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7 11:46최종 업데이트 23.02.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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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4일 오전 8시 56분]

> '30년간 해결 못 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불만 ①'에서 이어집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화장실,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는 고객부터 휴게소 입점업체, 휴게소 운영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에 이르기까지 휴게소에 관련된 모든 비용을 휴게소에서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이 모두 부담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객이 휴게소에서 먹는 식사 한 끼에는 원재료와 조리비뿐 아니라 휴게시설 관리비, 휴게소 이윤, 도공 임직원 성과급까지 포함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시중 식당보다 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휴게소 밥값에서 임대료를 거두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예를 들어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커피, 간식 등 부가 상품에 대한 임대료는 그대로 두고, 필수 소비재인 식사만큼은 임대료를 걷지 않으면 말입니다.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휴게소 식당에 대한 소비자 '니즈'를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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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을 이용하는 고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얼마든지 미룰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휴게소에서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하는 고객은 화물차 운전자, 작업자, 장거리 출장자로서 대부분 남성이고 40대 이상이 많습니다. 이 분들은 대체로 저렴하고 든든한 한 끼를 선호하며 식사 외의 다른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관심은 높지 않습니다. 주로 식당과 화장실, 흡연실을 이용하며 휴게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우므로 비싸고 맛없는 음식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휴게소 식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부류는 대개 젊은 MZ세대, 여성, 유아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 근거리 출장자들입니다. 이들은 휴식과 체험,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휴게소를 방문하며, 음식이 불만족스러울 경우 휴식만 취하고 아예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음식 불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항의하기보다는 휴게소 이용과 소비를 기피하는 '선택적 소비' 성향을 보입니다. (관련 기사 : 이용객들이 변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위기)
 

푸드코트와 전문식당가가 별도로 구성된 진영복합휴게소 ⓒ 진영복합휴게소

 
2022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중 매출 증가율 1위를 차지한 진영복합휴게소의 식당가 매출을 분석하면 이와 같은 소비자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휴게소는 목적지인 부산과 매우 가까워 식당 매출이 낮은 휴게소였으나 2021년 3월 민자휴게소로 재오픈하며 전문식당가를 런칭해 한 휴게소에 두 개의 식당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2년 두 식당가의 매출은 각각 23억 원과 20억 원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식당가에 새로운 식당이 입점하면 매출이 분산되는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두 식당가 매출을 합하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여 전국 휴게소 평균 20~25%보다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식당가를 이용하는 고객층은 서로 다른데, 푸드코트 이용 고객에 남성, 중장년, 화물차 기사들이 많다면, 전문식당가 이용 고객은 여성, 유아동반, MZ세대가 주요 소비자입니다.

​그러므로 국토교통부 제안처럼 단지 휴게소 음식 가격 10%를 인하한다고 해서 휴게소 음식 불만이 사라지고 그동안 휴게소를 이용하지 않던 고객이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동안 휴게소 식당을 이용하지 않던 소비자들이 휴게소 음식에 갖고 있던 불만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다양한 선택 원하는 소비자
 

2022년 고속도로 휴게소 EX-FOOD ⓒ 한국도로공사


도공은 해마다 휴게소 우수메뉴를 선정해 '휴게소 EX-FOOD'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메뉴는 도공이 관리하는 전국 휴게소를 대상으로 대표메뉴를 출품하게 하고 이를 전문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선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휴게소 운영사의 정성과 노력이 담겨있고 훌륭한 맛과 가성비를 자랑하는 '휴게소 EX-FOOD'는 역설적으로 휴게소 음식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공 평가를 받기 위해 만들어진 메뉴라 심사가 끝나면 품질과 맛이 오래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품 메뉴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판매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 역시 우수 메뉴에 선정된 휴게소에 한정될 뿐, 탈락한 휴게소는 금세 잊는 게 현실입니다.

