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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정규 2집 <꿈의 거처>, 더할 나위 없다

한 사람의 청자로서 작성해본 음반 감상문

23.02.03 17:18최종업데이트23.02.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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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정규 2집 <꿈의 거처> 티저 이미지 ⓒ 마름모

 
음악인 이승윤이 약 9개월 정도의 제작 기간 끝에 지난 1월 26일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발표했다. 2집에는 동명 타이틀곡 '꿈의 거처'를 포함한 총 열두 곡이 수록되어있다. 이 글은 전문성을 띤 평론이 아닌, 음악적 지식이 없는 한 사람의 청자로서 작성해본 음반 감상문이다. 우선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앨범 소개 글, 그리고 각 곡에 대한 소개 글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음악인 이승윤의 가장 중점적인 강점으로 작사 능력이 주로 언급되지만, 이번 음반만큼은 사운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수록된 모든 곡을 보컬이 없는 버전으로 전부 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조목조목 뜯어 들을수록 더 감탄하게 된다. 배경음악처럼 흘려듣는 것이 아닌, 따로 시간을 내서 오롯이 집중하고 순간순간 기쁨을 느끼며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을 만나게 된 것이 매우 반갑다.

순간마다 가장 꼭 맞는 소리들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선별하고 배치한 집요함이 느껴진다. 각 소리들이 순차적으로 겹겹이 쌓이고, 화성을 이루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세심한 흐름과 촘촘한 짜임새를 느낄 수 있다. 악기 하나하나의 매력이 있고, 모든 악기가 가장 정확한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알맞게 해내며 조화롭게 흐른다. 그리고 드럼 등 타악기뿐 아니라 노래와 연주 전체에서 느껴지는 리듬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다양한 변주, 다채로운 코러스 또한 이번 음반의 감상 포인트다.  

특히 이번 음반은 많은 곡에서 유려하게 편곡된 스트링 연주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리의 풍성함, 웅장함, 화려함, 서사의 흐름이나 분위기 전환의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표현, 그리고 각 곡의 정서와 여러 감정들을 스트링을 통해 한층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쓸쓸하지만 따스하고, 슬프지만 외롭지 않은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발랄하고 즐겁기도 하고, 마치 가만히 내 옆에서 말없이 같이 울어주는 온기로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번 음반 가사들도 인상적이다. 매일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이나 생각들과 맞닿아있어, 공감되는 지점이 많다.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말 또는 외래어 대신, 직관적으로 와닿으면서도, 닫힌 정답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이승윤의 언어유희는 늘 말맛이 살아있고, 적절하면서도 신선한 비유와 상징, 기발한 어휘력, 유머를 잃지 않는 재치가 있다. 각 단어의 형태나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해서 단어들을 영리하게 배치한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가사들이 음악과 합쳐졌을 때 비로소 명확한 뜻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이야기를 표현하는 형식으로써, 분명한 맥락에 따라 각 말의 의미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때로는 직설적인 솔직함과 단단함, 과감함, 강단, 날 선 분노와 거침없는 비판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조적인 이야기 또는 날카로운 냉소도 있지만, 또 동시에 따스함, 다짐, 희망 같은 마음들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가사들이다. 순간이 주는 위로, 거창하지 않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위로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승윤 목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본인이 만든 곡을 본인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보컬이라는 점, 그리고 특정 창법이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질감을 구사하면서도 동시에 본인만의 뚜렷한 색채가 있다는 것이다. 낮게 읊조리는 부분에서는 가사의 의미를 말하듯이 전달하는 무게감이 있고, 때로는 부드럽다가도, 힘 있는 부분에서는 말 그대로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는 폭발력을 여과 없이 발산한다. 과하지 않은 스크래치, 모든 연주 전체를 뚫고 나와 순식간에 중심을 장악하는, 흔히들 '성량'이라고 지칭하는 가창력이 언제나 기복 없이 발휘된다. 특히 이승윤의 시옷 발음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매력적인 치찰음 덕분에 일상적인 단어도 훨씬 더 멋있게 들릴 때가 많다. 전반적으로 노래할 때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이번 음반에도 녹아있다. 그리고 노래를 더 맛깔나게 들리도록 하는 특유의 추임새들도 이승윤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타이틀곡 '꿈의 거처'는 가사의 흐름과 연주의 분위기가 밀도 있게 합쳐져 한 몸처럼 움직이는 곡이다. 방향을 설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마음을 표현한 구간에서는 눈앞이 어두워 뚜렷한 빛이나 길이 보이지 않는 분위기를 몽환적인 연주로 표현하고, '바늘 끝엔 항상 네가 있어' 부분에서는 긴 사유 끝에 '너'를 명확히 인지하고 공허한 방황을 끝내는 전환점을 찍는 고조된 느낌을 준다. 후렴에서는 쏟아지는 햇살과 선명해진 방향을 발견한 순간의 환희를 충분히 폭발시키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마지막 후렴을 시작할 때 멀리서부터 가까이 훅 다가오는 기타 선율의 공간감이 벅찬 느낌을 더하고, 이후 이어지는 베이스 연주가 특히 감각적이다.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의 그 '너'는 아마도 각자의 삶의 방향성,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 가장 중요한 가치 혹은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좋아하는 일 또는 사랑하는 대상, 소중한 어떤 존재일 것이다. 나의 '너'는 무엇 혹은 누구, 혹은 어디일까. 먼 곳에 있는 것들보다 지금 곁에 있는 것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완성되거나 결론지어진 형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현재진행형 꿈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그 '너'를 찾는 과정 자체가 나의 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야생마'의 경우 곡 안에 설정된 화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롭고, 억압되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표출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본인만의 개성을 타협 없이 진솔하게 밀고 나가는 대담함과 추진력이 음악에서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남들처럼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모습과 '너무 남들과 같아졌다며 실망'하는 모순된 이중잣대의 모습을 1절과 2절의 대비되는 가사를 통해 표현한다. 창작자로 살아가는 많은 분이 대중의 취향과 자신에게 요구되는 방향성과 자신이 추구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장단에 맞출 것인지 끊임없이 갈등하고 또 선택하는 과정들을 겪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곡 가사는 창작자들에게도 매우 공감되는 가사일 것으로 생각한다. 

