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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부은 청약 해약날, 은행 직원 붙잡고 펑펑 울었다

[토요일 오후 6시 34분] "'네'만 하던 순한 아이" 서른 한 살 이동민씨의 삶

등록 2023.02.04 18:18수정 2023.02.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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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을, 사업가를, 음악가를, 간호사를, 배우를 꿈꿨던 159명의 바람은 이뤄졌을지 모른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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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씨가 태어날 당시 산부인과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에 즉석사진이 부착 되어 이었다. ⓒ 이희훈

 
1991년 3월 17일은 일요일이었다. 기상청 관측 기록에 따르면 그날 최고기온은 8.8℃. 전날 보다 4℃ 오른 기온이 봄을 부르고 있었다. 오후 5시 29분, 3.9kg 우량아 이동민씨가 태어났다. 둘째 동민씨를 임신했음을 안 뒤, 엄마 최행숙(현재 63)씨는 내심 아들이길 바랐다고 했다. 

"애 아빠가 장남이라... 그때만 해도 아들을 낳아야 될 거 같았거든요. 병원에서 아들이라 소리를 들은 날 첫째를 잃어버렸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우리 딸 양말 하나 사줘야겠다 하고는 업고 있던 딸을 잠시 내려 놨는데 계산 하는 사이에 사라진 거예요. 오후 내내 찾아 헤맸는데 병원에 올라가서 놀고 있는 거 있죠. 딸이 친화력이 좋아서."

동민씨와 21개월 차이가 난다는 누나 이지수(34)씨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엄마를 슬쩍 흘겨봤다.

"아이고, 지금 생각하면 아들, 장손 그게 뭐라고 싶죠. 첫째는 딸 낳기를 바랐죠. 누나는 활발하고 동민이는 순하고 그랬어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꼼지락 꼼지락 순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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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씨 남매의 어릴적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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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휴대폰에서 옮겨둔 사진. ⓒ 이희훈

 
그러자 이내 누나는 "맞아, 엄마가 (태동 때문에) 배가 간지럽다고 했어"라며 맞장구를 친다. 자그마한 엄마 뱃속에 우량아가 있으니 배는 산만했고 "뒤로 넘어갈 거 같다고 사람들이 놀라곤 했다"면서 엄마도 슬몃 웃었다. 

동민씨가 태어난 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동민씨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장손이 태어났으니,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셨단다. 전주 이씨 항렬 돌림자 '동(東)'에 백성 '민(民)'을 넣어 지어준 이름. 엄마는 "편하게 살으라고 그리 지었는데, 너무 편하게 지었나 싶어요"라며 후회했다.

"처음 동민이를 품에 안았을 때 잘생겼다, 듬직하구나 그랬죠... 어어... 많이 좋았어요. 그냥 행복했죠 뭐... 이렇게 짧게 살 줄 알았겠어요, 그때는..."

이태원 참사로 잃은 아들을 31년 전 처음 마주한 그 순간을 얘기하며, 엄마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투닥 거리며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던 누나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뒤편에 앉아 얘기를 듣고만 있던 아버지 이성기(65)씨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동민씨가 없는 첫 설날을 지나 온 1월 28일, 남겨진 세 가족은 소리 없이 울었다.

항상 '네'만 하던 순한 아이 9살 동민이의 편지 "아이스크림 사달라 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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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동민씨의 어릴적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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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유치원 생일잔치 때 찍은 사진을 보여 주는 엄마 최행숙씨. ⓒ 이희훈

 
"동민이는 자라면서 항상 '네'만 했던 아이에요."

인터뷰에 앞서 <오마이뉴스>에 사연을 적어 보낸 엄마는 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다가도 심부름을 시키면 "더 필요한 건 없어?"라며 마트를 다녀오던 아이였다고 했다. 유치원 때 외삼촌이 사준 장총 장난감이 위험해 보여 반품해도 "네, 다음에 사주세요"라며 떼쓰지 않았다고 한다. 갖고 싶어하던 로봇 장난감을 "다음에 사줄게"해도, "네" 하던 아들이었다고 했다. 동민씨가 9살이던 해, 5월 6일 부모님께 적은 편지에도 그 성품이 묻어난다.
 
