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4 12:01최종 업데이트 23.02.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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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기자말]

강창욱 마을활동가 문화기획 축제기획 마을자원 컨설팅 등으로 제주의 마을마다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 황의봉


제주시 한림읍에서 브로콜리와 양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활동가협의회장으로 일하는 강창욱씨는 요즘 어떻게 하면 한림지역을 만화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한림읍 출신으로 제주도 이곳저곳을 동분서주하는 그가 무슨 연유로 만화에 꽂혀 있는지 듣기 위해 어렵사리 약속을 잡았다. 그가 만나자고 한 곳부터가 심상치 않다. 황우럭 만화카페에서 보잔다. 처음 듣는 묘한 이름이다.

황우럭을 검색해봤더니 붉은쏨뱅이로 한림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리고 고 양병윤 화백이 그린 만화 캐릭터가 바로 '황우럭'이라고 했다. 황우럭 만화카페는 한림읍 중심가 대로변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골목길 초입에 들어서자 곧 황우럭 만화카페가 보인다.

골목길을 더 들어가면 담벼락에 '시사만화 거리'라는 안내판과 함께 고 양병윤 시사만화가를 소개하는 글이 있고, 또 다른 집 담에는 4칸짜리 황우럭 시사만화와 만평을 새겨 놓기도 했다. 카페도 자그맣고 골목길도 좁아 어릴 적 자주 다녔던 만화가게 풍경이 되살아났다.
 

황우럭 카페 시사만화가 고 양병윤 화백을 기리기 위해 한림읍에 만들었다. ⓒ 황의봉


강창욱씨는 제주도 마을활동가협의회장 등 7개의 현직과 전 한림읍 주민자치위원장을 비롯한 9개의 경력을 지녔다. 그동안 수행해온 전문분야는 마을해설, 문화기획, 축제기획, 체험기획, 퍼실리테이션(조력), 마을 자원 컨설팅, 각종 공모사업 기획 등으로 제주 마을마다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런 그가 요즘 심혈을 쏟고 있는 시사만화 황우럭 관련 사업은 이채롭기도 하거니와 한림지역을 만화의 고장으로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어 주목된다. 만화 캐릭터 황우럭을 말하자면 먼저 고 양병윤 화백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 필요가 있겠다. 양 화백은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손꼽힐 만한 시사만화가였다. 강씨의 설명에 따르면 양병윤 화백은 어렸을 때 이미 '꼬마 노마'라는 작품을 발표해 주목받았을 정도로 일찌감치 만화가의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40대 이상의 제주도민이면 양병윤은 몰라도 황우럭 하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라니 가히 황우럭의 유명세가 짐작이 간다. 양병윤이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아리랑> 잡지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만화를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제주신문>(현 <제주일보>) 간부들의 눈에 띄어 1968년 24세에 <제주신문> 기자로 입사하여 '시사만화 황우럭'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양병윤은 화백 겸 기자로 시작해 <제주신문> 편집국장과 이사,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이후 <제민일보> <제주일보> <제주타임스> <한라일보>를 거치면서 제주 언론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시사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신문사 편집국장에 오른 것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양 화백은 작고 당일까지 1만 600회의 4칸짜리 시사만화와 함께 만평까지 그렸다. 우리나라 시사만화계에서 1만 회의 고지에 오른 사람은 <동아일보> 등에 '고바우 영감'을 그린 고 김성환 화백과 함께 단 두 명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쌍벽인 셈이다.

황우럭은 다른 우럭에 비해 등 가시가 길고 날카로워 시사만화의 비판 정신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활용했던 것 같다. 1980년대 신군부 독재정권 시절 편집국장 재임시 서귀포 신시가지 개발 이권을 노리고 신군부 측근인 이모 회장의 용역회사가 불법으로 토지를 매입한 사실을 보도하여 권력형 비리를 파헤친 사건이나 언론통폐합의 주역에게 편집권 침해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한 사건은 제주 언론계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만화를 통한 지역문화 기여
 

시사만화 거리 황우럭 시사만화와 만평을 담벼락에 새겨 놓았다. ⓒ 황의봉


강창욱씨는 한림 출신의 마을활동가로서 같은 한림 출신의 전설적인 시사만화가를 기리고 한림지역을 만화의 고장으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현재 '황우럭만화천국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으로 관련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카페 운영뿐 아니라 만화교실, 만화 인문학 강좌, 만화거리 조성, 한림읍의 신화 이야기 과정 운영, 마을기록자 양성과정 운영, 그림책 학교 운영 등 다양한 만화사업을 하는 중이다. 그의 추진력과 함께 뛰어난 기획력을 엿볼 수 있는 사업들이다. 이 만화사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양 화백이 2015년 돌아가신 후 마침 그해 7월에 지역 균형발전 사업 공모가 있었어요. 최대 3억 원까지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는데, '한림읍을 만화천국으로 만들자'라는 기획이 심사에 통과해 만화카페도 열고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고 양병윤 화백이 살던 집에 만든 만화카페는 큰길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규모도 작아서 운영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크고 화려한 다른 카페와 차별화하기 위해 요리연구가인 원종애 여사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 여사의 전문성을 살려 감귤로 만든 타르트 같은 걸 개발해 전통차나 커피와 함께 내놓고 있습니다."


