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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두렵다'는 60대... 여든 넘은 할머니의 조언

[우리 마을 고민상담소] "66살이면 당당할 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큰물에서 도전을"

등록 2023.01.31 11:54수정 2023.03.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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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크고 작은 고민을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는 '우리 마을 고민 상담소'가 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마을회관에 문을 열었다. 자연마을 옥녀봉과 마리들, 새터를 잇는 마을회관에는 삼삼오오 모여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내 가족처럼 이웃 챙기는 인심 좋은 마을이라 입을 모은다.

이번 하동리 마을회관 고민 상담소 의뢰자는 옥천읍 금구리 종합상가에서 경희 뜨개방을 운영하는 이경희(66)씨다. 2대째 금구리 종합상가에서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경희씨는 어떤 고민으로 하동리 고민 상담소의 문을 두드렸을까? 또, 마을회관에 둘러앉은 마을 할머니들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는지. 월간 옥이네가 이들 사이를 오가며 고민과 해법을 나눠봤다.


우리 마을 고민 상담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복잡하게 생각했던 문제가 생각보다 간단히, 연륜의 힘을 얻어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뢰인 소개] 그 옛날 국밥집에서 이제는 뜨개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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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경희뜨개방 이경희씨 ⓒ 월간 옥이네

 
안녕하세요, 옥천읍 금구리 종합상가에서 경희 뜨개방을 운영하는 이경희(66)라고 합니다. 지금 이 자리는 어머니께서 국밥집을 운영하던 곳이었지요. 빈대떡이며 국밥, 막걸리 같은 것들을 팔았죠. 업종은 달라졌지만, 어쩌다 보니 같은 자리에서 2대째 장사를 하고 있네요. 어머니께서 장사를 정리하신 후에 제가 이 자리에 뜨개방을 열었죠. 한동안 운영하다 결혼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정리했는데, 친정 오빠 권유로 다시 돌아온 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엄마가 이 자리에서 국밥집을 하셨고, 저는 그 앞에 있던 이불 집 아들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으니 이곳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공간이지요. 학창 시절엔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부모님이 국밥집 하는 걸 숨기기도 하고, 형편이 썩 좋지 않아 서러운 일을 겪기도 했으니... 생각할수록 여러 감정이 묻어나는 공간입니다.

다시 뜨개방을 시작했을 땐, 좋아하는 걸 하게 되니 설레더라구요. 강사 자격증을 따러 서울까지 배우러 다녔으니, 열정만큼은 20대 그대로였지요. 

젊었을 적에 비하면 변한 것도 많아요. 예전에는요, 실을 사러 대전까지 다녔어요. 대전 중앙시장에 실 도매상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물건을 떼러 다녔죠. 그땐 지금처럼 실을 소분해서 팔지 않았어요. 커다란 타래에 필요한 만큼씩 손에 감아서 보따리째 무더기로 들여오곤 했죠. 그걸 들고 돌아올 땐 어찌나 무겁던지... 이젠 필요한 실을 주문하면 직접 가게까지 가져다주니 세상도 좋아졌다 싶어요. 


지금은요,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뜨개질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땐 대전까지 나가서 책을 사다가 배우거나 뜨개방에서 배우는 게 전부였는데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뜨개질 책은 이상하게 중고로 나오지를 않아요. 하긴 나 역시 그때 그 책들을 지금까지도 버리지 않고 보고 배우니, 세상은 변했고 유행도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내 곁에도 있다는 걸 깨닫죠.

뜨개질의 장점이라면 내 손으로 나만의 개성이 담긴 물품을 만든다는 것이겠지요? 모자며, 조끼며 옷도 전부 기성품인 요즘 세상에는 '나만의 것'이 거의 없잖아요. 하지만 직접 뜨면 애착도 가고 내 손길이 묻어있으니 간직하기에도 좋아요.

이곳에 오신 분들이 뭔가 하나씩 '내 것'을 만들고 돌아가시는 걸 볼 때 참 뿌듯해요. 저는 도안에서 무늬나 기호 보는 것부터 알려드려요. 그걸 배우면 어떤 것이든 책을 보고 뜰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 뜨개질의 기초부터 배워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한번 와보세요. 천천히 잘 가르쳐 드릴게요.

제 목표는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뜨개방을 운영하는 거지요. 제가 장사를 다시 시작한 지 3년쯤 됐던 때일 거예요. 그때 90세쯤 되신 할머님께서 뜨개방에 오셨는데 손도 빠르시고 이해력도 좋으시고 뜨개질을 저보다 더 잘하시는 거예요. 눈도 잘 안 보이셨을 텐데...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여쭤보니, 일제강점기 때부터 뜨개질을 계속하셨다고 그래요. 자기 옷도 해 입고, 또 해서 입히기도 하고. 그러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거죠. 나이가 들어도 손에 익은 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몸이 까먹질 않는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뜨개질을 하면서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민] 제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자식들도 날 기억해줄까요?

