었다.

언니가 보기에 연주씨는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 같은 하루를 살았다.

"매일 To do list를 적으면서 스스로를 계속 다그쳤어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해야 한다, 앞서나가야 한다' 이렇게요."
 

연주씨가 적은 스케줄표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2021년 3월 9일
- 워드 공부 ∨
- 자바 프로그램 강의 1/2 ∨
- 자기소개 열린 게시판 고치기 ∨
- 사회봉사 날짜 변경 가능한지 연락 (전화 함, 목요일로 변경) ∨
- 한일교류론 과제 1/2 ∨


다섯 가지 할 일에 모두 '완료(∨)' 표시를 한 연주씨는 스케줄표 코멘트 란에 "걸으면 뒤처지니 뛰자, 그리고 잠깐 쉬고 또 뛰자"라고 적었다. 2021년 3월 6일 코멘트 란에는 "넘어진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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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말고 한가지 목표에 매진하라’ ‘승리는 가장 끈기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넘어진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걸으면 뒤처지니 뛰자, 그리고 잠깐 쉬고 또 뛰자’ 유연주씨가 수첩에 남길 글. ⓒ 권우성

 
매일 뛰듯 달려온 연주씨는 다이어리를 구입하면 12월이 될 때까지 빼놓지 않고 작성했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쓴 연주씨의 다이어리, 그러나 2022년 10월부터는 비어있다.


"10월에 학교에서 'IT&미디어 콘텐츠 경진대회'가 있어서 후배들이랑 어플을 개발해서 출품했다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엄청 바빴어요. 다이어리 적을 시간도 없었나 보네요... 출품도 했고 중간고사 끝난 기념으로 대학교 친구들 네 명과 이태원에 갔는데 그 일이 일어난 거죠."

10월 내내 매달린 경진대회, 홀가분한 마음으로 찾았던 이태원. 2022년 10월 29일 그 밤, 연주씨는 세상을 떠났다. 연주씨 팀은 장려상을 받았지만, 상장은 연주씨 대신 가족들 손에 쥐어졌다. 
 
"치열하게만 살다가 그렇게 열심히 해서 일궈낼 미래, 보상은 하나도 못 받고 가버린 게 너무 아쉬워요. 스물한 살인데... 얘한테 낙이라고는 낮잠 자는 거, 푹 자는 거밖에 없었어요. 술도 마셔보고 재미있게 놀아보다 갔으면 덜 아쉬울 거 같은데, 연주가 술도 못 마셨거든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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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유연주씨의 노트를 보여주는 언니. ⓒ 권우성

 
학습지 한 장 밀려본 적 없는 '걱정할 것 없던' 내 딸

계획하면 실행했다. 어릴 적, 학습지 한 장 밀려본 적 없다고 했다. 13일, 서울 중구 신당동 인근에서 만난 유정씨와 엄마(51)는 연주씨에 대해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사 남매 중 둘째인 연주씨는 태어날 때 몸이 약했다고 한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돼 입원을 했고, 병치레도 잦았다. 그렇게 낳자마자 호되게 걱정을 시킨 둘째 딸은 이후로는 "걱정할 거 하나 없는 딸"이 됐다.

"우리 연주가요, 5살쯤이었을 거예요. 무슨 일로 저한테 많이 혼 난 날이었어요. 안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기에 울겠거니 했죠. 그런데 좀 이따 들어가 보니 방안이 정리가 돼있는 거예요. 아직 아기니까 제대로 치운 건 아니고 지저분한 걸 구석에 넣어놨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 기분 좋으라고 치운 거예요' 하는 거예요."

엄마는 마치 어제 일처럼 연주씨 이야기를 꺼냈다.

"아 참, 고등학교 때 성적 때문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선생님이 '걱정마세요, 연주는 대기만성이에요. 언젠가 될 아이에요' 이러시면서 연주가 엄청난 노력파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 우리 딸 대단한 아이였구나. 내가 갖지 못한 걸 갖고 있던 아이였구나...'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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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경찰' '경찰관 속으로' 경찰관이 꿈이 었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씨가 공부하던 책이다. ⓒ 권우성

 
노력파 연주씨의 꿈은 경찰관이었다. 꿈을 향해 가는 길 또한 구체적이었다. 사이버 수사 및 보안 쪽 경찰관이 되고 싶어했다. 이 쪽 분야는 경력 채용이 활발하다기에, 일단 사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경력 채용에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준비 시작하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몸 관리도 했어요. 헬스장 다닌 게 1년 됐나, 지방을 빼고 근력을 키우면서 몸무게도 3~4kg 빠졌죠. 연주가 그렇게 가고 노트북이랑 노트 등을 쭉 보는데, 하여튼 모든 걸 최선을 다했구나,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것도 진짜 진심이었구나 싶었어요."

'정의로운 내 동생'..."지금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답답할까요"
 

언니는 연주씨가 '정의로웠다'라고 표현했다.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했다"며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당시 일을 전했다.