황우럭 만화카페는 개인사업이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만큼 단순한 이익 추구보다는 만화를 통한 지역문화 기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만화카페 공간에 강사를 초청해 만화교실을 운영하고, 그 수료자들이 황우럭 토래비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만화 구연을 하는 봉사활동과 함께 인형극 공연과 동화구연 등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창욱씨는 이런 사업들이 지역 균형발전 사업이나 농어촌희망재단 공모에서 채택되어야 재정지원을 받는데 1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속해서 해나가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한다. 그는 요즘 만화축제를 기획 중이다. 황우럭 카페 부근 대로변 2∼3㎞에 걸쳐 벚나무 가로수가 심겨 있는데, 벚꽃길과 연계해 만화축제를 개최해보겠다는 구상이다.

강씨는 만화의 거리 조성사업 말고도 제주도의 각종 공모사업에 참여해 많은 실적을 올린 경력이 있다. 특히 문화기획 분야에 그가 이룬 업적은 눈부실 정도다.

2007년 한수풀해녀학교를 기획해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고, 한림 천변 벽화조성 사업(2014년) 진좌수길 개설 사업(2014년)을 기획했다. 2015년에는 주민자치 특화프로그램으로 '돌빛나예술학교'라는 돌담 관련 기획(2015년)을 성공시켰다. 또 전국 주민자치박람회 기획 공모(2016년)에서 장려상을 받는 등 수많은 문화기획 공모에서 업적을 쌓아왔다. 그가 기획해 대성공을 거뒀고 15년 이상을 지속해오고 있는 해녀학교 이야기를 들어봤다.

'풀뿌리 민주주의'
 

한수풀해녀학교 강창욱 마을활동가가 기획한 해녀학교에서 학생들이 바닷물에 들어가기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 홍서영


- 제주도의 대표적인 해녀 양성학교로 발돋움한 한수풀해녀학교는 어떻게 해서 시작된 것인가요?

"2007년에 주민자치특성화사업 공모가 있었는데, 그때 여럿이 모여 아이디어를 찾다가 해녀학교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해녀학교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기획해서 응모한 것인데 전국에서 최우수사업으로 선정됐습니다. 장소를 물색할 때 세 군데가 물망에 올랐는데, 최종적으로 현재의 귀덕2리로 낙착됐지요. 처음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운영하다가 지금은 귀덕2리 어촌계로 넘겨 운영하고 있습니다."

- 오랜 기간 해녀학교가 성공적으로 지속돼오고 있으려면 꾸준히 지원자가 있어야 할 텐데요?

"해녀라면 대개 경이롭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공개모집을 하면 제주도 사람보다 육지 사람들이 훨씬 많이 옵니다. 70∼80%가 육지 분들인데, 의사 기획자 등등 직업이나 연령분포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해녀 교육은 체험반과, 심화과정으로 직업반이 있습니다. 여름철 4개월 동안 주말에 진행하는데, 육지에서 지원한 분 중에는 금요일 저녁 비행기 타고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한수풀해녀학교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현직 해녀들이 직접 가르치니까 무상으로 할 수는 없겠지요. 10만 원을 내긴 하는데 이 돈은 주로 공동체 모임에 쓰고 있고, 대신 도에서 연 1억여 원 정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압니다. 해녀학교가 열리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이 해녀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수풀해녀학교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서귀포 법환마을에서도 해녀학교가 생겼고, 구좌읍 하도리에서도 준비 중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마을기록 활동 제주4.3 피해자를 방문하여 당시 상황을 들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강창욱

 
강창욱씨의 활동 분야가 다양하지만 거의 모든 일은 각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내고, 기획하고, 공모에 채택되는 과정을 거쳐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현재 제주도의 마을이 겪고 있는 문제를 누구보다 꿰뚫고 있지 않나 싶다. 그가 진단하는 제주도의 마을은 어떤 상태인지 물었다.

"마을마다 편차가 커서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일단 이주민이 많이 들어오면서 토박이 주민들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주민 중에는 능력이 뛰어난 분들도 상당히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토박이들의 발언권이 많이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어떤 마을의 경우는 이장 선출과정에서 토박이 후보가 떨어지기도 했고, 대형 사업을 두고 2명의 이장이 대립하는 상황까지도 갔었지요.

반면에 이주민과 기존 주민들이 잘 어우러져 함께 공동체 사업을 전개하는 마을도 있습니다. 선주민들과 함께 카페도 운영하고, 마을해설사도 함께하고, 축제도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는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 보기에도 좋습니다.

이주민 가운데는 똑같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타운하우스에 입주해 토박이 주민과의 교류는 거의 없이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현행 주민등록시스템으로는 이주를 해와도 마을 이장의 도장을 받는다든지 하는 절차가 없어요. 이러다 보니 이장선거 때가 되면 선거인명부 작성이 어려워지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깁니다."


강창욱씨는 한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전공은 물리학이었다. 고향에 돌아와 처음엔 입시학원을 운영하다가 2002년 30대 후반에 한림2리 이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 제주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지방자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림읍 발전협의회장, 한림읍 주민자치위원장 등 수많은 지역자치조직에 참여하게 되고, 문재인 정부 때는 자치분권위원회 주민자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에 이른다.

그가 마을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지역 현장에서 수많은 사업을 발굴하고 기획하여 실적을 이뤄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에게서 '풀뿌리 민주주의'란 말의 뜻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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