"어머니 가게를 하시느라 힘드시죠.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라서 죄송해요. 아버지 회사를 다니시느라 힘드시죠. 집으로 돌아 오시면 안마를 해드릴게요. 어머니 아버지 어린이날 선물 고맙습니다." -1999년 5월 6일 목요일 이동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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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6일, 이동민씨가 부모님께 쓴 편지. 동민씨의 성품이 잘 묻어난다. ⓒ 이주연

 
"그런데, 다음은 없는데... 다음은 없잖아요. 다음이 있을 줄만 알았는데 다음이 없어요. 그런 줄 알았으면 그때 다 해줄 걸, 다 사줄 걸. 그게 미안해요." (엄마)

동민씨는 대학교 졸업 후 26살 곧장 취직했다. 설계사로 들어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몸에 이상을 느꼈다.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눈과 몸이 부었다. 병원에서는 악화되면 척추 밑으로 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료에 돌입했다. 그렇게 2년을 쉬고 건강을 회복했다. 현장에서 기계 만지는 게 좋다며 기숙학교에 들어가 새로 기술을 배웠다. 새로운 회사에 취직도 했다. "내 길을 찾았다"며 회사에 적응해 여유가 생긴, 2년차 직장인이 됐다.

그렇게 번 월급도 '네' 하며 썼다. 그동안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던 물건을 하나씩 사들였다. 세탁기, 밥솥, 에어프라이기, 커피머신, 안마의자, 제습기, 태블릿 PC, 컴퓨터. 모두 동민씨가 사준 물건들이라고 했다. 엄마가 지나는 말로 "공인중개사 준비를 해볼까" 하면, 집 앞 서점에 가서 관련 책을 쓸어오고, "인터넷 강의 들으며 공부하라"며 컴퓨터를 사주는 식이다.

"동민이 주머니에 10만 원이 있다면 엄마에게 다 줄 수 있는 아이였어요." (엄마)
 

엄마가 동민씨를 '미화' 할라치면 딴죽을 걸며 웃음을 자아냈던 지수씨도 이번만큼은 "동민이가 엄마한테 진짜 잘했다"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엄마한테 이렇게 잘했을까' 물으니 엄마는 "속 마음은 모르겠어요"라고 했고, 누나는 "엄마한테 받은 대로 해준 거"라고 답을 내놨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요? 나라 구할 애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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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떠올리던 엄마 행숙씨의 눈물에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 이희훈

 
엄마는 순하고 '네'만 하는 아들이 걱정돼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 "이제 그만 다녀도 된다"했지만 동민씨는 "4단까지 따겠다"며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중학생이던 2006년 태권도 4단을 거머쥐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그의 바람은 경찰대학 진학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며 기계공학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운동은 꾸준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팔씨름 왕이었다고 해요. 직장 들어가서도 헬스장 다니고 몸관리 하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도 아령으로 계속 운동했고요." (엄마)
"자기 종아리 굵다고 자부심이 있더라고요,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웃음)." (누나)


시골에서 올라온 80kg짜리 쌀포대도 혼자 들었던 키 179cm의 건장한 아들. 엄마는 아무리 수많은 인파 속이었지만 '동민이가 왜 못빠져 나왔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그냥 제 생각인데요. 옆에 사람들, 작은 여자들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긴 힘이 있으니 밀려도 버텨서 못 밀리게 하자, 하다가 넘어져서 그랬지 않았을까요. 그 힘으로 못 막았겠어요. 엄마한테 하듯이 하다가 그러지 않았을까... 안타까워 죽겠어요."

그렇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날개"가 꺾였다.

"차도 사려고 했고, 집도 사려고 청약을 서른 몇 회 넣었고, 결혼도 해야 했고, 나중에 외삼촌이랑 사업도 같이 하자고 했고, 앞으로 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2023년 여름에 처음으로 가족끼리 제주도 가자고 그렇게 계획했었어요. 청약 해약하러 간 날 진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은행 직원들하고 같이 울었어요. 그런데 기회를 주지 않아서 다 못했네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을 텐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나이인데..."
 

엄마는 "이태원에 놀러간 게 잘못이냐"며 애통해했다.

