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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양곡관리법 거부 말고 이걸 해야 한다

[분석] 쌀 값이 하락하는 진짜 이유... 대선 공약 지키면 해결 가능

등록 2023.02.03 14:06수정 2023.02.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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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의 건이 1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월 30일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국민의힘은 법안의 철회 요구와 함께 야당 단독 통과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쌀이 초과 생산되거나 쌀가격이 떨어지면 초과생산량을 매입해서 쌀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양곡관리법 원안 - 2020. 1. 29. >
(16조 4항) 미곡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되거나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이상 또는 이하를 매입하게 할 수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 22.1.30 국회 본회의 상정>
 (제16조) 쌀 초과생산량이 3%이상 되어 쌀값 급락예상되는 경우 또는 쌀가격이 평년가격보다 5%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매입 의무화

그런데 이는 기존 양곡관리법에 존재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새롭다고 할 것은 없다. 그런데 왜 민주당은 단독 의결의 강수를 두고, 대통령은 거부권이라는 강경 대응을 예고하며 충돌로 향하고 있는가?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의 충돌

왜 농민들은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양곡관리법을 바꾸려고 하는가? 수확기 쌀 과잉생산과 쌀가격 하락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시장 격리하도록 양곡관리법은 이미 적시돼 있다.

이것은 지난 2020년 15년간 지속한 쌀 소득 보전직불제가 공익형 직불제로 바뀌면서 쌀값이 떨어지면 보전해주던 변동직불제의 폐지 대신 시장격리라는 수단으로 정부가 농민에게 쌀값 안정 대책으로 제시한 제도였다.

하지만 농민들이 이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자동시장 격리제를 양곡관리법으로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곡관리법의 자동격리 조항은 강제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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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쌀값 정상화와 양곡관리법 개정을 촉구하며 나락을 뿌리고 있다. ⓒ 유성호

 
그간 정부는 농민을 세 번 배신했다


첫째, 양곡관리법에 따른 자동시장 격리제는 요건을 갖췄으나 발동되지 않았다.

전국의 쌀은 일시에 수확한다. 10월 말이 정점이다. 이때 전국 쌀생산량이 얼마이고 얼마가 남는지, 정부가 얼마를 격리할지 발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쌀값이 거의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농협창고가 수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쌀은 남는데 정부는 발표를 미루고 격리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기존 구곡을 팔기 위한 홍수 출하로 시장은 요동치게 된다.

일시적으로 집중해 출하되는 쌀의 특징 때문에 2020년 공익직불제 시행에 앞서 개정된 양곡관리법은 '10월 15일까지 농림부장관은 기재부장관과 농민단체 대표들과 협의해서 양곡 수급 안정 대책 발표하도록' 규정했다. 농림부는 이에 따라 통계청 쌀 예상 생산량이 발표되던 날인 2021년 10월 8일 수확기 쌀 수급안정대책을 논의하는 양곡위원회를 열고, 쌀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약속했던 자동시장 격리제는 발동하지 않았다.

당시 농림부는 11월 15일 통계청의 최종 쌀생산량 발표에 따라 시장격리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농민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양곡관리법에 따라 통계청의 예상 생산량과 농식품부의 신곡 수요량 예측을 초과하는 물량에 대한 '자동시장격리' 발표를 즉각 요구했다.

2021년 11월 9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통계청의 2021년 쌀 예상 생산량을 근거로 이미 양곡관리법상 시장격리 발동 요건인 3%를 충족한 만큼 시장격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날 국회에선 자동시장격리제 의무화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농림부는 쌀값이 이미 폭락세로 돌아선 그해 12월 28일에서야 시장격리를 발동했다. 이것은 쌀값 하락을 조장한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양곡 정책을 펴면서 수급 사정을 몰라서 12월에야 발표했을까.

둘째, 시장격리 물량을 턱없이 적게 발표하고 격리 시기도 늦췄다.

당시 정부는 11월 15일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쌀의 초과 생산량이 27만 톤에 이른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2021년 12월 31일 기준 민간재고 조사는 54만 톤에 이르러 정부의 발표가 현실과 차이가 상당히 컸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엄청난 재고 중 20만 톤만 격리를 추진하면서 시중의 쌀값은 더욱 하락했다.

쌀은 조금만 남아도 폭락하고 조금만 모자라도 폭등한다. 쌀이 남으면 상인들은 눈치를 보며 쌀값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신곡 수매를 해야 농협들이 창고를 비워야 한단 사실에 몸이 달아서 구곡을 더 싼값에 시장에 내놓으면서 시장은 붕괴하는 것이다. 정부는 쌀값이 다 떨어지고 농민들이 대략 1조 원 이상의 큰 피해를 보고 난 후 90만 톤 격리를 발표했다. 농민들이 입은 이 피해는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셋째, 정부는 시장격리를 최저가 입찰 매입방식으로 함으로써 쌀값 하락을 오히려 부추겼다.

시장격리는 쌀값의 폭락을 막기 위한 취지인데 정부는 오히려 최저가 입찰 매입방식으로 전국 농협들을 자극해서 쌀값 하락을 부채질했다. 통상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매입했던 시장격리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농협과 생산단체를 상대로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매입을 하니 서로 먼저 처분하기 위해서 저가 경쟁을 벌이게 됐다. 시장격리가 쌀값 안정의 목적을 상실하고 쌀값 하락을 유도했고 정부에 대한 농민의 분통이 터져 나왔다.

시장격리 하면 정부예산부담 늘어나고
시장격리 않으면 농민 피해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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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부근에서 열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결의대회’에 참가한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쌀값 보장, 생산비 폭등 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첫째,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과잉이 유발되고 농민소득이 감소한다? 

