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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재취업했는데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 넘쳐나는 종이, 물티슈, 종이컵... '직장인 개념 3종' 세트 구비한 이유

등록 2023.02.06 21:44수정 2023.02.0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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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엔 예년에 비해 5도 이상 낮은 기온이 2주 가량 지속되었다고 한다. 삼한사온도 별무소용이 됐다는 한탄이 나올 만했다. 지난 설 연휴 막바지엔 영하 17도까지 떨어졌다. 바람까지 세 체감온도는 더했다. 근자에 없이 추운 날씨에 폭설까지 더했다. 추위에 질린 사람들은 보일러를 풀가동 했다. 전기장판, 온풍기 등의 난방도구들도 죄다 끄집어냈다. 가스비나 전기요금이 걱정 됐지만 일단 닥친 추위부터 피해야 했다.


연휴가 끝나고 목하 언론들은 난방비 폭탄 관련 기사를 쏟아 냈다. 정부가 도시가스와 열 요금을 대폭 올린 데다 이상한파로 실질 인상 폭은 이보다 훨씬 높을 거란 요지였다. 하지만 우리 집 보일러는 12월에도, 설 연휴에도 평온하기만 했다. 그 모진 추위에도 우리 모자는 보일러 버튼을 만진 적조차 없었다. 겨울이 시작됐을 무렵부터 우리 집 보일러의 설정온도는 정확히 20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물론 관리비 고지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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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보일러는 20도 유난스런 한파에도 우리집 보일러 설정온도는 쭉 20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 이상구

 
이 추위에 몇 푼 아끼려고 노모 고생시키는 못된 아들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엔 이런저런 비결이 있는데 우선은 우리 사는 아파트 덕이 크다. 지은 지 20년 넘는 낡은 아파트지만 벽체가 두툼하고 단열처리가 잘 돼 있는 것 같다. 벽간, 층간 소음도 상대적으로 작은 걸 보면 그렇다. 완전 남향인 데다가 동간 간격도 넓어 한낮이면 볕이 오래 든다. 그때 데워진 따뜻한 공기는 제법 길게 지속된다. 물론 기술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경험상, 느낌상 그렇다는 말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우리 가족의 특별한 체온 조절 능력이다. 우린 추워도 추운 줄 모른다. 여기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단독주택은 자고 나면 자리끼가 얼 정도로 웃풍 센 집이었다. 부모님은 집안에서도 속내의를 챙겨 입고, 두툼한 점퍼까지 겹겹이 입고 지내며 난방은 웬만하면 켜지 않으셨다. 그저 배관 얼지 않을 만큼만 온도를 유지했다. 그 집이 기름 보일러였던 탓도 컸다.

겨울만 그런 게 아니라 여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그 살인적인 더위에도 어머니는 고장난 에어컨으로 버티셨다. 필요 없으시다 역정까지 내시는 걸 못 들은 척하며 그 이듬해 억지로 하나 들여 놓았지만 어머니는 그저 장식 가구 취급만 하신다. 정 못 참겠으면 찬물 한 바가지 들이붓는 게 다다. 그렇게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컸다. 그래서 우린 오히려 에어컨 바람 빵빵한 실내가 더 부담스럽다. 우린 항온 체질이 분명하다.

눈에 거슬리는 풍경들

어쩌다보니 이 나이에 다시 취직이 됐다. 그것도 몸 쓰는 게 아니라 실내에서 일하는 어엿한 사무직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쉽진 않았지만 참말 운이 좋았다. 그렇다고 기적의 재취업기나 자랑삼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직장 생활 처음 시작했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무실의 흔한 풍경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은 거다. 좋은 거라면 나도 그러련만 참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과거보다 정도가 더 나빠진 것들도 많았다.


가장 참기 힘든 건 종이 낭비의 현장이다. 마구 버려지는 종이를 보면 당장 내 살을 떼 내는 것 같다. 제 돈 주고 산 거라면 저렇게 쓸까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프리젠테이션 화면 만들어 띄워놓고도 따로 사람 수마다 프린트된 보고서를 만들어 놓는다. 몇 십 페이지짜리 보고서도 한 글자 틀리면 전체를 다시 인쇄한다. 한번 펼쳐지지도 않고 버려지는 종이신문도 차고 넘친다. 분리수거라도 잘 하면 재활용이라도 할 텐데 쓰레기통은 멀쩡한 이면지로 넘쳐 난다.