"놀러갈 수 있죠. 놀러 갔으면 와야지 왜 못 올까요. 기숙사 생활을 해서 금요일마다 집에 왔어요. 10월 29일 7시에 '오고 있냐'고 카톡했어요. '이번 주에는 약속 있어서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어디가?' 물어보는데, 그 날은 안 물어봤어요. 왜 안 물어봤을까요, 어디 간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사고 난 걸 몰랐어요."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난 걸 먼저 안 건 누나였다. 자정에 유튜브를 켰다가 잠 들 수 없었다. "사망자 4명, 50명, 100명 쭉쭉 늘어나니 눈물이 막 났다"고 했다. 10월 30일 새벽 4시 브리핑을 울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었다. "이동민씨 댁이 맞냐"는 경찰의 말에 누나는 "동민이가 거기 있었냐"고 물었다. 설마 다쳤겠거니 했지만 "사망했다"고 했다. 그렇게 달려 간 병원. 동민씨는 눈만 감고 있을 뿐, 너무 멀쩡했다고 한다.

"목 밑을 만졌는데 따뜻해요. 그런데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엄마)

내내 입을 꾹 닫고 있던 아빠는 "모두 이해가 안 된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방통행하도록 경찰 6명만 배치했으면 압사라는 게 일어나질 않았을 거예요. 그 골목에 몇 번이고 가봤는데 왜 그걸 안 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경찰이 차로 확보하라고 무전해서 군중을 도로 위로 올렸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낑겨 죽은 거예요. 이상민 장관이 제대로 지시를 내렸어야지, 맨 아랫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겨요. 그 많은 사람 다 죽게 만들었으니... 어휴...

나라 구하다 죽었냐, 이게 악플의 대부분이죠. 근데 나라 구할 애들이었어요. 젊은애들이 나라의 자산이잖아요. 세월호 때 그렇게 애들 보냈고. 그 참사로 마음 아픈 거 이겨내고 살아남은 애들이 이번에 이태원 가서 당했잖아요. 거의 그 나이 또래에요. 그렇게 또 죽여놓고 애 더 낳으면 지원금 준다? 무슨 돈이 필요해요." (아빠)


아빠는 지갑 뒷주머니에 보관해 둔 초록색 색종이를 꺼냈다. '안마 10분, 청소하기, 방 정리하기' 삐뚤한 글씨로 적은 소원 쿠폰이었다. 아빠는 "동민이 장가가면 받아내려고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도 다 잊고 있던 쿠폰을 20여 년 세월동안 간직했던 아빠의 마음을 또 후벼판 건, 설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명절 되면 할머니 뵈러 갔었는데 이번 설에는 못 갔어요. 그랬더니 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 전화가 왔어요. 동민이 내려보내라고... 할머니는 동민이 죽은 지도 몰라요. 연세가 많으시니까 (말 못 했어요)... 동민이 외국 가서 한동안 못 간다고 했어요. 학교 다니면서부터 동민이가 항상 할머니 용돈 챙겨 드리고 했는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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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동민씨의 어머니 최행숙씨가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힘든 마음에 얼굴을 쓸어 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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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동민씨가 사고 당일 남긴 마지막 문자에 주말 약속이 있어 집에 못갈 것 같다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 이희훈

 
시골에 못 가는 대신, 가족들은 녹사평역을 찾았다. 이태원 유가족과 설 합동 차례를 지냈다. 아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분향소에 가 있는다고 했다. "일도 안 하고 거기 가 있어요, 동민이가 거기 있으니까"라고 했다.

엄마는 만나지 못하는 아들이 그리워, 1월 23일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아들, 설이 지났는데 우리 아들은 어디갔어 왜 못 오는거야~? 우리 아들 보고싶다. 엄마는 아직 믿을 수 없어. 너가 왜 우리 곁에 없는지 왜 돌아올 수 없는지... 동민아. 사랑하는 아들 동민아. 너는 엄마가 보고싶지 않은 건지 꿈에도 찾아오지 않니. 꿈에서라도 보고싶다.

어제 녹사평 너희들이 있는 그 곳에서 설 차례상을 차렸단다. 알고있지~? 같이 간 159명의 친구들과 설 잘 보냈겠지~? 외롭게 지내지 말고 이곳에서 못다한 일들 그곳에서 즐기며 편안히 잘 지내고 있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어. 아빠도 누나도 엄마도 우리 동민이 많이 사랑해~♡♡♡ 고생했다, 편히 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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