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암 묘소 내암 정인홍의 묘소, 석물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세워진 것이다.
민영인
기왕 내친 걸음이라 400여 미터 떨어진 곳의 묘소도 찾았다. 인조반정(1623) 후 도성으로 끌려 올라가 8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수를 당하였다. 시신은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이 수습하여 상각사촌 선영에 매장했다고 한다. 현재의 묘소는 안내판에 의하면 고종 1년(1864년)에 이장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청람사 안내판에는 1924년 이장하였다고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홀로 부음정과 묘소를 둘러보고 나니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선생과 연락이 닿았다. 오전에 불가피한 약속이 있다 하여, 오후에 느긋이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해인사로 올라가 차 한 잔 하며 부음정에서 느낀 소회를 풀었다. 내암과는 달리 나는 누룩으로 빚은 술을 마시는 게 좋다고 하였다.
한 선생도 믿음이 있는 음주는 허물이 없다는 데 맞장구를 치며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부음정 편액 안쪽 면에는 '삼우정(三友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한 선생에게 물었더니 그도 모른다며 알아보겠다고 한다. 혹시 내암 선생과 우리 두 사람이 삼우가 아닐까요?라고 했다.
천화동인이나 화천대유처럼 아주 좋아 보이는 괘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부음정의 화수미제괘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未)는 종(終)이나 말(末)의 마침이나 끝남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의미가 되니 다행이다.
올 한 해 절제하고 조심하면서 마침내 기제(旣濟)가 되기를 바라며, 2023년 새해맞이 기행을 마무리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