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하게' 성사된 문학 기행

목포 사는 양광모 시인과의 만남

등록 2023.02.05 13:58수정 2023.02.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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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언니들이 몇 달 전 모임을 만들었다며 함께 하자고 했다. '꿈꾸는 달빛' 두 달에 한 번 일상을 벗어난 여행을 하는 모임이다. 또 시와 수필을 사랑하고 서로 좋은 내용을 공유하는 사이다. 자작시를 모아서 만든 시집도 곧 나온다.


꿈꾸는 달빛이라는 말랑말랑한 모임 이름도 좋고, 두 달에 한 번 일상 탈출 여행을 간다는 것도 설레었다. 연말 모임으로 계획된 여행이 폭설로 취소되었는데 1월 말, 갑자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급박하게 진행된 이유가 있었다. 모임 회원 중 책방을 운영하며 매일 아침편지로 한 편의 시와 자신의 짧은 글을 보내주는 분이 있다. 얼마 전 양광모 시인의 시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를 소개했는데 그후 시인이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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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모 대표시 101 ⓒ 노정임

 
시인이 언제 책방에 꼭 한 번 오고 싶다고 했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인이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목포라 했고 '가슴 뭉클하게'에 방점을 찍은 누군가가 "우리가 찾아가서 만날까?" 해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 양광모

어제 걷던 거리를
오늘 다시 걷더라도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더라도
어제 겪은 슬픔이
오늘 다시 찾아오더라도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식은 커피를 마시거나
딱딱하게 굳은 찬밥을 먹을 때
살아온 일이 초라하거나
살아갈 일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진부한 사랑에 빠졌거나
그보다 더 진부한 이별이 찾아왔을 때
가슴 더욱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중략)

살아있다면
가슴 뭉클하게
살아있다면
가슴 터지게 살아야 한다


다섯 명의 중년 여인들을 태운 차 한 대가 눈 날리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2시간 남짓한 이동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수다를 펼쳤고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인과의 만남이니 예의상 시 한 편씩 외워오기로 했었다.

한 언니는 '가을은 단 하나의 언어로 말하네' 중에서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밖에 기억이 안난다며, 수다 중간 중간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를 읊어 모두를 웃게 했다.

나는 이 시가 좋아서 암기했다.

그대 아시는지 
- 양광모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건
햇볕이지만

꽃을 향기롭게 피우는 건
별빛인 것을

꽃처럼 산다는 거
열매를 맺으려
일생을 애쓰는 일임을

그대 이미
꽃처럼 살고 있음을


목포 갓바위와 해양 유물전시관 등 짧은 관광을 한 후 시인과의 만남 장소로 향했다. '어떤 분이실까?' 우리가 검색해 본 시인의 시에는 사랑, 그리움, 외로움의 정서가 가득했다. 목소리가 참 좋더라는 책방 언니의 말은 우리의 상상력을 키웠다. 자신들과 비슷한 연배라고 더욱 설레 보이는 언니들에게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부디 그녀들의 기대가 실망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장소에 도착했더니 시인이 먼저 도착해 계셨다. 초면에 이런 무례를 범했다. 미리 사인본 책을 부탁드렸었고 우리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 멋지게 사인을 해오셨다. 또 돌아가는 길에 먹으라며 한라봉과 사과를 챙겨오셨다. 다정하고 섬세한 분 같았다. 책값을 담은 봉투와 향초가 너무 빈약해 내미는 손이 참 민망했다.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연신 감탄하며 시집을 넘겨 봤고, 시낭송 잘하는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언니가 멋지게 한 편을 읽었더니 시인께서도 근사한 목소리로 답송해 주셨다.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서정을 노래한 시들이 참 편안했고 시인의 목소리가 입혀진 시는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낯가림 심한 나와 달리 친화력 갑인 언니들 덕분에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시인의 시 이야기, 문학의 역할, 저작권에 대한 토론, 때론 민감한 사적인 질문까지도. 길지는 않았지만 깊이 있는 시간이었다. 시인께서도 편안해 하시는 거 같아 다행이었다.

봄이 오면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때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들이지만 우리들의 작품도 보여드려야겠다. 맛있고 푸짐한 저녁과 향 좋은 커피도 대접해드려야지.

같은 길인데도 돌아오는 길은 더 오래 걸리는 느낌이다. 졸음을 쫓으려고 시인의 시들을 돌아가며 낭독하고 나름의 평론도 했다. 낭독 놀이가 힘이 빠지자 누군가 유튜브 음악을 틀었고 다 같이 소리 높여 불렀다.

'가슴 뭉클하게', '가슴 터지게' 사는 게 이런게 아닐까? 짧지만 강렬했던 이번 여행이야말로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시인과의 만남 #양광모시인 #꿈꾸는달빛 #목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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