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기자가 말하는 '현장' 이야기

[김성호의 독서만세 177] 박정환의 <박정환의 현장>

등록 2023.01.30 10:07수정 2023.03.2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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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그리고 기자가 불신 받는 시대다. 기레기, 기더기란 말이 더는 충격적이지 않게 들려오고, 누군가의 존경을 받는 기자도 채 한 줌이 되지 않는 것만 같다. 언론을 욕하는 이들조차 기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걸까.

대중에게 잊힌 기자들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선 채 현장을 버려둔다. 기자실엔 우글우글한 그들을 거리와 일터에선 만나보기 쉽지 않다. 정태춘의 명곡 '92년 장마, 종로에서' 속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는 가사가 어느덧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여기, 언론이며 기자가 그와 같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기획이 있다. 기성 출판계에 균열을 내겠다는 출판공동체 편않이 기획한 '우리의 자리' 시리즈다. <박정환의 현장>은 그중 첫 번째 책이다. 기획자 지다율은 '욕먹어 싸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라는 말로 이 책의 필요를 설명한다. 그의 눈엔 지금도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보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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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의 현장 책 표지 ⓒ 편않

 
10년차 기자가 만난 세상

책을 쓴 박정환은 10년차 기자다. 주간지인 <일요신문> 인턴으로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을 거쳐 통신사 <뉴스1>으로 이직, 현재는 <CBS>에 정착했다. 명지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언론인을 꿈꿨고 학보사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회부와 정치부, 세종시 정부부처 출입 등을 두루 경험하며 한국 언론의 중심에서 활약해왔다.

<박정환의 현장>은 에세이다. 현직 기자가 제가 겪은 경험을 적어내린 에세이다. 기자지망생 시절부터 주간지와 통신사, 종교방송국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책 안에 담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은 '나는 어떻게 썼는가'이고, 다음은 '무엇이 문제일 수 있는가'이며, 마지막은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라는 부제가 달렸다. 부제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언론에 관심이 큰 언론인 지망생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때문에 이야기는 경험 중심으로 가벼운 감상을 늘어놓는 식이다. 남성도우미 잠입취재부터 세월호 침몰참사, 그로부터 파생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추적, 조국사태 기자회견 등 다양한 현장을 글 속에 소환한다.

언론을 알고 싶으나 알 길이 없는 기자지망생 등의 독자는 이를 통해 기자가 하는 일을 비교적 상세히 접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다.


보통의 기자가 소개하는 언론

기자도 가까이서 바라보면 여러 종류일 밖에 없다. 하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준비해 깊이 있게 다루는 월간지며 주간지가 있는가 하면, 짧은 호흡으로 그날그날의 사건을 처리하는 일간지 기자가 있다. 정해진 터전 없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기자도 있고, 확고한 출입처 구분 아래 정해진 업무에 매진하는 출입기자들도 있다. 방송기자와 신문기자, 인터넷매체기자와 라디오기자가 있고 앞으로는 그보다도 많은 기자가 생길 것이다.

자유도가 높은 기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기자도 있다. 팀으로 일하는 이가 있고 개인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다. 깊은 지식으로 분석하는 기자가 있는 한편, 건조한 사실만을 기계적으로 적어야 하는 기자도 있다. 더 큰 회사, 더 많은 연봉을 주는 매체로 이직을 준비하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제가 하는 취재에만 모든 관심을 두는 기자도 있다. 수많은 상을 타오는 기자가 있고, 그런 상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기자도 있다.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기자가 있다.

분명한 건 박정환은 이 시대 가장 보통의 기자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단 사실이다. 그가 언론을 지망하는 과정이며 마음가짐, 그가 몸담았던 회사와 사건을 대하는 태도 등이 이 시대 보통의 언론인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 스스로가 수차례에 걸쳐 이를 강조하는 모습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지극히 평범한 10년 차 기자'의 일상적 기록은 독자에게 과연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가 기대하는 것처럼 이 책이 언론계 선배, 동기,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를, 그가 언급했듯 '나보다 훨씬 못하네', '저것보단 내가 잘하겠다'는 비판을 마주하게 될지를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비난하고 조롱해봤자 나아지지 않는다

짧지만 장단이 분명한 책이다. 기자의 삶을 보다 가까이 이해하게 이끌고, 그들이 당면한 고민과 욕구를 짐작하게 한단 점은 의의라 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적잖다. 저자의 이름을 제목에 빼어 달 만큼 의미가 있는 이야기였는지, 그 보통성이 가진 함의를 명확하게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 스스로 '저널리즘은 이런 것이라고 평론하거나 분석할 실력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 경험 위주로 내 시각과 생각을 담아냈다는 한계가 있다'고 실토할 만큼 깊이 있는 시각이 부재하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역동적이었던 한국의 지난 10년을 언론의 중심에서 지켜봤던 기자라면 그보다는 나았어야 했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박정환의 현장>은 기획시리즈의 일환으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언론인과 출판인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전하겠다는 '우리의 자리' 시리즈가 앞으로 더 많은 기자들을 시리즈 가운데 불러다 소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보통에서 가까운 기자도, 먼 기자도, 괴로워하는 기자도, 즐거워하는 기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오늘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시민이자 독자인 우리는 더 잘 알아야만 한다. 그 필요에 대해선 편집자가 다음과 같이 잘 적어두고 있다.
 
언제까지고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소명할 건 소명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럼에도, 이제는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164p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정환의 현장 -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

박정환 (지은이),
편않, 2022


#박정환의 현장 #편않 #박정환 #기자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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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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