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취업준비 장애인 위해 시작한 수업... 어느덧 교장이 됐습니다

충북 옥천 유일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최명호씨의 새해 소원

등록 2023.01.29 13:06수정 2023.01.29 13:10
3
원고료로 응원
2023년 새해를 맞아 <월간 옥이네>는 충북 옥천 사람들의 새해 다짐과 희망을 담습니다. 소박하게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부터 나이를 떠나 새로운 도전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 이야기, 장애인 교육권과 농촌 지역 돌봄, 열악한 교통환경 등 공동체의 문제를 풀고 싶다는 바람까지 오늘 '옥천'이라는 지역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기자말]
a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교장 최명호씨 ⓒ 월간 옥이네


저상버스 도입 등 '이동권' 문제로 대표 돼온 장애인 인권 문제. 하지만 이동권은 어디까지나 장애인 권리를 회복할 시작일 뿐 그것만이 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 활동에서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것이 이동권임을 상기한다면, 이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지워진 장애인의 권리는 얼마나 더 미궁 속에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선거일에 투표소를 찾아 투표할 권리,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치료받을 권리,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며 임금을 받을 권리, 가족 혹은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며 사회 활동에 참여할 권리...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수많은 권리들.

그러고 보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도 얼마나 가진 자만을 위한 말인지. 숱한 날을 길 위에서 투쟁해온 장애인의 권리는 여전히 1보 전진도 쉽지 않은 상황임을 돌아본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도리어 손가락질을 해대는 안하무인의 얼굴들을 견디며 삶을 일구는 이들이다. 옥천의 유일한 장애인 야학인 '해뜨는 학교' 교장 최명호(49)씨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과 교육의 권리를 가지며(교육기본법 3조),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같은 법 4조)'는 법조문을 흔들어 깨우며 지역사회에 장애인 교육권을 이야기한다.

장애인권 운동을 시작한 이후, 실은 매일이 도전이었을 그에게 새해를 맞는 소감을 들어봤다.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질 도전을 기대하면서.

단 한 사람에서 시작된, 그러나 모두를 위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가 문을 연 것은 2012년. 하지만 그 태동은 그보다 앞선 2011년, 일을 하고 싶지만 한글을 몰라 취업이 어려웠던 한 장애인과 최명호씨가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군청 담당부서를 방문했던 장애인 A씨를 담당 공무원이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 임경미)로 연계하면서 센터 활동가 최명호씨가 그의 한글 교육을 맡게 됐던 것.


그렇게 시작한 한글 공부는 주변 장애인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져 서너 명이 모이게 됐고 곧 해뜨는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노인장애인복지관에 한글 교육이 있긴 하지만 수업 개설 기준 인원이 10명인가 그랬나봐요. 근데 한글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수업이 열리질 않았고, 이 한 분을 위해 한글을 가르쳐 줄 기관도 없던 거죠. 그런 상황을 저희가 모른 척 할 수 있나요? 그 마음이 어떨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해뜨는 학교가 만들어졌죠." 

자립생활센터 사무실 한편에서 단 한 명을 위해 시작한 한글 공부는 점점 수요가 늘어 2014년 별도의 교육실을 만들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삼양초등학교 앞 오랫동안 비어있던 조그마한 상가를 무상으로 빌려 간판을 달고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 이후 현재 위치(이원새마을금고 옥천지점 3층)로 자리를 옮겨 운영 중이다. 
 
a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 월간 옥이네

 
한때 36명이 참여했던 해뜨는 학교는 코로나19를 지나며 22명의 학생이 출석하고 있다. 그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공부를 한다'는 기쁨은 15평 남짓의 교실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37.6%가 초등학교 이하(무학 9.2%)의 최종학력에 그친다는 사실(2020 장애인 실태조사)을 감안한다면, 해뜨는 학교가 지역 장애인들에게 선사한 '학교'의 경험은 더없이 소중했을 터.

"학교에 가는 것이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지만 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죠. 과거에도, 현재도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어렵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시 되던 때도 있었고요. 이제라도 해뜨는 학교를 통해 학교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점점 지워질 수밖에 없다. 시민 의식이 비교적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비장애인은 여전히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장애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통로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공간도 마땅치 않으니 말이다.

무수히 많은 장애 유형이 있고 그에 따른 특성이 모두 다름에도 비장애인은 이를 '장애'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 해석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편견은 고스란히 장애인의 몫이 된다. '비장애인 기준의 언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등이 그 대표 피해자들이다.

최명호씨는 바로 이 지점에서도 장애인 야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중심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야학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말 중에서도 추상적인 것들은 청각장애인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예컨대 '사랑' 같은 거요. 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어렵고요.

반대로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의 손짓, 몸짓을 오해하는 경우도 생기죠.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해교육도 진행했어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은 의심이 많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게 바로 그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거든요." 

등록 장애인 5천여 명, 장애인 평생교육기관은 1개
 
a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수업 모습 ⓒ 월간 옥이네

 
a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모습 ⓒ 월간 옥이네

 
교육 불평등은 사회 활동을 할 권리, 즐겁게 여가를 보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일할 권리마저도 앗아간다. 장애인의 저학력은 고용불안과 빈곤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라는 점에서도 결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착취나 성범죄 등 각종 장애인 대상 범죄 역시 이런 교육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 장애인의 교육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이기에 학령기 교육을 놓친 장애인의 평생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평생교육 참여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 2020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교육 참여 경험이 없다는 응답 비율이 무려 99.1%에 달한다. 장애인 100명 중 평생교육 참여 경험이 있는 이는 1명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이는 평생교육기관의 교육 과정 자체가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 내용과 운영 방식 등 교육 과정 전반을 장애인 맞춤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사회 활동과 교육 경험 측면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잖아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수행한다는 게 장애인에게는 무척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느려서 다른 수강생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진도를 빨리 나가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고요.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이 용기를 내서 나올 기반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평생교육으로 장애인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별도의 장애인평생교육기관이 필요하고, 기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애인 맞춤형 프로그램이 개설돼야 할 이유예요." 