도공은 20년 넘게 '휴게소 맛자랑대회', '휴게소 대표메뉴', '휴게소 EX-FOOD' 등 다양한 선발 제도를 운영하며 해마다 우수메뉴를 선정하고 언론에 발표해 왔지만 지금까지 사랑받는 메뉴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휴게소마다 비슷한 메뉴가 식상하다고 탓하는 고객은 많지만, 휴게소마다 차별화된 대표메뉴가 좋다는 고객은 찾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전국 220개 휴게소 중 이용객이 적고 관리가 어려운 소형휴게소에서 음식맛 표준화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즉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빔밥처럼 가장 기본적인 메뉴들마저 맛과 질이 천차만별인 상황입니다. 이 역시 가격 인하만으로 휴게소 음식 불만을 해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다양한 메뉴의 '셀렉트 다이닝'이 가능한 가평휴게소 ⓒ K-휴게소


2022년은 대한민국 휴게소 역사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전망입니다. 매출 1위 휴게소가 바뀐 해이며, 처음으로 양방향 휴게소가 아닌 한방향 휴게소가 매출 1위가 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은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위치한 가평휴게소(춘천방향)로 이 휴게소의 2022년 매출은 450억 원(부가세 포함)으로 영동고속도로에서 양방향 이용이 가능한 덕평휴게소의 439억 원을 넘었습니다.

​비결은 매장 구성에 있었습니다. 휴게소의 미래가 '로드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간파한 가평휴게소는 2021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다양한 프랜차이즈 매장을 입점시키고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트 다이닝'을 구현했는데 이것이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입니다.

'셀렉트 다이닝'이란 최근 국내 외식업계 최고의 이슈로 다양한 외식 업소를 하나의 몰에 선보이는 '푸드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취향껏 고를 수 있으며 연인이나 가족이 모여 각자가 고른 메뉴를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프랜차이즈 매장 입점으로 휴게소 음식 가격의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휴게소를 이용하는 소비자층은 다양합니다. 사실 휴게소 이용객이 분노하는 것은 비싼 가격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니라 브랜드도 아니면서 고급 프랜차이즈 수준의 가격을 요구하는 휴게소의 횡포입니다.


결국 휴게소 식당에서 이탈한 소비자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가격 인하가 유일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게다가 음식값 10% 정도의 인하로 무슨 고객 감동이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물가 인상이 계속되고 임대료를 계속 올리는 휴게소 시스템에서 10%의 가격 인하는 얼마 유지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새로운 휴게소 모델

​그렇다면 휴게소 식당에 대한 서로 다른 소비자 기호를 만족시킬 대안은 없을까요? 먼저 휴게소에서 식사해야만 하고 식사가 필수인 고객층을 위한 '표준메뉴'를 만들어 '표준가격'에 전국 휴게소에 보급하는 것입니다.

'표준메뉴'라 함은 한식, 양식, 우동, 라면처럼 소비자가 주로 이용하는 메뉴에서 대표적인 음식을 하나씩 선정해 동일한 레시피와 원가 체계를 만든 후 전국 휴게소 공통메뉴로 판매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미 도공은 'EX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시도를 했었고 좋은 반응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220여 휴게소의 모든 음식을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전국 어느 휴게소를 이용하더라도 가격과 품질이 일정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고객이 잘 알지 못하는 메뉴를 선택해 맛에 실망하고 비싼 가격에 분노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코로나 기간에도 불구하고 진영복합휴게소, 가평휴게소의 획기적인 매출 증가에는​ 새로운 휴게소 모델의 단초가 담겨 있습니다. ​1970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속도로 휴게소가 도입될 당시 정부주도, 정부관리 휴게소가 '제1세대 휴게소'라면, 1995년 휴게소 민영화를 거쳐 정부관리, 민간운영의 휴게소는 '제2세대 휴게소'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대되는 '제3세대 휴게소'는 자율관리, 고객중심 운영을 기본으로 시중과 차별 없는 서비스와 상품, 다양한 프랜차이즈의 몰을 지향해야 합니다. 물론 다양한 매장을 입점하기 위해서는 대형시설이 요구되므로 대규모 복합휴게소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와 달리 지방에 있거나 소규모 휴게소는 '표준메뉴'를 중심으로 품질과 가격의 하한선을 지키고 휴식, 화장실, 화물차 쉼터와 같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최우선에 놓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휴게소 모델이란 단지 휴게소의 외형과 규모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고속도로라는 독점상권을 무기로 차별을 남발했던 과거와 단절하고 차별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휴게소 영업 관리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휴게소 음식에 담긴 소비자 불만이 가격 인하, 품질 개선, 메뉴 추가가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왜 소중한 돈을 내고도 불편한 소비, 차별받는 서비스를 받아야만 하는가"라는 소비자의 분노가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역시 '공정함'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차별 없는 공정한 가격과 서비스가 지금 휴게소 앞에 놓인 '시대정신'인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네이버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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