시장격리 반대 논리에 따르면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우선 쌀값이 안정되고, 쌀값이 안정되면 농민들이 생산량을 늘려서 쌀생산이 늘어나고, 쌀생산이 늘어나면 다시 가격이 하락해서 농민소득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될 것'으로 예측하며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시장 과잉이 되면 시장격리가 확대되면서 정부 예산이 더 쓰이는 문제가 생기지만 쌀값이 하락하진 않는다. 물론 정부가 전년도 시장격리 곡을 수확기 전에 시장에 많이 방출하지 않는 조건에서 가능하다.

둘째,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정부예산부담이 늘어난다?

우선 풍년이 들거나 초과생산될 경우 정부예산부담은 당연히 늘어난다. 하지만 쌀이 남을 때 시장격리를 하지 않으면 농가들의 피해가 늘어난다.

쌀이 남는다고 해서 쌀생산 농지를 줄일 수는 없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 속에서 농지보전의 요구는 더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쌀생산은 줄이면서 농지는 줄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은 논에 쌀 대신 밀과 콩 등의 전략 작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쌀생산의 과잉을 막게 되면 정부예산부담은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시장격리와 타 작물 재배지원은 함께 가는 정책이다.

쌀값을 낮춰서 다른 작물로 가게 할 것인가
다른 작물의 소득을 높여서 쌀생산을 줄일 것인가


정부와 국민의힘 논리는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지 않고 쌀값을 낮춰야 농민들이 쌀 대신에 타 작물로 옮겨가서 쌀생산이 줄어들고 그래야 쌀값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쌀값이 폭락해야 쌀생산이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과거 경험을 통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쌀을 시장논리에 맡기며 쌀값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쌀소비 감소에 따라 쌀생산량은 구조적으로 과잉상태였고, 쌀값이 떨어지면 변동직불제로 손실을 보상해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2013년도에는 쌀값이 17만6500원 대를 유지하다가 2014년(16만원대), 2015년(15만원대), 2016년(12만원대)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쌀값이 떨어졌다. 재고량도 2012년 69만 톤에서 2016년 170만 톤까지 늘어났다. 쌀값은 끝없이 추락했지만 쌀생산은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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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벼 재배면적 및 쌀 생산량 추이 쌀값이 하락했던 2013년에서 2016년 시기에도 쌀생산량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 통계청

    
쌀값은 하락했지만 쌀생산은 줄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령의 농민들은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다른 작물에 비해 짧은 노동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쌀만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쌀생산에 매달렸다. 이처럼 타 작물로 옮겨가기 어려운 농민들은 쌀값이 떨어지자 더 많은 비료와 더 많은 농약을 소비했고 다수확 작물을 심어 품질보다는 생산량을 늘리는 데 힘썼다. 결국 가격을 낮추는 것으론 쌀생산 과잉구조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 음식 중에 쌀보다 싼 것이 있는가 되묻고 싶다. 쌀은 어떤 작물보다 단위면적당 가격이 낮아서 대규모로 생산해야 간신히 소득을 맞출 수 있는 대표적인 작물이다. 결국 쌀값이 비싸서 쌀농사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논에 쌀 이외에 심어 먹을 마땅한 작물이 없다는 것이 쌀로 몰리는 핵심 요인임이 이미 확인됐다.

과잉생산 우려는 정부가 공약을 지키면 해결된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엔 '식량 주권실현'이 있다. 쌀 위주의 식량 생산에서 밀과 콩의 식량자급률을 올리는 것으로 공약했다. 이 약속을 충실히 지키면 쌀생산 과잉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면서 1.1%의 밀자급률과 23.7%의 콩 자급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서 쌀문제도 해결하고 동시에 식량 주권도 해결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할 시 지원하는 사업을 2018~2020까지만 시행하고 폐지했다. 논에 밀과 콩, 사료작물을 심어 쌀생산을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을 폐지한 것이다. 결국 새 정부 들어 '전략작물직불제'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했고, 최근 민주당의 노력으로 400여억 원이 증액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쌀값을 떨어뜨려서 농민들에게 억지로 밀과 콩을 심게 만들 수는 없다. 더구나 밀과 콩이 쌀보다 나은 소득이 되더라도 농민들은 밀과 콩으로 재배작물을 옮겨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선언한 대로 밀과 콩을 식량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생산 확대의 노력을 한다면 농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것은 논농사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노력으로 가능하고 그것이 진정한 쌀문제의 해결 방법이다.

쌀값이 폭락한 다음에 보상하는 것은 가장 잘못된 정책이고 쌀값이 떨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시장격리 하는 것은 차선책이고 식량 주권 정책으로 미리 쌀생산을 밀과 콩으로 생산조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식량 주권 선언 공약이행이 진정한 양곡 관리정책의 답이 된다.

왜 농산물 수급 안정이 헌법에 들어가 있을까?

풍년이 들어 쌀값이 폭락하면 열심히 농사지은 농민이 죄인일까? 아니면 좋은 날씨가 죄인일까? 쌀이 남아돌면 쌀은 천덕꾸러기가 취급을 받지만 정작 쌀이 모자랐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쌀은 남아야 한다. 쌀은 다른 농산물처럼 모자라면 바로 수입할 수 있는 작물이 아니다. 지난 2020년 기후 위기로 쌀생산이 급감해서 전 년에 비축했던 시장격리 재고 쌀이 아니었다면 우리 정부와 국민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쌀은 항상 남아야 한다. 조금 남거나 많이 남는 차이만 있다. 생산면적을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날씨를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쌀의 시장격리는 흉년이 들지 않는 한 계속 필요한 정책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하고,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헌법에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 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규정돼 있다다. 식량은 국가 안보이고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쌀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지역위원장으로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입니다.
#양곡관리법 #대통령거부권 #쌀값하락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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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지역위원장 전 청와대농어업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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