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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떠나는 장애 학생들... 오케스트라에서 발견한 가능성

[학생이 중심에 있는 통합교육을 찾다①] 장애인과 비장애인 60여 명이 함께하는 '아인스바움'

등록 2023.02.05 11:16수정 2023.02.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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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을 처음 봤어요.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랬어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온 이 대사는 우리나라 통합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비장애학생은 장애학생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한 공간에 있을 뿐, 어울려 생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부의 특수교육 정책은 '통합교육'을 기조로 삼지만, 현장에서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분리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통합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 장애학생 그리고 비장애학생들이 더 나은 통합교육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다양한 문제가 얽힌 통합교육을 이해하기 위해 5개월 동안 약 60명의 학부모, 학생, 교사, 전문가, 교육부 관계자와 인터뷰했다. 기사를 통해 발달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적극적으로 공존의 방향을 모색했던 사례들을 다뤘다. 다양한 경우들을 살펴보면서 더 나은 공존, 통합교육의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기자말]
"상훈아 내 필통 어딨어?"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홍천중학교 1학년 8반 학생들은 소지품이 보이지 않으면 상훈이부터 찾는다. 그럼 상훈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책상 밑에 숨겨놨던 필통을 슬며시 건넨다. 물건 숨기기는 다운증후군인 이상훈(17) 군의 애정 표현 방식이다. 일명 '보물찾기 놀이'로 불린다.

같은 반 학생들이 처음부터 상훈이의 보물찾기를 이해했던 건 아니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된 3월에는 한 친구가 상훈이를 '샤프 도둑'으로 오해했다.

학급 내 '소지품 실종 사건'이 반복되자 상훈이에 대한 친구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소식을 들은 특수반 선생님이 상훈이 반에 찾아왔다. 선생님은 다운증후군 친구들이 사교성이 높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며 상훈이가 물건을 숨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에도 상훈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마다 선생님은 수시로 학생들을 찾아왔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상훈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 상훈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해 가르쳤다.

같은 반 친구 여승찬(16) 군은 "상훈이가 문제 행동을 하면 (어떻게 대하는지 가르쳐줄 수 있도록) 선생님한테 다 말하라고 하셨다"라며 "장애인식교육 후엔 (반 친구들이) 상훈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상훈이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통합교육의 현주소 : 교실을 떠나는 발달 장애 학생들


이처럼 대다수 장애 학생들은 상훈이처럼 일반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장애 학생은 10만 3695명이다. 그중 72.8%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통합 학급'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전국에 통합 학급은 약 6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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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학교와 특수학교의 차이점 ⓒ 임유나


통합교육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하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교육과정인 '특수교육'과 다르다. 통합 학급의 핵심은 '함께'다. 그래서 통합 학급은 서로 다른 학생들이 같이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학부모 김세훈(44)씨도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딸 김수민(9) 양을 일반학교에 보냈다. 김씨는 "대안학교(특수학교)에 가면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과만 살게 될 것 같았다"며 "일반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섞여 (또래들을) 많이 봐야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2018~2022)을 바탕으로 통합교육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시도교육청별로 통합교육지원단 설치를 의무화하고 통합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장애 학생들이 통합교육 과정에서 이탈하고 있다.

교육부가 공개한 '2020 특수교육 실태조사'에 나온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학교(통합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을 간 장애 학생은 한 해에만 총 1만 584명이었다. 즉, 해마다 장애 학생 10명 중 1명 꼴로 통합교육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탈 인원 중 8868명, 약 84%는 발달장애(특정 나이에 이뤄져야 할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달 선별검사에서 해당 연령의 정상 기대치보다 25% 뒤쳐진 경우로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발달지체장애 등이 있다) 학생이다. 

특수학교로 전학 간 발달장애학생 8868명의 설문조사 응답을 분석한 결과, 통합학교를 떠나게 된 이유로 "특수학교 교육과정이 자녀에게 더 적절한 것 같아서"가 약 33%로 가장 많았고 "비장애아동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이 어려워서"(29%)가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따돌림을 당할 것 같아서"(8%) 등의 답변을 통해 또래와의 적응 문제가 발달장애학생들의 통합교육 적응을 막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달장애 특성상 장애학생이 적절한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비장애학생과의 사회화 과정이 중요하다. 박승희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발달장애 학생은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적응행동에서도 제한성이 있다"며 "다양한 시민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사회에 참여할지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통합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교육 과정에는 학생들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과정이 부족하다 보니 장애학생들은 통합학급 공동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희랑(15·자폐스펙트럼 장애) 군의 어머니 윤정은(43)씨는 사회성을 위해 아들을 일반학교에 보냈지만 "통합학급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아이를 보고 홈스쿨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2021년부터 희랑이가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윤씨는 자녀가 사회화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오케스트라에서 발견한 통합의 가능성

"아인스바움에서 '통합이 이런 거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취재를 막 시작한 작년 4월, 윤정은씨를 포함한 3명의 장애학생 학부모로부터 우연히 아인스바움을 알게 됐다. 이들은 통합이 잘되고 있는 사례를 찾고 있다는 취재팀에게 아인스바움을 추천했다.