해뜨는 학교는 문해교육을 비롯해 도예·요리·향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시간대에 2개의 프로그램을 번갈아 열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밤 시간대에 1개의 프로그램을 추가로 운영한다.

초창기엔 이런 활동이 센터 활동가들의 십시일반과 이웃들의 후원으로 근근이 이어졌지만 현재는 공적 지원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추게 됐다. 2015년 한국장애인재단의 평생교육 사업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는 충청북도교육청과 옥천군의 장애인 교육 사업비(2022년 기준 옥천군 2700만 원, 충북교육청 5500만원)를 지원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월세를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이웃의 선의에 기대 무상으로 교육공간을 써야 했던 때에 비하면 나아진 상황. 하지만 프로그램 운영비와 강사비를 비롯해 공간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 등을 따져보면 이 역시 아직 충분한 상황은 아니다.

장애인 평생교육의 열악함은 해뜨는 학교가 도내에서는 세 번째, 옥천에서는 유일한 장애인 평생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옥천 지역 5157명(2020년 등록 장애인 기준)의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최명호씨는 옥천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장애인 평생교육 문제를 들여다보길 주문한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중시해주길 바란다고. 20여 명의 장애인 학생이 참여하는 해뜨는 학교 역시 프로그램 사전 수요조사가 한 달여 걸릴 때가 있을 정도로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는 다양하다.

그러니 5천 명이 넘는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그 몇 배가 돼야할 게 당연할 터. 2021년부터 장애인 평생학습 도시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옥천군으로선 이런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장애유형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같은 문해교육이라도 청각장애인 대상이냐 발달장애인 대상이냐에 따라 달라져야 해요. 또 장애인들 중에도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많아요. 피아노나 오카리나 수업 같은 걸 원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배울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지요.

옥천군은 '두드림 지원 서비스(찾아가는 평생교육 서비스)'로 장애인 단체나 저희 기관에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건 해당 단체와 기관 상황에 맞춰 진행하다 보니 그 한계도 분명해요. 아무래도 장애 당사자의 다양한 욕구보다는 당장 단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에 만족해야 하니까요." 

"저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운영 구조 만들고 싶어요"
 
a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교과서 ⓒ 월간 옥이네

 
그나마 다행은 옥천군의 경우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는 것. 물론 이 역시 아무런 실천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장애인 평생학습 협의회를 별도 구성해 다양한 장애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고, 프로그램에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하는 등 수요자 중심의 평생교육 기반 조성을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더불어 면 지역 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설 역시 지역 행정이 풀어야 할 숙제.

"해뜨는 학교는 읍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읍 가까이 계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죠. 구읍이나 읍 외곽, 동이면에서도 오시고 멀게는 청산·청성면 쪽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에 못 오니 많이 아쉬워하시죠.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엔, 특히 저녁 시간대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오히려 제가 '안 오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유할 때도 있어요. 서글프죠, 장애인 교육을 위해 해뜨는 학교를 열었는데 오지 마시라고 얘기해야 하니..."

그런 서글픔을 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명호씨는 버스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어쩌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작은 버스라도 구할 수 있을 때 곧바로 운전대를 잡기 위해서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지만 이동할 수 없어 방 안에만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야학으로 향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버스도 오토(자동변속기)가 나와 한쪽 팔이 불편한 저도 수월하게 면허를 딸 수 있었다"며 빙그레 웃는 그는 새해 또 다른 꿈을 꾼다. 하나 뿐인 교실을 2~3개로 늘리고 상근 인력도 최소 1명을 확보해 운영의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공간을 옮겨볼까 싶어요. 지금은 교실이 하나뿐이라 현재 인원도 소화하기 어렵거든요. 교실이 늘어나면 학생들도 매일 나올 수 있겠죠. 원할 때 나와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거고요. 야학을 함께 운영할 상근자도 1명 충원하고 싶어요. 이건 옥천군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려고요. 공간과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운영될 예산도 마련해야죠.

어느 장애 당사자 부모님께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해뜨는 학교가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그만두면 지속될 상황이 아니거든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운영 구조 자체를 공공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가 야학 교장으로 오든 해뜨는 학교가 계속 될 수 있도록요. 새해는 그런 큰 그림을 그려가는 첫 단계로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 해뜨는 학교는 한글을 배우고 싶은 단 한 명의 장애인에게서 시작됐다. 그를 외면하지 않은 또 다른 장애인 활동가들의 노력과 함께 말이다.

새해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힘을 보태야 할 곳은 멀리 있지 않다. 단 한 명의 장애인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이들처럼, 그래서 행정과 정치가 외면한 교육권을 지역 장애인들에게 작게나마 선물한 것처럼.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가 외칠 꿈, 거기서 시작될 아름다운 변화를 이제는 우리도 함께 그려가야 하지 않을까. 

월간 옥이네 통권 67호 (2023년 1월호)
글·사진 박누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장애인야학 #옥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