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1 18:23최종 업데이트 23.02.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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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 봅니다.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6호'는 2023년 1월 16일부터 24일까지 쇠토프 숲유치원, 바흐네호이 애프터스콜레, 트레크로네르 스콜레, 코펜하겐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 등을 직접 방문했습니다.[편집자말]

현지 학생들과의 조별 탐방.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쿨 학생들이 직접 인솔하여 기숙사와 교실을 안내하고 설명해주었다. ⓒ 이정혁

 
(*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omn.kr/22ic6 )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는 어떠한 곳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진로 계획을 세우고, 개인의 자유와 독립심을 기르며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중간학교입니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학부모들이라면, 구절마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일 것이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고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미래가 열리는 것이지 계획만 세운다고 된답니까? 그 또래 애들 모여봤자 사고나 치고, 애먼 짓이나 하지, 자유와 독립이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죠?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이것이 한국의 상식이고, 기본 교육방침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주머니에 넣고 키운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부모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내 아이가 자발적으로 뭔가를 해내고 또래와 어울려 자치를 이루며 사회 활동을 한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시선과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바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직접 부모의 눈으로 바라본 애프터스콜레에 관해 적는다. 어쩌면 내 아이가 2년 후에 이곳에서 생활할지 모른다는 현실적 시선을 가지고.

12명이 한데 모여... 있는 그대로의 애프터스콜레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기숙사 거실 12명 기준으로 한 건물을 사용하며 건물당 공용 거실이 하나씩 있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기숙사 내부 바다가 보이는 전경을 가진 기숙사는 덴마크 아이들에게도 행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공용전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공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곳에서 부모에게 전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지 않을까? 사진 왼쪽이 공용전화실 외부. 오른쪽은 내부. ⓒ 이정혁

 
애프터스콜레의 월 교육비는 한화로 계산했을 때, 110만 원 정도다. 통상적으로 학비의 절반은 국가에서 부담하고, 가정 형편에 따라 지원 비율이 달라진다. 절반으로 계산했을 때, 50만~60만 원. 기숙형 학교임을 고려하면 저렴한 편에 속한다.

기숙사는 12명이 한 건물에 사는 구조다. 건물당 담당 교사와 학생 대표가 한 명씩  있다. 서너 명이 함께 쓰는 방도 있고, 두 명이 사용하는 방도 있으나 12명 기본단위에 공용공간인 거실이 하나 딸린 구조다. 기숙사 내부 구조는 건물마다 달랐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방의 경우, 현지 학생들도 "행운아"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망이 좋다.

눈여겨 볼만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공용전화 공간'이다. 우리나라야 한글을 익히기 전부터 손에 쥐여주는 것이 스마트폰이지만, 외국의 아이들은 여러 사정에 따라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기숙형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집에 대한 향수가 없을까? 조금은 삭막한 공간에 놓인 공용전화를 보며 내 아이를 떠올리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 또한 평범한 한국의 아빠임을 시인하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자율과 독립이라는 덴마크의 교육 명제를 다시 떠올린다.

기숙사 내부는 적당히 지저분했고, 또 적당히 깔끔했다. 빨래가 뒹굴고 침대 위의 이불이 헝클어진 모습은 여느 집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공용공간인 거실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남녀 기숙사를 막론하고 화병에 꽃이 있고 화초를 가꾸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장학사 오는 날이라고 대청소 시키거나, 보여주기식으로 억지 장식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기숙사 내부를 둘러보고, 이제는 수업을 주로 하는 야외와 교실을 둘러보기로 한다.

북유럽 겨울 날씨에 야외 텐트도... 학생이 직접 선택하는 수업들
 

아웃도어 클라스의 야외텐트 한 겨울의 날씨에도 텐트에서 야영을 한다고 한다. 덴마크의 아이들은 추위에 강하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텃밭 아이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채소를 길러 먹는 텃밭 ⓒ 이정혁

 

[현지영상] 덴마크 바흐네호이 애프터스콜레를 둘러보다 ⓒ 김지현

 
우리 일행은 '린' 학생의 디자인 교실로 향했다. '바흐네호이 애프터스콜레'엔 7개의 수업이 존재한다. 우리를 인솔한 두 학생 중 하나인 '린'은 재봉틀과 각종 디자인 관련 도구가 놓인 디자인 클라스(design line)에서 주로 수업을 듣고, '구스타우'는 작가 클라스(authur line)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승마, 아웃도어(캠핑), 음악, 목공, 요리까지 총 7개의 교육 과정이 있으며 아이들은 이중 하나를 선택해 1년의 학습과정을 거친다. 국어(덴마크어)·영어·수학 등의 기본과목과 다른 수업도 존재하지만, 특화된 수업 7가지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물론 전 과목에 시험은 없으며 전체가 함께하는 야외활동이나 체육 같은 수업도 있다.

눈이 내리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아웃도어 수업 교실 밖에는 텐트가 쳐져 있다. 1월의 북유럽 날씨 속에서 야외 취침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모닥불 피우는 곳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의자들이 원형으로 놓여 있다. 직접 가꾸는 텃밭도 면적이 상당했으며, 일부에서는 푸릇한 채소가 자라고 있다. 봄이 되면 전교생이 모여 파종을 하고 1년간 가꾸며 식자재로 사용한다.
 

쿠킹 클라스의 아이들과 선생님 점심은 요리수업을 선택한 아이들이 직접해준 음식을 먹는다. 공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지 궁금한 아이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점심식사 시간 때마침 눈이 내려서 식사의 운치를 더해줬다. 점심은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다. ⓒ 이정혁

 
애프터스콜레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바로 점심식사. 담당 교사와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중학생이 만든 음식이라...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가라'는 경험자의 조언도 점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어놓은 음식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의 수준급이었다.

오전 내내 준비하고, 신경 써서 만들었을 요리일 테다. 어떻게 느끼고 맛볼지 궁금해하며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꿈틀비행기' 참가자들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의 짜장처럼 생긴 스튜(이름을 '달'이라 불렀던가)를 얇은 빵(인도 음식 난과 비슷)에 싸서 먹는 음식이었다. 향과 간이 적당했고, 제법 맛도 있어 다들 칭찬이 자자했다.

아들과의 값지고 벅찬 대화

애프터스콜레 탐방을 마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길, 큰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도 여기 와서 1년간 살아볼래?' 이미 사흘간의 일정으로 덴마크 유치원부터 대학생 기숙사까지 다양한 교육환경을 눈여겨본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아이 :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1년 정도 생각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는데... 없으면, 뭐, 여기 와도 괜찮을 것 같아."
아빠 : "우리나라에도 '꿈틀리인생학교'라고 있어. 1년간 학교생활 해보고, 중학교 3학년 때 같이 고민해 보자. 인생이란 긴 여정이어서 서둘러 갈 필요가 없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방향을 잡고, 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 거란다."


아이의 시야가 넓어지고,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이번 덴마크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값지고, 가슴 벅찬 기억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꿈틀비행기 17호는 오는 8월 출발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omn.kr/1mleb'를 참고해주세요.
-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irondownbros 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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