천연펄프로만 종이 1톤을 만들려면 24그루의 나무가 든다고 한다. 2020년 국내 종이 소비량은 800만 톤. 산술적으로 우리가 1년 동안 쓰는 종이를 만들려면 약 2억 그루의 나무를 베야 한다는 거다. 그게 숲이라면 어느 정도 크기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무가 없어지면 그만큼 산소가 줄고 대기환경도 나빠지는 데다가 산사태의 위험도 늘어난다는데, 유사 이래 이제껏 그렇게 종이를 써왔으면서도 이렇게 지구가 멀쩡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일회용품은 소비는 예전보다 훨씬 더 늘었다. 나 땐 기껏 종이컵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에 플라스틱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모닝커피, 식사 후 물 한 잔, 간식용 음료까지 모두 일회용 컵을 쓴다. 점심 도시락이나 컵라면도 다 마찬가지다. 얼핏 한 사람이 하루에 서너 개 이상씩은 쓰지 않을까 싶다. 코팅된 종이컵은 1% 정도만, 플라스틱 컵도 5% 미만이 재활용된다고 한다. 마구 버려진 그것들이 온 세상을 떠돌다 결국 돌아오는 곳은 어디일까.

거기에 요즘 사무실엔 또 다른 원흉이 생겼다. 물티슈다. 예전엔 걸레와 행주를 썼었다. 그게 사라진 빈자리를 크고 작은 물티슈가 대신하고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물티슈는 플라스틱 소재의 합성섬유와 방부제가 포함된 화학약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 자체로도 반환경적이고, 재활용도 불가하고 썩지도 않을 뿐더러 잘 풀어지지도 않아 곧잘 하수구를 막는 주범이 되곤 한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무실은 여전히 덥다. 난방 온도가 지나치게 높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거나 드물게 반팔 옷을 입고 근무하는 직원들을 보면 나만 그리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관리사무실에 한 번 물어보니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낮추면 '난리'가 난다고 했다. 그리 춥다면서 겉옷 벗어 척 걸어두고 플라스틱 컵과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풍경은 참 부조리해 보이기까지 한다.

직장인 개념 3종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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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개념 3종 세트 이면지 클립보드, 뚜껑달린 머그컵 그리고 손수건. 개념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 이상구

 
   
물론 나는 철두철미 환경론자는 결코 아니다. 그저 TV같은 데서 플라스틱 올가미가 목에 감긴 바다거북이나 멀쩡한 밀림을 베어내는 장면 따위를 볼 때 뜨끔하며 양심의 가책을 받는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풍경들이 불편해 보이는 건 그 연장선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유난 떨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보다 그저 작은 것부터 나부터 솔선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럴 때 클립보드와 머그컵 그리고 손수건은 유용한 도구가 된다. 모두 어머니께 배운 거다. 당신 머리맡엔 지금도 달력 오려 만든 메모지 묶음과 뚜껑달린 주발이 놓여 있다. 그걸 따라해 본 거다. 크게 기밀스럽지 않은 이면지를 보드에 묶어 수첩이나 메모지 대용으로 쓰고 나만의 머그컵으로 커피나 물을 마신다. 컵을 자주 닦으면 손까지 자주 씻게 되니 이보다 위생적인 게 또 뭐가 있을까.

손수건도 당신 성화로 쓰기 시작한 거였다. 처음엔 싫었는데, 자꾸 써보니 나쁘지 않았다. 머그컵과 이면지 클립보드를 들고 회의에 들어가 손수건을 꺼내면 다른 직원들이 새삼스레 한 번씩 쳐다보곤 한다. 어떤 분은 개념 있어 보인다 했다. 그게 그냥 빈 말이 아니라면 가히 '직장인 개념 3종 세트'라 할 만하지 않을까. 영 몹쓸 얘긴 아닌 것 같으니 이제부터라도 한번 동참해 보시기를.
#지구 #재활용 #환경보호 #이면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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