장애단원과 비장애단원이 어떻게 생활하길래 '통합이 잘된다'고 했을까.

취재팀은 아인스바움 이현주(49) 단장에게 '아인스바움을 알아보고 싶다'며 취재를 요청했다. 이후 두 달 동안 토요일마다 연습실을 방문했고 연주회가 있을 때면 현장에 함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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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성은학교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마친 아인스바움 팀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임유나

  
아인스바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60여 명이 함께 하는 통합 오케스트라다. 2009년 처음 팀을 꾸려 올해로 15년째 경기도 성남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씨는 한 행사에서 아인스바움의 연주를 들었다. 그는 "사회화가 필요한 희랑이에게 (아인스바움이) 좋은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랑이는 친구 최민서(13·자폐스펙트럼 장애) 양과 함께 작년 6월 4일부터 아인스바움에 다니기 시작했다. 우연히 같은 날 취재팀도 아인스바움을 처음 만났다.   첫 방문 날, 연습실에 도착한 취재팀이 마주한 건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민서였다. 민서는 처음 온 연습실이 낯설어 소리를 지르고 연습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아까 민서가 텐트럼 일으키는 거 보셨죠?"

이 단장이 설명한 텐트럼은 주로 발달장애인에게서 나타나는 분노 발작 행위다.

민서에게는 착석부터 난관이었다. 민서가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자 이 단장은 민서가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3일 후 용인제일교회 연주회 무대에 민서를 세우기로 했다. 취재팀도 민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민서는 쉐이커를 흔들었다. 쉐이커는 흔들면 소리가 나는 악기로 주로 오케스트라의 초보 단원이 연주한다.
  
첫 리허설 연주가 시작되자 민서는 귀를 막고 무대 스크린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스크린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플루트를 연주하는 단원을 관찰했다. 다른 단원들은 민서에게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하면서도 민서의 행동을 강하게 제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민서가 무대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두 시간이 지난 뒤 민서는 본인 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땐 쉐이커를 박자에 맞춰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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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서 있는 단원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쉐이커를 흔들고 있다. ⓒ 임유나

 
민서는 아인스바움에 들어온 지 3주 차부터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연습하는 동안 제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텐트럼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함께 연주하는 장애단원과 비장애단원이 민서가 합주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기에 가능했다.

"언제 끝나?" 민서가 입버릇처럼 물을 때마다 비장애단원들은 늘 똑같이 대답했다. "끝날 때 되면 알려 줄게." 그 말을 들은 민서는 자리에 돌아갔다. 민서를 가르치는 비장애단원 안재원(28)씨는 "어느 새부턴가 민서가 자리에 앉아서 쉐이커를 흔드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비장애단원 이주은(26)씨는 "장애단원마다 모두 특성이 다르다"며 한 명씩 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모든 걸 맞춰주지는 않아요. 대신 (비장애단원이) 적응할 때까지 반복하고 기다려준다"고 덧붙였다.

아인스바움에 익숙해진 장애단원은 비장애단원과 다름없이 스스로 할 일을 했다. 연주가 끝난 후 뒷정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할 수 있다면 접이식 의자를 들어 옮기고 사용한 악기를 해체해 닦았다. 연주회를 마치고 희랑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단원들과 의자를 나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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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옮기고 있는 희랑이(좌), 합주 연습이 끝난 후 사용하던 악기를 직접 정리하는 희랑이(우) ⓒ 임유나

 

아인스바움에서 부는 통합의 하늬바람 ⓒ 노연수

 
아인스바움의 비장애단원들이 처음부터 장애단원들을 능숙하게 대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 단장은 "통합을 직접 겪어보면 훨씬 역동적이고 힘든 일도 있을 것"이라며 장애단원과 비장애단원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합주가 끝난 후 단원들은 연습실 근처 갈비탕집으로 향했다. 취재팀은 지적장애를 가진 시우(12)와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시우는 식사 내내 큰 목소리로 떠들며 펄펄 끓는 갈비탕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마구 휘저었다. 반찬 그릇을 엎으며 흥분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우야!" 취재팀이 몇 숟갈 채 뜨기 전, 시우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식당 밖으로 나가 차도로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비장애단원 유하민(26)씨가 달려가 시우를 데려왔다.

취재팀은 시우를 처음 만났을 때 당황했다. 시우가 어떤 상황에서 뛰쳐나가는지, 어떻게 하면 말을 멈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장애단원이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비장애단원도 장애단원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중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참여해 온 비장애단원 김성수(26)씨는 "처음에는 장애단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특별한 일이 있었다기보다 장애단원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그러나 그는 오케스트라에 올 때마다 여전히 긴장된다며 "아직도 당황스럽고 아이들이 돌발행동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고 했다.

* 2편(학생이 중심에 있는 통합교육을 찾다②)으로 이어집니다.
#발달장애 #통합교육 #교육 #특수교육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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