'비싼 숙취'는 성취 후에 오는 숙취, 공허와 자조, 주위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 취해있는 상태에 대한 많은 사유와 성찰 끝에 결국 '가능하다면 숙취 없는 꿈을 꾸고 싶다'라고 있는 힘껏 외치는 내밀한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솔직한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다. 어느 시상식에서 '주위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당시, 물이 새지 않도록 배를 잘 수리하고자 했다'고 밝힌 수상소감처럼,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견고히 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이번 음반 곳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이 음반을 '평가', '점수 매기기'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른 어떤 음악과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릴 필요도 전혀 없다. 그동안 음악인 이승윤을 규정지으려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었다. 그를 어떤 대변자 또는 대표자로 보는 시선들, 거대한 하나의 현상 내지는 신드롬으로 보려는 말들, 독보적인 천재,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 등. 나는 엄밀히 지금 하늘 아래 존재하는 음악 중 이전에 아예 없던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내느냐에 따라 각각의 색깔이 입혀지고,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승윤의 음악이 지닌 매력의 원천은 자신만의 목소리와 고유성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깊이 사유하고 다양한 것들을 꾸준히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굳이 정의하거나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이 그 고유성 자체를 자유롭게 즐기며 기쁨을 누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장르가 이승윤'이라는 말은 기존에 없던 장르를 창조했다는 의미보다는 뚜렷한 자신의 색을 가진, 그리고 그 색이 참 다채롭고 멋있는 음악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체 수록곡 중 당신의 취향에 맞는 곡이 하나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음반에 담긴 언어들이 건네는 '순간의 위로'를 더 많은 분이 느끼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내가 아무리 엉망인 상태로 넘어져 만신창이가 되어 멈춰있어도, 음악은 늘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있어 주고, 언제든 손을 내밀기만 하면 한결같은 온도로 내 손을 맞잡아주기 때문이다.

음반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무엇이며, '명반', '명곡'의 기준은 무엇일까. 유행의 흐름과 별개로, 곱씹어 들을수록 곡에 담긴 정성이 느껴지고, 그 고유의 감성을 그 음악으로만 충족할 수 있어, 시간이 오래 지나도 계속 찾아 듣게 되는 음악. 그렇게 꺼내 듣는 것만으로도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고, 또 현재의 감정에 새롭게 와닿는 부분들도 계속 느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음반은 명곡으로 가득한 명반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분이 이 음반을 듣고 즐겨주신다면, 작성자로서는 더없이 기쁜 순간일 것이다.
이승윤 꿈의거처 마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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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마이스타 창간 8주년 '내가 사랑한 캐릭터' 공모전에 재미로 참여했다가 얼결에 시민기자가 된 그냥 시민. 글이 지닌 공감과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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