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기념관 입구에 새겨진 숫자 Memorial Hall of the Victims in Nanjing Massacre by Japanese Invaders.(19371213.com.cn)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 있으며, 300000은 당시 희생된 난징시민 수를 나타낸다.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제국주의 일본으로 인해 고통받은 아시아인 숫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태평양전쟁으로 일본군에 의해 사망한 민간인만 2500만 명이 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중국 사람들이 치를 떠는 난징대학살 사건(1937년)으로 희생당한 사람만 최소 12만 명∼최대 35만 명에 이른다. 태평양전쟁 말기,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학살(1945년)로 12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전범국가의 국민 또한 많은 시련과 고초를 겪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국외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군인, 민간인을 포함해 총 240만 명에 이른다.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최소 15만 명∼최대 25만 명이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주는 수치와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일본은 이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참된 교훈을 얻었을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최근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한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전범 기업의 불법행위 책임을 모두 떠안고 나중에라도 변상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한국 정부가 결정하면 반성과 사과를 검토할 수 있다'(교도통신/2023.1.28.)라는 표현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일본 정부는 전쟁 책임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를 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극우 세력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한, 앞으로도 이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다. 애국열사들이 목숨을 던져 싸워온 독립투쟁의 역사를 물건 흥정하듯 돈 몇 푼에 팔아넘기려는 자들이 이 땅에 기생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웃 나라를 적으로 돌릴 것인가, 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선현들의 영정에 침을 뱉는 자들이 있다. 다른 이념과 사상을 좇았다는 이유로 독립의 영웅들을 폄하하고 어둠 속에 가두어두려는 자들이 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해방 이후, 일제의 편에 서서 부역했던 자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역사의 심판대에서 단죄(斷罪)되었나. 그들이 축재(蓄財)한 재산은 몰수되었는가.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곤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친일파의 후예들은 부와 권력을 누리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나. 일제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잔재들은 청산되었는가. 다시금 진지하게 이 질문들을 던져봐야 한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한국과 일본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설문조사(2020. 8월)에 따르면, 일본 시민 중 한국에 대해 호감을 표시한 응답자 비율은 10.8%에 불과했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56.7%였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에 대해서도 '그렇다(11.1%)'보다 '그렇지 않다(51.4%)'로 답한 시민이 훨씬 많았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은 비호감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 시민 중 일본에 대해 호감을 표시한 응답자 비율은 15.0%였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64.2%였다.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에 대해서는 '그렇다'가 17.5%, '그렇지 않다'가 48.6%였다. 우리 역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부정적인 관념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와 시민들 사이에 거대한 불신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깊은 골을 메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지난 과거는 잊자고, 언제까지 서로 적대하며 살아갈 거냐고, 이제 발전적인 미래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맞는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가야 한다. 하지만 꼬인 매듭을 푸는 출발점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덮고, 감추고, 잊는 걸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 바탕 위에서야 비로소 두 나라는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간토(關東)대학살이 벌어진 지 100주기가 되는 해다. 1923년 일본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치안 당국과 언론의 유언비어(조선인 폭동설) 유포와 방관으로 6천 명이 넘는 조선인이 끔찍하게 학살됐다. 일본의 우익들은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에도 사건을 숨기는 데 급급했고, 지금까지도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반한(反韓)정서를 지렛대 삼아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독도 망언, 역사 교과서 왜곡, 위안부 부정, 강제동원 배상 떠넘기기 등 도발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런 태도에 대해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대처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해방 이후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루지 못한 후과(後果)를 치르는 중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할지 모른다.

▲근대 일본의 뿌리를 찾아서 : 탐방지 구글지도 편집 (후쿠오카, 야마구치, 가고시마, 사가 등 총 5개 현을 방문했다)
문진수
후쿠오카, 하기, 가고시마, 가라쓰, 이마리, 구마모토, 시모노세키를 돌며 근대 일본의 뿌리를 살펴보려 했던 탐방길은 뜻깊은 시간이었다. 유적지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들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하며 '일본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정갈한 음식은 입맛을 돋게 했으며, 거리는 깨끗했다. 국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을 숭배하는 모순된 이중성이 어디서 발원하는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에게 일본다움이 있다면, 한국인에겐 고난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높은 기상, 호연지기(浩然之氣) 같은 정신이 깃들어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갈 일이다. 언제든 이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멋진 온천과 맛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한 미소로 입꼬리를 올리고,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치며 멋진 기념사진을 찍어보시길 바란다.

▲영화 '암살(2015)'의 한 장면 극중, 데라우치 조선 총독과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기 위해 모인 독립군 셋이 의열단장 김원봉의 제안에 따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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