연주씨와 세 살 차이 나는 막내가 불량한 형들로부터 '생일선물로 돈을 가지고 오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연주씨는 지인을 통해 그 형들에게 '똑같이 나한테 생일선물로 돈을 가져올 게 아니라면 내 동생한테 그런 요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다섯 명씩 무리 지어 다니는 얘들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한테 나쁘게 구니까, '너 나와, 일 대 일로 붙자' 그랬대요, 강단이 있어요"라며 일화를 보탰다.
 
"약한 사람 편에 서고 싶어 했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연주의 신념이었어요. 우리 연주가 하늘나라에서 이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도 그럴 것이, 언니가 마주해야 했던 "말이 안 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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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주씨 어머니와 언니가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10.29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권우성

 
이태원 사고 뉴스를 보자마자 가족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는데 연주씨 기숙사에서 전화가 왔다. "성모병원으로 가보라"고. 약수역 인근까지 도착하니 마침 출동한 경찰이 있었다. '제발 태워달라'고 했지만 '택시를 잡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경찰은 '112에 신고하라'고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택시의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한 손님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분이 동승을 허락해 주셔서 그나마 연주 청각이 살아있을 때 도착할 수 있었어요. 세상을 떠나도 3시간 까지는 청각이 살아있다잖아요. 그나마 인사 하고 보냈어요."

공권력이 아닌 낯선 시민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 당도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2022년 10월 30일 오전 12시 40분께 일이다.

딸이,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간호사는 재촉했다. "빨리 안치시켜야 한다"고 "어서 정리하라"고.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겨우 15분을 벌었다. 언니는 억지로 마지막 말을 뱉었다. 정리되지 않은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이었다.

"'잘가, 편히 쉬어...' 시간에 쫓기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말이라도 해줘야 연주가 편하게 갈 거 같았어요. 아빠는 연주한테 '연주야 갈래, 가고 싶으면 가... 하늘나라 가서는 알바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러만 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정의와 부정의... 안아보지도 못한 채 보낸 연주 

"연주야 일어나봐" 절규하는 가족들을 경찰이 제지했다. 연주씨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범죄 수사를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왜 내 자식 못 만지게 하냐고 소리를 질렀어야 했는데..." 엄마는 한탄했다.

"왜 부검을 해야 하냐고 물으니 '범죄 혐의점이 있을 수 있어서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게 사실인 줄 알고, 담당 검사님이 오실 때까지 3시간을 응급실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어요. 돌이켜 보면 이태원 참사를 범죄나 마약 같은 사건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언니)

"그 날 현장에 119만 출동하고 경찰은 왜 안 갔을까요. 마약 사건 수사해야 하니까, 경찰이 보이면 마약 하는 사람들이 다 숨어버리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 의심만 들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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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속 유연주씨의 모습. ⓒ 권우성

 
그렇게 가족들은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 연주씨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보냈다. "손발 한 번씩 만져본 게 다"라고 했다. 만약에, 연주씨가 그 날 이태원을 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 상황을 '경찰 지망생'으로 지켜봤더라면, 여전히 경찰을 희망했을까.

"더 하고 싶어 했을 거예요. 잘못된 걸 내가 바로잡아야지 그 마음으로요."(언니)
"온갖 문제들을 보며 힘을 더 키워서 윗선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요." (엄마)


생전 구매해서 마지막으로 보던 책이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었던 연주씨는 '정의'를 놓지 않았을 테지만, '부정의'를 목도한 셋째 딸은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못되게 살아야 해 착하게 살아야해?"라고. 
 
"159명 아이들, 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친구 찾으러 갔다가 못 돌아온 아이도 있고 정말 하나같이 다 착한 아이들인데... 아이에게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부정의'는 또 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향한 2차 가해다. 언니는 조근조근, 힘주어 말했다. 

"2차 가해하는 사람들 '죽은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만 좀 하라'고 말하잖아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의 말에 제가 분노할 필요는 못 느껴요. 다만 그런 말 들으면서 더 강해지는 거 같아요. 끝까지 가야겠다, 생각하게 돼요."

그 끝이란, 무엇일까. 
 
"제가 수학여행 가기 딱 일주일 전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어요. 수학여행 취소되고 친구들이랑 분향소 가서 분향한 기억이 생생한데 참사가 제 일이 돼버렸어요. 저는 2차 가해하는 사람들 한테 '동생이 왜 밥 먹고 나온 지 15분 만에 길바닥에서 숨도 못 쉬고 죽었는지, 몇 시 몇 분에 사망했는지, 사람들 맨 밑에 깔려 죽은 건지 그게 궁금한 거다' 말하고 싶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보상금이요? 그거 받아서 뭐 하겠어요. 하나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가족을 떠나보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음 정리가 되는지, 전 되물어보고 싶어요. 진상 규명이 돼야 우리 연주 완전히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정씨는 그날이 와야, 동생에게 진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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