할머니 고민 상담소에 여쭙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어요. 돌아가신 엄마가 하시던 가게에 있어서 그런가, 오빠와 부모님 얘기를 자주 하게 되거든요. 엄마도 보고 싶고 아버지도 그립다는 그런 얘기들. 나이 먹으니 부모님과 관련한 것이 하나씩 다 달리 보여요.

한편으론 장사를 더 크게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는데 때때로 이런 생각이 스쳐 가니 어째 도전도 전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할머님들, 이런 저의 고민 어떻게 좀 해결 안 될까요?

[답변 1] "도전은 후회 없이!" 하동리 고민 해결사 오순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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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오순자씨 ⓒ 월간 옥이네

 
반가워요. 고민을 들어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 그때쯤 나도 인생이 잔잔해지고 때로는 우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 그려. 나이를 먹을수록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은 누구나 드는 것이니 일단 내가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을 버려요.

나는요,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우울할 땐 사람들을 만나서 실컷 놀아버려요. 회관에도 나와서 후련하게 수다도 떨고, 때때로 화투도 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지. 경희씨도 너무 조용하게 지내지만 말고 한바탕 떠들며 시간을 보내봐요. 또 단순하게 놀아 봐요. 그러고 보니 뜨개질을 하는 것도 참 좋은 직업이겠네. 뭔가를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그리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꼭 한번은 찾아가 봐요. 아마 경희씨도 그 사람들을 보고 오면 왠지 마음이 후련해지고 좋아질 거야. 그리웠던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면, 그게 다 근심이 되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 만나서 얼굴 들여다보고 손이라도 붙잡아주면 서로가 그 손길을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고 사는 거여요.

66살이면, 한참 뭘 해도 당당할 때여요. 나랏일도 할 나이니,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주춤하지 말고 나서봐요. 그러면 좋아. 은근한 마음이라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더 큰물에서 도전해봐요. 내가 경희씨를 많이 응원합니다.

*오순자씨는 1942년생으로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가 고향이다. 25세에 군서면 하동리로 시집와 터를 잡았다. 지금은 하우스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반장과 이장을 지내며 사람 좋다고 소문난 남편이다.

[답변2] "도전하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 하동리 고민해결사 김홍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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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김홍매씨 ⓒ 월간 옥이네

 
고민을 들어보니 공감이 많이 가네요. 나이가 60대 중반을 넘었으니, 그런 고민이 들 만도 하지요. 나도 그 나이부터 그런 고민을 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기분도 들쭉날쭉하고, 하루하루 건강을 잃을까 고민도 되고 그랬지. 어느 날엔 밥을 어거지로 밀어 넣기도 하고, 어느 날엔 누가 잘못됐다는 둥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난 그럴 때마다 자식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나는 딸 둘 아들이 둘, 자식이 넷이에요. 넉넉지 못한 생활에 형편이 어려워 자식들 고생도 많이 시키면서 살았어요. 막내딸이 공부를 참 잘했는데, 공부시킬 돈이 없어 시험 날 교회엘 가서 대학 좀 떨어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다 했을 정도니... 내 속이 얼마나 문드러지고 그 마음을 뭐라 설명하겠어요. 

내가 그런 엄마였어도요, 우리 자식들은 다 잘돼서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아마 이경희씨 자식들도 엄마에 대한 사랑을 영원토록 마음 안에 곱게 간직할 거예요. 이경희씨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인생사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라고 하지요? 서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봐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후회 없이 다부지게 한번 잘살아 봐요. 몇 살이 돼도 무언갈 하고 싶은 마음은 늘 생겨날 테지만, 지금 도전하면 내 생에 가장 이른 날이 아니겠어요? 도전해봐요. 그게 뭐든 후회 없이.

*김홍매씨는 1942년생으로 고향은 안남면 지수리 모산이다. 나락·콩·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농한기인 겨울에는 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군서면 하동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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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 월간 옥이네

 
옥녀봉과 마리들, 새터와 마고실 총 네 곳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하동리 마을회관은 이 중 옥녀봉과 마리들, 새터의 중간에 지어져 세 마을을 잇는다. 현재는 세 마을을 통틀어 40여 가구가 거주한다. 

군서면 하동리는 1919년 3.1운동 때 서화산에서 횃불을 들고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김순구 선생과 마을 주민들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가 있고, 마을 가운데 우물터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 만세봉에 올라 '군서만세운동'을 벌인 독립운동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모두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한평생 함께 웃는 얼굴 보며 살아왔다는 주민들은 이 마을에 남은 자랑거리는 '인심'이라 입을 모은다. 네 개의 마을로 나뉘어있지만, 일주일에 세 차례 회관에 나와 요가와 체조를 함께 하며 건강과 우애를 다진다. 

하동리 마을회관에 고민 상담소가 열린 지난해 12월 30일은 마을 회의가 있던 날로 마을 식구들이 떡국과 고기를 나눠 먹고, 노래를 부르고 놀이도 즐긴 하루였다.


월간옥이네 통권 67호(2022년 1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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